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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특파원 빗장 푼 아바나를 가다] 미국이 온다 … 과일 파는 소년, 80세 할머니도 “무이 비엔”






오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성조기가 내걸리는 쿠바 주재 미국대사관 재개설식을 앞둔 수도 아바나는 기대에 차 있었다. 10일(현지시간) 아바나 중심가에 자리한 프레테르니다 공원. 이곳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가져온 흙을 모아놓아 중남미의 연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있는 곳이다. 공원의 나무 그늘에서 만난 50대 남성 안토니오는 “아메리카 노르테(북미)건, 아메리카 센트랄(중미)이건, 아메리카 수르(남미)건 모두 다 같은 아메리카”라며 “진작 됐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미국대사관 재개설에 관한 질문에는 “싸울 필요가 뭐가 있었나. 지금까지 싸운 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안토니오와 대화를 나누던 50대 남성 올란도는 “케리(존 케리 미 국무장관)가 재개설식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너무 궁금하다”며 “그날은 꼭 TV로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뒤로 도로 한쪽에 인력거가 달리고 수십 년 된 낡은 차들이 오가는 아바나 거리는 쿠바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날 아바나 거리엔 한글로 ‘삼성역’ ‘사당동’이 쓰여 있는 낡은 8431번 버스가 페인트가 벗겨진 채 달리고 있었다. 대우자동차 티코도 눈에 띄었다. 1961년 미국과 국교가 단절된 후 독자 생존을 주장하며 비동맹의 맹주국 중 하나로 남았던 쿠바. 미국과의 대결은 쿠바의 자존심을 지켜줬지만 그 이면에선 오랜 경제 침체를 겪어야 했다. 이달 초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경제위원회(ECLAC)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62년 미국이 쿠바를 겨냥해 시작한 경제 봉쇄 조치 이후 쿠바가 입은 피해는 1170억 달러(약 137조원)로 추산됐다.

 아바나의 고급 주택가이자 외교관 밀집 거주 지역인 미라마르의 푼티나 몰. 1층은 수퍼마켓과 음식점, 2층은 가정용품, 3층 전자제품 상점들이 모여 있는 아바나 내에선 손꼽히는 대형 쇼핑센터다. 그러나 이곳에선 급하게 찾았던 AA건전지를 구할 수 없었다. 전자제품 코너 진열장엔 상품은 물론이고 건전지도 몇 종류 보이지 않았다. 적기에 상품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한·쿠바교류협회의 정호현 문화교류실장은 “어떤 때는 쌀이 부족하고 어느 때는 소금이 다 떨어져 여기저기 구하러 다니곤 한다”고 귀띔했다. 한 현지 교민은 “신차 가격이 한화로 1억원 정도다. 지금 내가 빌려서 몰고 있는 중국제 지리 승용차는 9만3000㎞를 달렸는데 2500만원가량에 거래가 된다”고 말했다.

 국교 단절 이후 이어진 미국의 쿠바 고립 정책은 쿠바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이점도 가져왔다. 난개발의 폭풍을 피할 수 있었던 아바나는 60년대 고풍스러운 스페인 양식의 거리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아바나 중심가의 센트랄 아바나는 외벽 페인트가 퇴색해 가는 예스러운 건물들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거리 한쪽에서 과일을 파는 10대 청소년 에토는 미국대사관 재개설에 관한 질문을 받자 대뜸 “경제가 나아졌으면 좋겠다”며 “다들 그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 옆의 비디오가게에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 아마라(80)는 첫마디부터 “정말 잘됐다. 정말 잘됐다”를 연발했다. 할머니는 “우린 너무 뒤떨어졌는데 이제는 앞으로 나갈 것”이라며 “내가 언제까지 식량배급표를 받아야 하나”라며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신이 건강을 주신다면 내가 앞으로 얼마나 우리나라가 발전할지 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아바나의 미국대사관은 국교 단절 이전에 서 있던 그 자리에 다시 문을 연다.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이번 주 재개설될 예정이지만 쿠바는 이미 서방 사회에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아바나의 혁명 광장은 지구촌의 관광 성지로 바뀐 지 오래다. 중남미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의 얼굴이 벽면에 설치된 내무부 건물이 들어서 있는 이곳 광장 한쪽에는 관광객을 실어온 버스와 관광객으로 연일 북적거린다. “9일 밤 입국했는데 와 보니 아바나는 과거가 담긴 묘한 매력이 있다”던 이탈리아 여성 안토넬라는 일행 10여 명과 함께 ‘승리할 때까지 영원히’라는 체 게바라의 혁명 격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다음달 아바나를 방문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곳 혁명 광장에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아바나 시민들의 생활에서도 점차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코트라 아바나무역관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엔 쿠바의 국영 통신업체인 나우타 지점이 있다. 입구에 늘어선 긴 줄이 궁금해 한 여성에게 묻자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며 “개인 휴대전화를 통신부에 등록해 e메일 서비스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20대 여성 글로리아는 “페이스북도 하고 e메일도 봐야 하는데 휴대전화 등록을 하지 않으면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백악관은 쿠바와 국교 정상화 방침을 전격 공개하며 쿠바의 인터넷 보급률이 전 국민의 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쿠바에선 인터넷 바람이 불고 있다. 100여m 떨어진 한 상점 앞에선 젊은이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최근 새로 허용된 와이파이 구역이다.

 쿠바의 공공기관에서 근무했었다는 A씨는 익명을 전제로 “왜 미국인들이 쿠바에서 관광을 할 수 없고 왜 쿠바인들이 마이애미의 친척을 만나러 갈 수 없는가”라고 반문한 뒤 “14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나라와 적대 관계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쿠바에서 마이애미까지는 145㎞에 불과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며 “과거의 적이라도 오늘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만이 아니다. 지난 10일 아바나에서 만난 쿠바인들에게 과거의 적은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반가운 친구가 돼 있었다.

아바나=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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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