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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적 70년, 다시 제조업이다

광복절인 15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1고로에서 쇳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쇳물은 1968년 창업한 포스코 역군들의 피땀 어린 자부심을 상징한다. 이 쇳물 이 한국 제조업의 기둥인 자동차·전자·조선산업을 일으켰다. [사진 포스코]


1967년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제조업체 하나가 서울 사무소를 열었다. 이 회사의 울산 공장에선 포드에서 들여온 ‘코티나’를 조립했다. 하루 10대가량, 1년에 3000대 생산이 고작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이렇게 시작했다. 69년 학군단(ROTC) 공채로 입사한 이충구 전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은 “기술이랄 것도 없이 볼트·너트를 끼워 맞추던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1>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광복 직후 국민소득 60달러
3만 달러로 이끈 건 제조업
지금은 중국에 추격당할 판
“제조업 무너지면 그리스 꼴
기업은 IT 융합 기술 무장을
정부는 규제 칸막이 없애야”



 그리고 ‘반세기’가 지났다. 현대차그룹은 연간 80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글로벌 ‘빅 5’ 업체로 우뚝 섰다. 그 밑거름은 엄청난 노력과 근성이었다. 80년대 중반 ‘독자 엔진’ 개발에 나섰을 땐 제휴업체였던 일본 미쓰비시가 훼방을 놓았고, 독일 부품 업체 보쉬는 ‘삼류 회사’라며 거래를 거부했지만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광복 70년, 최빈국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강국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 이면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창업자와 잘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기술자·근로자들의 땀방울이 있었다. 반도체·조선·건설업 등도 비슷한 성장의 길을 밟으며 세계적 산업으로 컸다.





 광복 직후 1인당 소득은 ‘60달러대’로 아프리카 소말리아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들 ‘주력 산업’ 덕분에 어느새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나는 한국이 두렵다』의 저자 제프리 존스(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김앤장 변호사는 “한국 주력산업의 경쟁력은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며 “이들이 더 자유롭게 경쟁력을 발휘하게 도와 미래 70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리 기업이 구사해왔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세상에 없는 제품·서비스를 내놓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가 아니면 생존이 어렵다.



 마르코 아눈지아타 제너럴일렉트릭(GE)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3D 프린팅·자동화센서 같은 첨단 정보기술(IT)을 융합해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어려움을 크게 겪는 조선·철강·석유화학 등부터 고부가가치 위주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력 기업들도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취재팀이 찾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선 친환경 신공법을 통한 ‘고강도 강판’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현대차의 경기도 의왕 중앙연구소는 IT를 결합한 ‘무인주행기술’을 무기로 다듬고 있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제사적으로 볼 때 자동차·건설 등은 지속적으로 키워야 하는 산업”이라며 “이를 소홀히 하면 결국 그리스 같은 나라로 전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근 서울대 경제연구소장은 “제조업이 융합하는 추세인데 ‘규제 칸막이’가 여전하다”며 “정부부터 ‘퍼스트 무버(선도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준술(팀장)·함종선·문병주·황의영·김기환·임지수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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