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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새며느리밥풀·도둑놈의갈고리 … 이름이 험할수록 예쁘답니다





‘천상의 화원’ 태백 분주령



























국내 최대, 아니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를 다녀왔다. 야생화 매니어 사이에서 분주령이라고 불리는 강원도 태백시의 고원지대다. 환경부가 지정한 공식 명칭은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평균 해발고도 1200m가 넘는 백두대간 마루금 언저리인데, 길섶이 들꽃 천지다. 2004년부터 열 번은 족히 드나들었지만, 이 순전한 야생화 세상에 다시 ‘천상의 화원’이라는 고루한 표현을 쓰고 만다. 빈약한 상상력과 가난한 어휘력만 탓할 따름이다.





야생화 원정대





하늘나리 │ 여름 숲의 주인공이라면 하늘나리다. 꽃이 크고 색깔이 강렬하다. 꽃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하늘나리가 있고 말나리가 있는데, 꽃이 하늘을 바라보고 피어 있으면 하늘나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말나리다.




지난달 말 오전 11시 태백 두문동재 주차장. 주차장이 맞기는 한데, 해발 1268m 위의 주차장이다. 두문동재는 강원도 정선과 태백을 가르는 백두대간의 고개다. 영동과 영서도 이 고개로 갈린다. 이 고개에 차를 세우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분주령 야생화 트레킹은 명색이 백두대간 트레킹이지만, 출발지점의 고도가 워낙 높아 그리 버겁지 않다. 분주령 야생화 트레킹은 고된 산행보다 한가한 꽃놀이에 가깝다.



원래 분주령 꽃놀이는 봄이 더 제격이다. 분주령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이 봄에 많이 개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름이 안 좋다는 건 아니다. 여름에는 대신 야생화 종류가 훨씬 많다. 게다가 여름 야생화는 봄 야생화보다 대체로 크다. 웃자란 풀숲을 헤치고 벌이 내려앉으려면 꽃이 크고 강렬해야 한다.



올여름에는 원정대를 꾸렸다. 이른바 야생화 원정대다. 나라에서 야생화를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니, 팔자 좋게 꽃 타령만 늘어놓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태백시 김상구(63) 생태해설사가 원정대를 이끌었고, 한국관광공사에서 야생화 사업을 담당하는 문지영(36) 레저스포츠관광팀 차장 등 2명이 나왔다. 분주령만 100번 넘게 왔다는 오지여행 전문가 이원근(39) 여행박사 팀장도 원정대에 합류했다. 야생화에 관하여 다들 한마디씩 거들 만한 인사다.



오솔길 입구. 첫 번째 안내소다. 태백시에서 나온 감시대원이 상주한다. 분주령, 그러니까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의 주요 구간은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하루 300명만 들어갈 수 있다. 감시대원이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출입증을 건넨다. 마지막 안내소가 있는 검룡소에서 반납할 때까지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2004년 처음 들어왔을 때는 안내소는커녕 이정표도 없었다. 들꽃 만발한 풀숲을 헤치며 길을 내고 다녔다. 지금은 울타리를 쳤거나 데크로드를 깐 구간도 있다. 태백시에서 생태해설가도 운영하고, 감시대원도 곳곳에 배치돼 있다. 당연한 조치다. 전체 면적 4.2㎢(약 127만 평)의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에는 1000종이 넘는 식물이 서식한다. 대성쓴풀·노랑무늬붓꽃 같은 보호식물은 18종이나 된다.



시방 민간인이 출입할 수 있는 지역 중에서 분주령만큼 야생화가 많은 곳은 없다. 숫자나 종류 모두 분주령은 독보적이다. 나라가 국토의 산림 70%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작정이라지만, 여기만큼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리라 믿는다. 대통령의 야생화 사랑이 진심이라면 말이다.

 



야생화라는 세상



짚신나물 │ 이 녀석도 잎이 어릴 때 먹는다. 잎의 주름이 짚신 모양이어서 짚신나물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옛날에 짚신을 신고 다니다 보면 잔털 많은 이 녀석 열매가 잔뜩 붙어서 짚신나물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궤양에도 좋다고 하고 고혈압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오솔길에 들자마자 야생화 천지다. 풀숲이 죄 야생화다. 짚신나물·강활·큰뱀무·도둑놈의갈고리·솔나물·새며느리밥풀·여로·동자꽃·기린초·두메고들빼기·큰까치수염…, 열거하다 보니 끝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름이다. 10년 넘게 야생화를 쫓아다녔어도 꽃 이름은 여전히 입에 잘 안 붙는다. 꽃만 봐선 모른다. 잎이나 줄기, 심지어 뿌리나 열매에서 이름이 비롯된 것도 많다.


 




“길쭉한 줄기에 노란 꽃이 달린 이놈이 짚신나물이에요. 귀한 놈은 아닌데, 알아두면 좋은 놈입니다. 짚신나물을 선학초(仙鶴草)라고도 해요. 이걸 먹으면 신선처럼 된다는 거지.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네. 그렇다고 함부로 뜯어 가면 큰일납니다. 벌금이 최대 2000만원이에요. 요즘엔 덜하지만, 옛날엔 정말 많이들 캐 갔지. 왜 짚신나물이냐고요? 열매가 열려야 알 수 있어요. 열매에 갈고리 같은 잔털이 잔뜩 붙어 있거든. 옛날엔 이놈 열매가 짚신에 잔뜩 달라붙었다고 하네.”



김상구 해설사의 설명에서 흥이 묻어났다. 야생화에 빠진 사람들이 야생화를 말할 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는 태백에서 운수업을 하다 정년 퇴임하고 생태해설사가 됐다고 했다. 전국에는 꽃에 기대어 사는 어르신이 많다. 김상구 해설가처럼 꽃과 더불어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어르신도 많고, 꽃을 찾아 팔도 강산을 유람하는 어르신도 많다.




야생화를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야생화 한 송이는 스스로 하나의 생명이다. 하나의 생명이어서 하나의 세상이다. 짚신나물 한 포기에도 수많은 사연이 포개져 있다. 다른 꽃도 마찬가지다.



노루오줌 │ 이른바 ‘오줌 풀’ 가운데 여름 숲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녀석이다. 꽃이 크고 예뻐서 꽃꽂이에서도 자주 쓰인다. 고개를 숙이면 숙은노루오줌이다. 꽃은 의외로 향기가 좋다. 뿌리에서 지린내가 난다.
여름에 흔히 볼 수 있는 들꽃 중에 노루오줌이란 녀석이 있다. 이름이 고약하다. 그러고 보니 쥐오줌풀도 있고 여우오줌도 있다. 멧돼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뿌리에서 역한 냄새를 발산하는 녀석들이다. 그러나 녀석들의 꽃은 향기가 좋다. 역한 냄새는 뿌리에서만 난다. 멧돼지가 뿌리를 캐 먹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도대체 누가 노루와 쥐와 여우의 오줌 냄새를 분간해 이름을 지었을까.


 




우리 야생화야말로 괴상하거나 기발한 이름의 보고(寶庫)다. 새며느리밥풀과 며느리밑씻개에는 서러운 시집살이의 기억이 서려 있고, 동자꽃에는 동자승의 애틋한 전설이 얹혀 있다. 도둑놈의갈고리도 짚신나물처럼 열매에 잔털이 많아 여기저기에 붙어다녀 붙인 이름이다. 우리의 꽃은, 이름이 험할수록 예쁘다.












야생화를 생각하다





개망초 │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 야생화에 속하지 못한다. 귀화식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계절 우리 산야에서 이 녀석만큼 흔한 것도 없다. 여느 서양 꽃처럼 요란스럽지도 않아서 볼수록 정이 간다.




개망초 군락지로 접어들었다. 사실 여름 분주령의 주인공은 개망초다. 제일 흔하다. 계란프라이처럼 노랑과 하양의 색깔 대비도 강렬하다. 그러나 이름이 ‘개’ 자로 시작하는 놈치고 대우받는 놈은 없다. 사람들이 다른 꽃을 안 밟으려고 개망초를 밟는다. 온 강산에 이놈이 흐드러졌을 때 일제가 쳐들어와 이름에 ‘개’와 함께 ‘망(亡)’ 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개망초 앞에 서면 늘 심란하다. 개망초는 종종 외래종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개망초가 들어온 것도 100년 전 일이다. 우리에게 외래종과 토종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니, 야생화란 무엇인가. 풀꽃이 야생화인가? 그럼, 나무에 피는 꽃은? 화단이나 화분에 핀 야생화는 또 무엇인가. 오랜 세월 삭히고 삭힌 질문이다. 이번 취재를 앞두고 여러 야생화 전문가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지리멸렬했다. 신정섭 한국생태문화연구소장의 답변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우리 땅에서 피면 우리 꽃 아닌가요? 나무에서 피든, 미국에서 들어왔든, 화분에서 자라든 우리 꽃 아닌가요? 정부가 야생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청와대 앞에 꽃밭을 일구고, 지역마다 야생화 공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게 나쁜 건가요? 물론, 야생화 군락지를 보존하고 생태관광 명소로 가꾸는 일이 제일 중요하겠지요. 저는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야생화 트레킹은 시간이 한없이 늘어진다. 꽃 한 송이 만날 때마다 고개 숙여(때로는 엎드려)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꽃은 죄 잘다. 여름 꽃이 봄꽃보다 크다지만, 여름 꽃도 새끼손가락 첫째 마디만한 게 대부분이다. 사람이고 꽃이고, 토종은 다 작고 왜소하다.



트레킹 막바지. 일행 모두가 막 분홍 꽃망울을 터뜨린 속단을 들여다볼 때였다. 서른 명 남짓한 무리가 휑하니 지나갔다. 그들의 잰걸음을 바라보던 이원근 팀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딱 보니까 버스 한 대 빌려서 온 단체네요. 저렇게 빨리 가면 뭐가 남을까요? 저 분들에게 분주령은 걷기에 좋은 길이겠지요. 꽃 한 송이 기억에 안 남아 있겠지요. 여행사는 한계가 있어요. 전문 지식도 없고, 예산도 없어요. 해설 프로그램부터 제대로 돼 있으면 좋겠습니다.”



검룡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정표에는 예정시간이 4시간으로 나와 있지만, 5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주차장에 우리를 앞질렀던 무리의 버스가 서 있었다. 그렇게 서두르더니 겨우 이만큼 먼저 와 있었다.









●여행정보=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인터넷으로만 예약이 가능하다. tour.taebaek.go.kr. 하루 300명 제한. 태백시 환경보호과 033-550-2061. 태백시가 주말에 일부 구간에서 무료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두문동재에서 약 2㎞ 구간과 검룡소 안내소에서 검룡소까지 약 1.5㎞ 구간이다. 트레킹 코스는 다음과 같다. 두문동재∼1.2㎞∼금대봉∼0.9㎞∼고목나무샘∼1.3㎞∼쉼터∼1.3㎞∼분주령∼1.4㎞∼대덕산∼2.5㎞∼세심교(검룡소 입구)∼0.8㎞∼주차장. 약 9.4㎞ 구간으로 예정 시간은 4시간이지만, 넉넉히 잡는 게 좋다. 금대봉과 대덕산을 오르지 않으면 6.9㎞ 길이로 단축된다. 여행사 상품도 있다. 여행박사(tourbaksa.co.kr)가 오는 23, 29, 30일과 다음달 5, 6일 당일 여정으로 분주령 일부 구간을 걷는다. 태백시 생태해설가가 동행한다. 어른 4만3000원. 070-7017-2237.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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