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The New York Times] 트럼프의 장광설에 놀아나는 미국

데이비드 브룩스
칼럼니스트
미국이 잘나갈 때 국민은 100m 달리기에 나선 선수와 비슷하다. 사회라는 운동장에서 저마다 트랙을 배정받아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미국이 어려운 상황에선 국민은 범퍼카 경주를 벌이는 신세가 된다. 저마다 앞길이 막혔다고 여기며 서로를 들이받는다. 문화 지배층은 금융 지배층과 다투고, 하위 중산층은 빈곤층과 반목한다.

사회학자 조너선 리더는 백인 노동자가 많이 사는 뉴욕 브루클린의 카나르시란 동네를 연구했다. 그 결과 이곳 주민들은 이웃에 사는 흑인과 맨해튼의 백인 상류층 모두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은 지역사회를 위협하고 상류층은 자신들을 팔아넘겨 성공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인들은 카나르시 주민처럼 불안과 소외감 속에 살고 있다. CNN 방송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세력이 미 연방정부에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10명 중 3명밖에 되지 않았다. 갤럽 조사에서도 학교와 은행·교회 등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는 바닥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 라스무센 조사에서 미국이 올바른 궤도에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9%에 불과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내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표 주자들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공화당의 젭 부시 후보는 미국 사회의 좌클릭 물결에 맞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요즘 시대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인물은 못된다.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부통령 조 바이든은 아예 당선 가능성이 없다.

반면에 범퍼카처럼 좌충우돌하는 신인 후보들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급진적 진보 계열 버니 샌더스는 미국인들의 좌클릭 무드에 올라타 순항 중이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계급 갈등이 불거지면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난다. 그의 지지층에는 혁명 수준의 급진적 변화를 무작정 갈망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그야말로 도널드 트럼프에게 안성맞춤인 상황이다. 공화당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에겐 소외계층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 매사 시비를 걸고 싸움을 일삼아 소외된 사람들의 한풀이를 해준다. 자아도취에 빠져 나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친다. 자기확신이 없는 빈곤층에게 이런 장광설은 쉽게 먹혀든다. 사람은 자신감이 없을수록 자신만만해 보이는 지도자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전형적이다. 그는 월터 리프먼의 말대로 ‘귀머거리나 투명인간처럼 뒷줄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국민’에게 매혹적인 존재다. 그는 인기영합적인 발언으로 투명인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카나르시의 주민들처럼 백인 부자나 흑인 빈곤층 모두를 경멸하는 중산층이나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불법이민자들을 미워하는 노동자 계층에도 트럼프의 목소리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트럼프 바람’은 역대 대선판에서 명멸했던 포퓰리즘 후보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트럼프의 지지층에는 평균적인 공화당원보다 세속적이고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직업이나 종교 등으로 묶인 특정 집단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도시나 농촌 같은 특정 지역에 몰려 있지도 않고 민족이나 계층을 기반으로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대단히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지지층인 것이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논리도 다른 포퓰리즘 후보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지도층이 부패했다거나 시대와 동떨어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지도층이 멍청하다고 비난한다. 그의 대선 출마 연설은 흥미롭고 강렬했다. “우리 지도자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아느냐”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그는 “대통령은 뭐가 뭔지도 모른다”고 일갈했다. 이어 “지도자 자리에 멍청한 이들만 앉은 탓에 나라가 이꼴이 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해결이 불가능한 게 아니며 심지어 어렵지도 않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보기에 미국은 쇠퇴하는 제국이 아니다. 그저 지도층이 자신만큼 영리하거나 유능하지 않고 성공하지도 못한 탓에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트럼프의 이념에는 일관성이 없다. 극단적인 보수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진보적 입장을 취한 적이 많다. 트럼프에 비교하면 가끔 중도 성향을 보여주는 공화당 상원의원 수전 콜린스는 1964년 대선에서 초강경 노선을 건 배리 골드워터 후보로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자기애’에서만큼은 트럼프도 일관성을 보여준다. 트럼프의 눈에 세상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한데 사회를 이끄는 건 승자를 조롱하고 경멸하는 패자다. 여기에 트럼프의 문제의식이 있다.

대중의 소외가 요즘처럼 만연한 적이 없다. 사람들의 자존심이 요즘처럼 공격적이고 파편화돼 깨지기 쉬워진 적도 달리 없었다. 트럼프는 이런 사회적 변화에 완벽하게 영합해 탄생한 인물이다. 그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트럼프를 일탈적이고 예외적인 존재로만 여겨선 안 된다. 그는 우리 시대의 흐름에 깊숙이 뿌리내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칼럼니스트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