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연애를 동화로 배웠네]<30)>인어공주…우유부단한 걸까, 어장관리일까

나는 착한여자


“oo은 참 착한 것 같아.”

소개팅남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깊이 여러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스스로 나답다고 생각하는 나를 꺼내 올릴까 하다가 참았다. 유지하던 선을 그대로 뒀다. 적극적이지 않던 나의 답은 애매한 미소였다.

내숭이 아니었다. 첫 만남부터 합이 맞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짝이 되면 좋을 것 같은 상대였다. 그런데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다. 겉돈다. 말 잇는 게 힘들다. 어색해서 그런 걸까. 조건은 나쁘지 않지만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성격차이다.

그런데 끝낼 수 없다. 미련인지, 혹시나 다음 만남에는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인지, 드세다는 고정관념(직업 때문에)을 갖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어필하고 싶은 마음인지, 내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이쯤 되는 조건이면 대충 맞춰주는 게 맞는 건지, 나이스한 여자처럼 보이며 어장관리하고 싶은 마음인지….

게다가 예쁘다


정의하기 힘든 게 연애이자 관계인지라, 남자의 알 수 없는 막말과 막 대하는 듯한 행동에도 난 웃었다. 그러다 마침내 참 착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네. 욕 같은 칭찬을 받은 기분이다. 허허.

단언컨대 동화 때문이다. 동화 속 여주인공들은 대충 다 수동적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신데렐라도, 백설공주도, 지젤도. 어릴 적 처음 접한 로맨스는 그랬다. 여자는 지고지순하고(라고 쓰고 예뻐야 한다고 읽는다), 왕자는 그런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시련을 겪는다. 여자는 남자가 날뛰는 사이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마침내 둘의 숭고한 사랑은 이뤄진다! 그나마 적극성을 가진 인어공주도 말 못한다는 이유(필담도 있을 텐데)로 발만 동동 구르다, 물거품으로 변하는 대참사를 겪지 않았던가. 정리하자면, 여자는 저주에 걸려도 순응하며 기다려야 하고, 남자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배움이 있었다.

성질도 안 부려요


인어공주의 언니: “우리의 긴 머리카락을 마녀에게 주고 대신 이 칼을 받아 왔단다. 해가 뜨기 전에 이 칼로 왕자님의 심장을 찌르거라. 왕자님의 더운 피가 네 발에 쏟아지면 다시 인어가 될 수 있단다.”

인어공주: “아,안 돼.내가 어떻게 왕자님을…(결국 물거품이 됨)” -네*버 지식아웃에서 동화책을 보고 인어공주 대사를 옮긴 네티즌의 글 중 발췌.

위의 남자와는 결국 쫑났다. 당연히 먼저 내치지 않았다. 어장관리 같은 우유부단한 만남이 이어지다 흐지부지 끝났다. 소개팅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전문직 남자다. 그는 바쁘다. 평일에는 늘 새벽까지 일한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간다. 늘 파김치가 되어 있는 그를 주로 금요일 저녁에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술을 먹잖다. 신실한 교회오빠라고 소개받았는데, 정말 주(酒)사랑이 대단하다. 1차ㆍ2차ㆍ3차ㆍ4차…. 회사 법카로, 밤 사이 어떻게든지 더 많은 술집에 다니며 비싼 것을 시켜서 먹고 마시며 보상받으려 한다.

그러나 속마음


그는 원샷과 함께 한 주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데 나도 동참하라고 계속 잔을 부딪치며 격려한다. 그의 관심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비워야하는 주(酒)님에 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또 거절을 못 하고 있다. 만남도, 술잔도. 게다가 만나고 나면 원샷의 후유증이 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안 난다. 대충 그는 늘 짜증이 나 있거나 매사에 심드렁했기에 불쾌하다.

만나자고 할 때마다 선선히 만나니 그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아는 것 같다. 파김치인 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늘 건네니 더 그런 것 같다(물론 ‘나보고 어쩌라고 찌질아’라는 말도 속으로 되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약속 시간보다 40분가량 늦게 나타났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당연하다는 듯이 일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을 들먹이며 “좋은 데도 많이 가고, 참 편하고 할 만한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이 하는 일만 힘들다는 찌질이다. 더이상 웃을 수 없다. 아, 가면이 벗겨진다. 표정 관리가 안 된다. 이제 끝이다. 우유부단도, 어장관리도.

걸리기만 해봐라


술집을 박차고 나왔다. 가열차게 걸어가는데 남자가 끈덕지게 따라온다. 결국 나를 붙잡는다.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미안하다”고 했다. “앞으로 늦지 않겠다”와 같은 류의 말도 했던 것 같다. 자, 여기서 대충 덮고 동화 속 공주처럼 수동형 인간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런데 뇌보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야,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마.”(※지문: 얼굴의 온 근육을 사용해 잡아 먹을 듯한 표정으로 또는 사자가 포효하듯이)

“연락하면 죽는다” “꺼져 XX야” 같은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속시원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말과 함께 동화 같은 마무리를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우유부단도 어장관리도 피곤하다. 앞으로도 단호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내 삶은 동화가 아니고, 주인공은 공주가 아닌 나다. 아몰랑.

단호박 기자 spicypumpkin@joongang.co.k*r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 칼럼은 익명으로 게재됩니다. 필자는 JMNET 기자 중 한 명입니다. 연애 이야기를 문화 콘텐트로 배우는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 연애땡땡 핫이슈 페이지 바로가기 ◆◆◆◆◆◆

▶지난 ‘연애를 ○○으로 배웠네’ 보기 ↓
[연애를 동화로 배웠네]<30)>인어공주…우유부단한 걸까, 어장관리일까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29) 오늘 전화하면 우리 헤어질 거 같아
[연애를 드라마로 배웠네](28)학원 오빠 마음을 얻으려 그녀가 됐다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27)‘원나잇의 꿈’에 대한 한편의 괴담
[연애를 여행으로 배웠네](26)나의 에단 호크를 찾아서
[과학을 연애로 배웠네](25)이지적 그녀와의 과학적 사랑
[연애를 시트콤으로 배웠네](24)당신에게 최악의 소개팅은?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23) 커피소년 ‘장가갈 수 있을까’ - 시집갈 수 있을까
[연애를 그림으로 배웠네](22) 에곤 실레…짐승처럼 솔직했던 그 남자
[연애를 영화로 배웠네](21)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요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연애를 어워즈로 배웠네](20) 누가 연애 제일 잘 했나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19) 남자들이여, 왜 사귀자고 말 안하나? -노래 ‘썸’
[연애를 오페라로 배웠네](18) 시집간 그녀가 왜 연락했냐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17) 나는 그가 그립다 -노래 ‘편지’
[연애를 여기저기서 배웠네](16) 고백, 어디까지 해봤니? -영화 ‘제리 맥과이어’ 외
[연애를 노래와 드라마로 배웠네](15) 최악의 이별이란?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 외
[연애를 동화로 배웠네](14) 선배를 먼저 좋아한 건 나에요! -동화 ‘인어 공주’
[연애를 동화로 배웠네](13) 웃겨서 연애하는 여자 -동화 ‘회색 아이’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12) 당신의 ‘실연송’은 무엇인가요? -노래 ‘우아하게’
[연애를 영화로 배웠네](11) 연애는 못해도 ‘용만이’는 되지 말자 -영화 ‘연애의 온도’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10) 과연 남자들은 첫사랑을 못 잊을까? -노래 ‘끝사랑’ 외
[연애를 영화로 배웠네](9) 사랑도 계획하는 남자 -영화 ‘플랜맨’
[연애를 우정으로 배웠네](8) 남자인 친구와 키스한다면? -영화 ‘싱글즈’ 외
[연애를 고전으로 배웠네](7) 그 남자, 당신 손을 왜 잡았을까? -희곡 ‘돈 후안’
[연애를 영화로 배웠네](6) 동굴 속의 여자 -영화 ‘봄날은 간다’
[연애를 노래로 배웠네](5) 남자의 눈물 뒤에 감춰진 것은-멍멍이도 진심은 알아본다 -노래 ‘마법의 성’ 외
[연애를 KPOP으로 배웠네](4) 외모ㆍ성격 완벽남을 나는 외면했네 -노래 ‘나만 바라봐’
[연애를 애니로 배웠네](3) 그의 코털 하나도 구원하지 못했네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연애를 영화로 배웠네](2) 그토록 다정하던 그 남자, 왜 말이 없나 -영화 ‘그녀’
[연애를 소설로 배웠네](1) 세상에 너무 많은 오네긴 -소설 ‘예프게니 오네긴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