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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의 유레카, 유럽] 강경 좌파 코빈 신드롬 … 영국 노동당 ‘제3의 길’ 기로에

코빈


가히 ‘코빈매니아(Corbynmania)’라 부를 만하다. 영국 노동당의 새 당수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반(反)긴축과 에너지·철도의 재국유화를 주장하는 강경 좌파 제레미 코빈(66) 광풍이 불고 있다. 뚜렷한 권력의지 없이 그저 당내 ‘전통 좌파’를 대변하는 후보로 나섰을 뿐인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노선은 강성이지만 부드럽게 말하는 평범한 ‘백벤처(backbencher·의사당 뒷줄에 앉는 평의원)’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유세하러 가는 곳마다 이미 수퍼스타가 돼 버린 그와 악수를 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장사진을 치고 기다린다. 노동당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지지율 53% … 새 당수 선출 유력
‘생산수단 공유’ 당헌장 부활 주장
대학 수업료 면제, 철도 국유화도
일각 “좌파 회귀 땐 집권 못해” 우려



 지난 5월 영국 총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집권 보수당에 참패한 야당 노동당은 지난 14일(현지시간)부터 새 당수를 선출하는 우편투표에 들어갔다. 의원·당원·노조원과 등록 일반 유권자 등 60여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투표는 다음달 10일까지 계속된다.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난 에드 밀리밴드 당수의 후임은 9월 12일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 11일 발표된 더 타임스 여론조사에서 코빈은 53%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21%의 앤디 버넘(45) 의원보다 32%포인트나 앞섰다.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의 피터 켈너 사장은 “코빈 후보가 KO승으로 향하고 있다”고 예측했다.



 강경 좌파 코빈의 급부상은 ‘제3의 길’ 또는 ‘블레어주의’로 중도층을 넓혀 1997~2010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총리가 13년이나 집권했던 신노동당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는 혁명적 사건이다.





 코빈은 사실 노동당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6월 15일 후보 등록 마감 직전에야 간신히 추천의원 35명을 확보해 경선에 나설 수 있었다. 코르비니즘(코빈주의)을 이해하는 핵심 코드는 ‘급진성’이다. 이는 그의 공약에 뚜렷이 드러난다. 긴축반대는 간판 메뉴다. 이 구호로 집권한 그리스의 급진좌파 시리자, 스페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좌파연합 포데모스와 함께 유럽에 강력한 ‘좌파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코빈은 캐머런 정부가 긴축을 지속하면 영국의 복지 수준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지경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러면서 복지지출 확대와 노동조합을 보호하는 관련법 강화를 주장해왔다.



 코빈은 또 브리티시 가스(British Gas)·SSE·Eon·RWE·스코티시파워(Scottish Power)·EDF 등 영국 전기·가스 공급시장을 지배하는 이른바 ‘빅6’를 공적 통제 또는 공적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도 재국유화도 주장해왔다. 블레어가 95년 개정한 당 헌장 제4조의 부활도 꿈꾼다. ‘생산·분배·교환 수단의 공동 소유’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이는 노동당 국유화 정책의 뼈대였다. 이 조항은 ‘노동당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건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코빈은 또 대학 수업료를 면제하겠다고 약속했다.



 ‘비타협적’이란 수식어 역시 그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97년 이후 코빈은 의회에서 500번 이상이나 당의 노선에 반대하는 투표를 할 정도로 정치적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왔다. 동료 의원인 에밀리 소른베리는 “코빈은 타협적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다. 그러나 당수가 되기 위해서는 협상과 타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코빈이 걸어온 길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전기 엔지니어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다. 공공부문 노조단체인 옛 전국공무원노조(NUPE)의 상임 활동가로 일한 노조 출신이다. 그는 83년 이슬링턴 노스 지역구에서 하원에 당선한 이래 20년 넘게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에섹스대 폴 화이틀리 교수는 “유권자들은 이제 단순히 정치인들의 좌우 성향만 따지는 게 아니라 그가 실제로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물어본다”며 “그리고 영국이 직면한 문제들을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말하는지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화이틀리 교수는 “이런 점에서 코빈은 해로운 화법으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고 말했다고 BBC는 전한다.



 노동당에선 코빈의 부상을 달갑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지난달 22일 싱크탱크 프로그레스가 주최한 모임에서 “전통적인 좌파 공약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코빈이 노동당 당수가 되면 2020년 총선도 보수당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노동당에선 코빈만 아니면 된다는 ‘반(反)코빈’ 연대가 결성될 움직임도 일고 있다. 코빈이 노동계급의 영웅으로 우뚝서게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사그라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경환 중앙SUNDAY 외교안보에디터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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