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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후환이 된 일본 전범 유골

남정호
논설위원
2013년 10월 이탈리아 소도시 알바노의 성당 앞. 검은 운구차가 나타나자 몰려든 시위대에서 고함이 터졌다. “시신을 쓰레기장으로 보내라.” 제2차 세계대전 때 로마 근처에서 335명을 학살한 나치 친위대 출신 에리히 프리프케의 장례식에 분노한 시민들이었다.



 그는 용케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호텔 지배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1995년 정체가 탄로나 이탈리아로 추방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100세로 숨진다.



 문제는 사후에 일어났다. 그를 묻으려던 후손들은 묘 터를 구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물론 독일·아르헨티나 모두 시신을 안 받으려 했다. 그의 무덤이 극우파의 성지가 될 걸 우려한 거다. 결국 그는 겨우 이탈리아 교도소 내의 버려진 묘지에 묻힌다.



 나치 전범들은 죽어도 묻힐 땅 한 조각 얻지 못한다. 1948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헤르만 괴링 등 11명의 유해는 화장돼 강에 버려졌다.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숨어 지내던 아르헨티나에서 60년 납치돼 이스라엘로 끌려간다. 거기서 처형된 아이히만 역시 한 줌의 재로 변해 바다에 뿌려졌다. 멀쩡한 무덤이 철거되기도 했다. 감옥에서 숨진 나치 부총통 루돌프 헤스는 독일 분지델 묘지에 묻힌다. 하지만 신나치주의자들이 몰려들자 당국과 유족은 시신을 화장해 호수에 뿌렸다.



 일본 전범들도 원래는 같은 운명이었다. A급 전범 28명을 심판했던 도쿄 재판 때 맥아더 사령관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처형된 7명의 유골을 유족에게 건네려 했다. 그러자 소련 쿠즈마 데레이얀코 중장이 “유골을 보관하면 군국주의가 부활한다”고 반대해 결국 화장해 재를 도쿄만에 뿌린다.



 여기서 끝났다면 야스쿠니 논란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데 일본 헌병(또는 화장장 인부)이 유골을 한 줌씩 빼돌린 게 화근이었다. 한 절에 보관돼 있던 유골은 60년 아이치현 산가네산으로 옮겨져 일본 우익의 성지인 ‘순국칠사묘(殉國七士廟)’가 탄생한다.



 우경화 바람이 거세진 78년엔 아예 이들과 종신형을 받았던 7명까지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다. 유골이 후환이 될 거란 예언은 정확했던 셈이다.



 15일 일본 현직 각료와 의원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공물료를 냈다. 이대론 야스쿠니 논란이 무한 반복될 게 뻔하다. 야스쿠니 대신 별도의 추모시설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일본에서도 나온다. 한국 정부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 대안으로 압박할 만하지 않을까.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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