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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①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들을 10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예심을 한 10명의 시인·소설가·평론가가 후보작의 의미 등을 맛깔나게 전합니다. 15회째를 맞는 미당·황순원문학상은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했습니다. 최고의 시 , 최고의 단편소설 한 편씩을 뽑습니다. 수상작은 9월 22일께 발표합니다.



지옥도 같은 현실, 신의 자비를 기원하다

시 - 김안 ‘디아스포라’외 11편




디아스포라



어머니, 당신은 나의 말 바깥에 계십니다. 그곳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이곳의 하루는 멀고 지옥은 언제나

불공평합니다. 어제까진 입을 벌리면 눈 먼 벌레들

쏟아지더니 오늘은 모래뿐입니다. 나는 죽은 쥐의 가면을 쓴 채

부푼 샅에 손을 넣고선 나의 오래된 방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립니다.

어머니, 당신은 나의 모어(母語)로는 쓸 수 없는 것들입니다.

꽃밭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꽃은 여전토록 아름답습니다.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나는 쓸 수 없습니다. 저 꽃을 어떻게 죽여야 합니까?

그러나 당신은 이토록 아름다운 붉은 꽃들을 토하며 어디에서든 나타납니다.

어머니, 당신의 모국어는 너무나 낯설고, 매일이 사육제인 것처럼

나의 말 바깥에서 웅얼거리는 모국어의 서늘한 빛살이 간절하게

방 안으로 쏟아집니다. 하지만 이곳의 생활에도

나름의 규칙과 나름의 관계들이 있습니다. 매일 밤 나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

또 한 명의 어머니는, 또 누구입니까? 내 말이 본향은, 어디입니까? 나는 누구의 모어와

관계하고 있는 겁니까?





김안(사진)의 시는 지옥도와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후보작들을 읽고 나면 전쟁과 역병이 휩쓴 중세의 어느 마을을 통과한 기분이 들 정도다. 살과 피가 썩는 장면은 예사다. 비탄에 빠진 사람들이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그의 시는 기이하고 섬뜩하다. 우리는 이것을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우리 시대에 대한 암시로 읽을 수 있다. 김안의 시는 관념적이라는 인상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부조리한 말들을 모아놓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해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세계’를 어떻게든 책임지려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힘을 갖지 못한 시인은 어떻게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오직 하나, 기도가 있을 뿐이라고 김안은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신을 향해 탄원한다. 자비를 베푸소서. 부디 우리를 굽어 살피소서. 그러나 기도를 하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언어가 무기력한 혼잣말 같다는 합리적 의심에 사로잡힌다. 그 의심 때문에 절망하지만 절망은 더욱 간절 한 기도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관념성이 강하고 허공에 뜬 말 같다.



시 잘 쓰는 시인은 많지만 김안처럼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책임지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점이 예심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고통받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동시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한 기도하는 시인이다.



박상수(시인·평론가)



◆김안=1977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인하대 국문과 박사 과정. 시집 『오빠생각』 『미제레레』.





눈을 감으니 보이네, 일상에 숨은 불길함

소설 - 강영숙 ‘맹지’




강영숙(사진)은 직관이 뛰어난 소설가다. 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면 목가적으로 느껴지는 평면적 진실은 불길한 징후들이 뒤엉킨 입체적 혼돈으로 뒤바뀐다. 종종 문장과 서사의 매무새가 깔끔하게 정돈된 소설을 좋은 소설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말하는 평자들이 있다. 소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나 단면적 인물을 중심으로 한 간결한 사건을 다룰 때 문장은 안정적이고 서사는 군더더기 없는 형태로 종결될 수 있다. 특히 단편소설에 있어 작품의 외형적 단아함은 성취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소설가가 어떠한 논리를 통해서도 이해가 불가능한 인간의 내면을 재현하고 있거나 인간의 정념이 어지럽게 뒤섞인 거대한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코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도 없거니와 정돈된 서사의 형태로 제시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일은 내장처럼 구불구불한 도시의 지하를 몇 개의 색과 선으로 표시하는 지하철 노선도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편 ‘맹지’는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나’의 짝사랑과 부품 창고가 있는 ‘건수 산업단지’로의 외근을 서사화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개발이 중단된 건수는 문명의 폐기물들이 적재된 일종의 ‘유령도시’다. 짝사랑하고 있는 지영에게 줄 마카롱 상자를 들고 불길한 도시를 배회하는 ‘나’는 이곳에서 타인에 대한 약간의 호의로 포장된, 사실은 인간에 대한 적의와 살의, 분노와 증오라고 부를 수 있는 오염된 정념이 자신의 내면에 아무렇지도 않게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영숙은 불길함을 응시하는 문장의 피카소처럼 명도만으로 이 어두운 시대의 심연을 그려내고 있다. ‘맹지(盲地)’는 ‘눈먼 인간들의 땅’이며, 눈 감은 소설가의 망막 위에 어른거리는 시대의 어두운 초상이다.



서희원(문학평론가)



◆강영숙=1966년 춘천 출생. 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 하는 밤』, 장편소설 『리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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