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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캐릭터와 하나 된, 욕망에 충실한 칼날 ‘협녀, 칼의 기억’


올여름 극장가를 지배하는 화두는 ‘액션’이다. 맨주먹과 칼·총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격돌하고 있다. 포문은 ‘암살’(7월 22일 개봉, 최동훈 감독)이 열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독립군 암살단의 활약이 화려한 총격 액션 속에 펼쳐진다. 망나니 재벌 3세의 악행을 단죄하기 위한 형사의 끈질긴 추적을 그린 ‘베테랑’(8월 5일 개봉, 류승완 감독)은 리얼한 주먹 액션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협녀, 칼의 기억’(8월 13일 개봉, 박흥식 감독, 이하 ‘협녀’)에선 뜻이 달랐던 세 검객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비정한 칼 끝에서 부딪힌다. 또렷이 대별되는 영화 세 편에서 액션을 설계한 무술감독들을 만나 치밀한 액션 연출의 현장으로 들어가 봤다. ※최근 개봉순


‘한국형 와호장룡’. 박흥식 감독이 ‘협녀 ’의 액션을 설계하고 지휘한 신재명(46) 무술감독에게 주문한 컨셉트다.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무협 액션과, 물리학 원리까지 계산한 사실적 액션 사이의 접점을 찾아 달라”는 요구였다. ‘친구’(2001, 곽경택 감독) ‘명량’(2014, 김한민 감독) ‘강남 1970’(1월 21일 개봉, 유하 감독) 등 전작에서 주로 리얼한 액션을 디자인해 온 신 감독은 이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공중으로 점프하거나 칼을 휘두를 때도 모든 액션에는 그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상대의 목숨을 노린다면 목 가까이 칼날을 들이대는 게 맞다. 멋만 부린 검술과 와이어 액션을 배제하고, 캐릭터의 목적에 충실한 액션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유백(이병헌)·월소(전도연)·홍이(김고은) 세 남녀의 칼이 얽히는 ‘협녀’의 검술 액션은 우리나라 전통 무예인 ‘검예도’를 바탕으로 했다. 삼국 시대부터 전해져 온, 검과 힘의 원리를 활용한 실전용 검술이다. 20년 가까이 검예도를 단련한 무술 팀원의 공이 컸다. 전도연은 검술 액션 외에 한국 고전 무용도 익혔다. 월소가 유려한 자태로 유백의 병졸을 베는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무협영화에서 와이어 액션은 검술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 신 감독은 와이어신을 준비하며 배우의 몸짓뿐 아니라 엄지 발가락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조율하는 한편, 도약하거나 착지할 때 중력의 원리까지 치밀하게 고려했다.

세 배우는 촬영 전 맞춤형 액션 지도를 받았다. 액션 경험이 많은 이병헌은 두 달 동안 훈련받으면서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 시리즈(2009~)에 출연하며 몸에 밴 검술 스타일을 고치느라 애를 먹었다. 전도연은 4개월 반 동안 지도를 받았는데, 반복된 연습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한동안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팔굽혀펴기를 한 번도 못했던 김고은은 8개월에 걸쳐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김고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 나중엔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 스스로 찾아올 정도로 열심이었다.” 김고은은 촬영 도중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역할에 몰입했다.

세 배우가 직접 고난도 액션 연기를 소화한 이유는 “액션은 감정을 동반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박 감독의 고집 때문이었다. ‘협녀’의 세 배우는 열 번에서 스무 번까지, 대역에 맡길 수도 있던 풀숏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걸음걸이나 제스처 등 캐릭터의 미세한 감정 표현은 아무래도 배우가 더 낫기 때문이다. 나중엔 배우가 먼저 풀숏 액션을 자청할 정도였다.

신 감독은 큰 보람을 느끼는 장면으로 클라이맥스의 무령궁 복도 액션을 꼽았다. 홍이가 좁은 복도와 방을 넘나들며 적군을 베는 이 롱테이크 액션은 무척 입체적이면서 역동적이다. 이는 김고은과 대역 배우가 카메라의 사각 지대를 이용해 서로 번갈아 등장하며 완성한 결과물이다. 홍이와 유백이 눈 쌓인 안뜰과 처마 그림자를 넘나들며 벌이는 최후의 대결은 김병서 촬영감독의 아이디어로 ‘형사 Duelist’(2005, 이명세 감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영화에서 두 검객이 돌담 그림자의 안과 밖을 오가는 칼싸움 장면은 ‘협녀’에서 새롭게 리메이크됐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검이 맞부딪치며 번득이는 장면은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탄생했다.

신 감독은 동선이 복잡하게 얽힌 액션 장면에서도 디테일 묘사가 섬세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 비결은 그가 첫 무술감독을 맡은 17년 전부터 고집해 온 프리 비주얼(Pre-Visual) 작업이다. 촬영에 앞서 무술팀이 영화 속 액션신을 동영상으로 찍고 편집해 영상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동선 분석과 액션 디자인을 아우르는 치밀한 밑그림으로 촬영 전에 액션신의 절반 이상을 완성하는 셈이다. 그는 말한다. “고민은 촬영장 가기 전에 다 끝낸다. 단단히 준비하니 현장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신 감독은 ‘협녀’를 찍으며 “한국 무협 장르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했다. “관객이 신선하다고 느낀 액션을 꾸준히 갈고 닦으면 그게 바로 한국식 액션이다. 한국영화에서 좀 더 다양한 액션을 만나고 싶다고? 그러면 ‘어디서 베껴 왔다’고 질타만 하지 말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조언하고 격려해 달라.” 신 감독의 당부다.


-복수·대의·야망, 세 자루의 검-

‘협녀’에는 세 가지 명검이 등장한다. 고려 말기 무신정권에 대항해 민란을 주도한 풍진삼협의 세 검객, 유백·월소·풍천(배수빈)의 검이다. 김윤석 소품실장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쓰였던 검을 바탕으로, 중국·일본의 것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검 주인의 성격과 특징도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했다. 강하고 남성적 이미지를 살린 유백의 검은 실제 고려시대에 쓰인 것보다 두꺼운 것이 특징. 한쪽에만 날이 선 도검으로, 디자인은 일본 것을 참고했다. 손잡이에는 조선 시대에 많이 쓰였던 완자 무늬(‘卍’자 모양을 이어서 만든 것)를 새겼다. 월소의 검은 여성스러운 곡선을 가졌다. 다른 검보다 얇고, 휘두르면 칼 끝이 떨릴 정도로 유연하다. 양날 검으로, 디자인은 중국 것에 가까우며 손잡이에 용 문양을 새겼다. 풍천의 검은 강직한 품성을 드러내기 위해 ‘정직’을 테마로, 수수하고 묵직한 느낌을 살렸다. 훗날 홍이에게 전해지는 이 검은 ‘천하 제일의 명검’이라는 영화 속 대사답게 세 검 중 가장 길고 무겁다.

각각은 검은 쇠로 만들어진 진검을 비롯, 타이트한 액션을 위한 스테인리스, 안전을 고려한 강화 플라스틱 등 세 가지 소재로 제작됐다. 신 감독은 “‘협녀’에서 칼은 흉기가 아니라 무공을 겨루는 도구”라며 “ 캐릭터 간의 긴장과 충돌을, 검을 통한 힘의 반작용·관성 등 물리적인 현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글=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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