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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수사 부실에 … 끝내 못 밝힌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여대생이 트럭에 치여 사망한 현장 근처에서 여대생의 속옷 하의가 발견됐다. 유족들은 “우리 딸 옷이다. 성폭행당한 것 같다”고 했지만 경찰은 “다른 사람 옷”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속옷에 성폭행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도 경찰은 이를 조사하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됐다. 1998년 10월 17일 대구시 달서구에서 일어난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씨 사건이다.

 그로부터 약 17년이 지난 11일 스리랑카인 K(47)가 대구지법 별관 5호 법정에 섰다. 정씨를 성폭행하고 소지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로다. K는 “노 길티(No Guilty·죄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판결은 무죄였다. 증거가 부족해서였다. 재판부는 “강간 가능성은 인정되나 공소시효(10년)가 지났다”고 덧붙였다. 정씨의 아버지 정현조(68)씨는 “엉터리 초동 수사 때문에 딸의 억울함을 풀지 못했다”며 “범인에게 면죄부만 줬다”고 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사건이 나던 날 밤 정씨는 학교 축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중이었다. 이때 K와 또 다른 스리랑카인 2명에게 성폭행당하고 물품을 빼앗긴 뒤 도망치다가 오전 5시10분쯤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 금호기점 7.7㎞ 지점에서 23t 화물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그날 오후 1시쯤 사고 현장으로부터 30m 떨어진 곳에서 정씨의 속옷 하의가 발견됐다. 정씨의 쌍둥이 동생이 “어머니가 사준 옷”이라고 했으나 경찰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주머니들이나 입을 디자인인데 여대생이 입었겠느냐”고 했다. 정씨의 시신을 검사한 병원 직원이 “가위로 피 묻은 속옷을 잘라서 버렸다”고 증언한 점도 내세웠다.

 그해 12월 경찰은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계속된 의혹 제기에 99년 3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속옷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속옷에서 남성 체액이 나왔으나 DNA는 뽑지 못했다”였다.

 경찰은 2000년 6월 비공개로 다시 국과수에 속옷 감정을 의뢰했다. 이때 DNA가 확인됐다. 익명을 원한 경찰 간부는 “처음에 성폭행 정황을 수사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슬며시 DNA 재감정을 의뢰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본지는 당시 경찰이 왜 그랬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사 담당자와 접촉하려 했으나 모두 퇴직해 연락이 닿지 않았다.

 DNA가 나왔지만 신원을 알 수 없어 사건은 묻혔다. 그러는 사이 K는 2002년 한국 여성과 결혼했고 검찰이 공범으로 지목한 다른 두 명은 불법체류로 추방됐다.

 유족들은 2013년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이번엔 검찰이 나섰다. 속옷에서 나온 DNA가 K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K는 2011년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권하다 붙잡혀 DNA가 등록된 상태였다. 검찰은 “K가 동료 두 명과 범행했다”는 진술을 얻었다. K의 예전 직장 동료로부터였다. 하지만 강간은 공소시효가 지나 ‘2명 이상이 범행을 한’ 특수강도강간(시효 15년)으로 K를 법정에 세웠다. 국외로 추방된 둘은 기소중지했다.

 지난해 5월 1심에선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나왔다. 검찰은 항소하고 새로운 증언을 확보했다. “공범에게서 사건 내용을 들었다”는 제3의 스리랑카인 증언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자세히 범행을 털어놨다고 믿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됐다. 검찰은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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