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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⑤

신선하다, 과장·엄살 없는 사유

시 - 신용목 ‘스위치’ 외 21편




흐린 방의 지도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말이었으나 무리를 잃은 흰 날개의 메아리였다가 어느새 죽은 별들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안개처럼





골목은 간밤의 신열로부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식탁에 흩어놓은 약봉지 같다



내 안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대답을 막기 위해 밥을 먹어야 했다

내 귀의 구멍으로 밤을 구겨넣고 간

네 목소리의 아침



누군가 느낌을 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부엌까지 비닐봉지에 비린내를 담아가듯 꿈과 꿈 사이로 이어진 생활을 지나가려고

누군가 내 뺨을 후려치고 그 손을 내 손목에 달아놓았는지도 모른다



이 기분이 새지 않는다



골목에 별들의 지문이 잠기는 방향으로 휘감겨 있다 손목에서 빙빙 돌아가는 비닐봉지

이제 너는 안개 속으로 손을 넣지 않는다 축축하게 식어가는 밤을 만지려 하지 않는다





왜 꿈에는 귀가 없을까? 아무리 소리쳐도 꿈속까지 들리진 않는데 왜 꿈에서 속삭이면 꿈밖까지 들릴까? 골목에서는 질문을 멈추게 하는 알약이 팔리지만

여기서 외로움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응 나 여기 있어

별에서 막 흘러내린 안개처럼 자글거리는 조기를 뒤집어야 할 때를 보고 있었다





신용목(41·사진) 시인은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쓰는 동년배의 시인들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리듬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시를 써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설명은 불충분해 보인다.



 우선 그의 시에는 재래의 서정시와는 달리 타자와의 화합이나 화해가 전제되지 않는다. 초기 작품에서 타자를 발견하고 이를 자신만의 리듬으로 새롭게 기술하는 데 있어 능숙한 기량을 보여주었던 그는 점차 타자와 자신의 접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천착하기 시작했다. 이를 서정성과 사회성의 길항이라는 말로 풀어도 좋을 것이다. 세계가 온전히 관찰과 노래의 대상이 되는 것만도 아니고 시인의 심회가 언제나 자발적으로만 움직여가는 것도 아니다. 언어 자체가 동시대의 환경 속에서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기에 언어를 매개로 하는 서정시가 사회와 완전히 별개의 리듬으로 전개될 수 없다는 것이 현대시의 근본조건이다. 신용목의 중요한 실험은 바로 그 지점에서 행해진다.



 신용목은 일체의 과장법이나 엄살 없이 세계와 자아의 연동이라는 문제를 내밀한 언어로 집요하게 탐문하는 흔치 않은 시인이다. ‘흐린 방의 지도’는 세계와 자아의 성급한 화해로 마무리되곤 하는 재래의 서정시와는 달리 일상의 소소한 모습에서 세계의 이미지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에 기초해서만 사유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비닐봉지에 담긴 비린내가 꿈과 생활의 선후관계를 묻는 계기가 된다. 미리 주어진 어떤 잠언이나 성찰이 없이 경험의 테두리 내에서 태동하는 이런 사유를 통해 그는 21세기의 서정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조강석 (문학평론가)



◆신용목=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착한 여자 불행한 삶, 모순은 왜

소설 - 손보미 ‘임시교사’




손보미(35·사진)는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현장감있게 재현하기보다는 주로 넓은 시야에서 인간 삶의 미세한 균열과 관계 속의 내밀한 어긋남을 묘사하는 소설을 쓴다. 외국 작가로부터의 영향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번역투스러운 낯선 대화체를 즐겨 구사하기도 하는 그녀의 소설은 다소간의 인공미가 매력이다. 로컬한 문화보다 다국적 문화의 다양한 매체에 익숙한 세대를 대변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다양한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해내며 주제의식은 다소 철학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소설은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낼 소설로도 손색이 없다. 등단 이후 빠른 시간 안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고, 당연히 상도 많이 받았다.



 ‘임시교사’는 중산층 가정의 보모로 고용된 P 부인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임시직 교사로 교사 생활을 접은 이력을 갖고 있다. 선한 성정과 오랫동안의 교사 생활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P 부인은 젊은 부부의 조력자 노릇을 훌륭히 해낸다. 이 작품이 내내 공들여 묘사하는 것은 젊은 부부의 삶에 대해 필요 이상의 감정적 개입을 경계하려는 P 부인의 태도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욕망하게 될까봐 강박적 불안을 느끼면서도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그녀의 태도는 제목에 놓인 ‘임시’라는 단어와 공명하며 우리 시대에 만연한 불행한 삶의 조건들을 환기시킨다.



 ‘임시교사’는 손보미의 소설이 구체적 현실과 만나는 방법을 고민했다는 점에서도 반갑게 읽힌 소설이다. 그런데 작가는 어디선가 “아주 착한 여자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착함과 나쁨이 단지 구조적 모순으로 인식될 것만이 아님을, 오히려 거기에는 운명적인 것이 개입될 수 있음을, 나아가 문학은 선악의 모순을 해결하기보다 그것 자체를 사유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이 소설은 말해주는 듯하다.



조연정 (문학평론가)



◆손보미=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수상.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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