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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주먹으로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기획│한국영화, 레디 액션]맨주먹으로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베테랑'

올여름 극장가를 지배하는 화두는 ‘액션’이다. 맨주먹과 칼·총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격돌하고 있다. 포문은 ‘암살’(7월 22일 개봉, 최동훈 감독)이 열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독립군 암살단의 활약이 화려한 총격 액션 속에 펼쳐진다. 망나니 재벌 3세의 악행을 단죄하기 위한 형사의 끈질긴 추적을 그린 ‘베테랑’(8월 5일 개봉, 류승완 감독)은 리얼한 주먹 액션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협녀, 칼의 기억’(8월 13일 개봉, 박흥식 감독, 이하 ‘협녀’)에선 뜻이 달랐던 세 검객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비정한 칼 끝에서 부딪힌다. 또렷이 대별되는 영화 세 편에서 액션을 설계한 무술감독들을 만나 치밀한 액션 연출의 현장으로 들어가 봤다. ※최근 개봉순


영화 액션계의 아이콘 같은 인물인 정두홍(49) 무술감독에게 ‘베테랑’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형사 액션물이지만, 슬랩스틱 코미디 느낌을 가미해 달라는 류승완 감독의 주문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코믹 장르야말로 그가 가장 자신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춰준 건 오 팀장(오달수)과 미스 봉(장윤주) 캐릭터였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두 인물에 ‘꽂힌’ 정 감독은 “두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춰가며, 작품에 편안히 빠져들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인물이 액션 설계의 기준점이 됐다는 이야기다.

특히 오 팀장 캐릭터는, ‘웃기는 액션’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줬다. 코뿔소처럼 전진만 하는 서도철(황정민)의 곁에서 늘 완급을 조절해주는 친구 같은 상사인 그는, 긴박한 액션 장면에서도 코믹한 몸짓과 표정으로 숨통을 틔워준다. 좁은 방에서 살인 청부업자들과 격투를 벌일 때, 운동화를 양손에 들고 싸운다거나, 상대가 휘두른 칼이 가까스로 사타구니를 비켜나 바닥에 꽂힐 때 공포와 안도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는 식이다.

정 감독은 “오 팀장 캐릭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기에, 도철이 중고차 밀매업자들과 치고받고 싸우는 슬랩스틱 느낌의 경쾌한 초반 액션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정 감독이 가장 걱정했던 배우는 미스 봉 역할의 장윤주였다. 모델 워킹과 액션 연기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팔·다리가 긴, 장윤주의 신체 특성을 이용해, 시원하고 힘 있는 발차기 액션을 만들었다. 도철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미스 봉이 날리는 발차기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후련하게 만든다.

도철을 위시한 광역수사대 팀원들이 중고차 밀매업자들을 소탕하는 초반 액션 시퀀스가 슬랩스틱에 가까웠다면, 도철과 망나니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맨주먹으로 맞붙는 라스트 액션 시퀀스는 처절하고 절박한 혈투다. 태오를 꼭 잡고야 말겠다는 도철의 의지가 묻어나기에 절박하고, 싸움 스타일이 다른 두 고수의 격돌이란 점에서 처절하다. 도철이 오랜 강력반 형사의 경험을 무기로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백전노장이라면, 태오는 개인 트레이닝을 통해 종합 격투기를 몸에 익힌 무예 고수다. 한마디로 경험과 시스템의 격돌이다.

정 감독은 이 같은 대비가 느껴지도록 마지막 액션 시퀀스를 설계했다. 전작 ‘베를린’(2013, 류승완 감독)을 찍을 때 정 감독이 짜 온 라스트 액션 콘티를 스물일곱 번이나 퇴짜 놓은 류 감독은 이번에도 열 번 넘게 라스트 액션 콘티를 다시 짜 달라고 주문했다. 고심하던 정 감독의 머릿속에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서부극 ‘내 이름은 튜니티’(1970, 엔조 바르보니 감독)에서 권총 빨리 뽑기 내기를 하던 한 고수가 완벽한 스피드로 상대방을 제압하며 계속 뺨을 때리는 장면이었다. 정 감독은 “정신없이 뺨을 맞던 총잡이의 굴욕적인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태오에게도 그런 굴욕을 안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주먹으로 태오를 가격하던 도철이 갑자기 손바닥을 펴서 태오의 뺨을 서너 차례 때리는 신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수세에 몰린 도철이 소화전에 등을 찍히는 등 그의 아픔이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신도 류 감독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태오가 모는 포드 머스탱이 경찰 오토바이와 부딪치는 장면에서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스턴트 배우가 제때 떠오르지 못하면서, 턱 주변이 찢어지고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정 감독은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베테랑’의 액션은 테크니컬하고 각 잡힌 액션 트렌드에서 분명히 벗어나 있다. 황정민이 ‘개싸움’으로 표현했듯이, 촌스럽게 보일 수 있는 리얼한 액션으로 짜여져 있다. 그럼에도 관객이 액션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정 감독은 “도철 혼자 모든 공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 적재적소에 치고 들어와 흥을 배가시키는 리듬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액션은 감정’이라고 주장해 온 그는 ‘베테랑’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액션을 감정으로 접근했는데,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캐릭터로 접근했어요. 촬영하면서 인물의 감정이 어떤지 한 번도 안 물어봤죠. 각 캐릭터의 옷에 맞는 액션을 디자인했는데, 마치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액션은 캐릭터’라고 힘 줘 말하고 싶네요.”

-재벌 3세 태오가 머스탱을 탄 이유-

‘베테랑’에서 태오는 파티장을 급습한 경찰을 피해, 빠르게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한 뒤, 세워져 있던 외제차를 몰고 도주한다. 태오가 흥분한 표정으로 씩씩대며 핸들을 잡은 차종은 포드 머스탱이다. 야생마라는 뜻의 이 차는 남성미 넘치는 디자인과 강력한 힘을 갖춘, ‘머슬카(Muscle Car, 근육질의 힘센 자동차)’의 선두 주자다. 한때 미국 젊은이들의 드림카로 군림하기도 했다.
제작진이 영화 후반 자동차 추격신에 사용할 차로 머스탱을 선택한 이유는 파워와 사운드 때문이다. 태오는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 오는 도철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자신이 타고 있는 머스탱으로 반대편 차선의 차들을 힘으로 밀어 붙여 길을 낸 뒤, 인파로 북적대는 명동 도심을 질주한다. 말 그대로 고삐 풀린 야생마의 난동이다. 류 감독은 장애물을 뚫고 질주하는 머스탱의 힘뿐만 아니라,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머스탱 특유의 사운드를 좋아했다고 한다. 정두홍 감독은 “머스탱은 엔진 출력이 크기 때문에 부르릉 하는 소리도 다른 차와 다르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머스탱이 자주 등장하는 건 사운드가 주는 전율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머스탱이 선택된 또 다른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태오 같은 재벌 3세가 타기에는 급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제작진은 한정된 예산 때문에 실제 재벌이 타는 최고급차를 섭외할 수 없었다. ‘베테랑’을 제작한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는 “람보르기니급의 차도 생각했지만, 중고차 가격이 엄청난 데다 구하기도 쉽지 않아 포기했다”며 “대안으로 중고 머스탱 두 대를 구입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추격신에 사용된 머스탱은 워낙 손상이 심해 폐차했고, 운전 장면만 찍은 또 다른 한 대는 되팔았다고 한다.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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