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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비례대표를 위한 변명

강원택
서울대 교수
정치외교학
비례대표 의원의 증원 문제가 최근 여야 간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논의를 지켜보면서 정치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선거구 재획정으로 생기는 문제는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 심지어 같은 당 경대수 의원은 공천 비리의 온상이 비례대표라고까지 말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구 의원들은 비례대표 의원이 ‘선거’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못한, 말하자면 ‘2등급 의원’쯤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비례대표제는 5·16 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선거법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중앙일보에 연재 중인 회고록을 통해 김종필은 비례대표제 도입 이유를 지역 기반이 약한 “이북 출신 혁명동지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2015년 5월 18일자 6, 7면> 이처럼 비례대표제는 결코 순수하지 않은 정치적 의도에 의해 도입되었고, 비례의석 배분 방식도 전혀 비례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는 그 이후 계속해서 유지돼 왔고, 의석 배분 방식도 2004년 정당 투표 도입 이후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는 방식으로 정상화되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의 편견과 달리 비례대표 의원의 존재는 한국 정치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역구 의원은 자신이 지역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당선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지역구 의원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나라 일을 다루는 ‘국회(國會)의원’이라고 하지만, 지역구 의원은 자기 지역구의 이익을 중앙 정치에 반영하려는 대리인의 역할에 더 충실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국가 이익과 지역구 이익 간 갈등이 생길 때 이들은 지역구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예산안 처리 때마다 지역구 민원 처리를 위한 수많은 ‘쪽지’가 난무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이에 비해 비례대표 의원은 특정 지역의 협소한 이익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국가 이익을 바라볼 수 있다. 국가 전체를 고려한 정책 결정에서 비례대표 의원이 보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비례대표제가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대표성이다. 국회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므로 다양한 구성원이 고르게 대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지역구 의원을 보면 특정 출신 배경을 갖는 이들로 편향되어 있다. 예컨대 성별로 보면 남성이 압도적이다. 19대 국회 지역구 의원 가운데 남성의 비율은 무려 92.3%다. 이에 비해 여성의 비율은 지역구 의석의 7.7%에 불과하다. 대조적으로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전체 54석 중 여성이 28명으로 52%를 차지하고 있다. 비단 성별뿐만 아니라 재산, 학력, 직업, 연령, 인종 등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지역구 선거를 통해 의원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혼 이주민인 이자스민 의원이나 탈북자 출신의 조명철 의원도 지역구 선거를 거쳐야 했다면 당선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례대표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우리 국회는 ‘연줄 있고, 재산 있고, 나이 들고, 더 배운 남성’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처럼 지역구 선거는 사회적 강자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기득권층의 목소리만 커져간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 비례대표 의원들은 ‘선거’를 치르지 않고 당선되었다고 이들을 ‘얕잡아 보는’ 일부 지역구 의원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될 수 있는’ 영남의 새누리당, 호남의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역구 의원들은 과연 제대로 된 선거를 치렀다고 할 수 있을까. 이들도 비례대표 의원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정당 공천에 의해 당선돼 왔기 때문에 자신을 비례대표 의원보다 ‘우월한’ 존재처럼 생각하는 자세엔 문제가 있다.



 그동안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선출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도록 제도를 개선하면 될 것이다. 그것을 빌미로 비례대표를 폄하하거나 축소하려는 태도는 무지나 오만의 소산이다. 비례대표 의원은 결코 ‘덤’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에게는 지역구 한 표만큼이나 정당 투표 역시 소중한 선택이다. 더욱이 협소한 지역 이익의 볼모가 되고 있는 지역구 의원보다 국가 전체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비례대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역구를 줄이고 대신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역 의원의 기득권 때문에 어렵다면 의원 정수를 늘려서라도 비례대표 의석을 증원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 개혁의 방향이다. 비례대표의 다선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비례대표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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