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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김훈 '강(江)의 노래'



압록강을 지나는 북한의 낡은 목선. 뒤로 신압록강대교가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반도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강물은 연간 1200억t이다. 나는 숫자를 옮겨 적을 뿐, 이 물량의 규모를 상상하지 못한다. 압록강은 이 하해와도 같은 물의 23%(280억t)를 쏟아내고 한강이 16%, 금강이 6%, 황하가 40%를 차지한다.(고철환의 논문 『황해의 환경과 물질지수』 중에서)

 서해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 사이에서 오목하다. 밀물 때 서해의 힘은 북진한다. 물의 세력은 북쪽으로 갈수록 강력해져서 연안에 넘치고 발해만의 후미진 구석까지 가득 찬다. 그때 바다는 부풀어서 대륙을 압박하고 고깃배들은 물의 힘에 올라타서 포구로 돌아온다. 밀물 때 강들은 하구(河口·River Mouth)를 열어서 바다를 받는다. 조국의 강들은 남쪽부터 영산강·동진강·만경강·금강·한강·대동강·청천강 순서로 열리는데, 압록강 하구는 조차(潮差) 4m의 힘으로 바다를 받아들여서 먼 산골까지 바다의 기별이 닿는다. 강이 바다를 받아들이는 물리현상을 과학자들은 감조(感潮)라고 하는데, 나는 이 단어에서 산맥과 바다가 붙고 엉키는 조국 산하의 관능을 느낀다. 압록강은 이 관능의 북단이다. 



 나는 1948년,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서 태어났고 그 자리에서 벌어먹고 살다가 늙었다. 이 운명은 내가 선택하거나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별수 없이 이 질곡을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서 발버둥 쳤지만, 어느 쪽도 온전히 이룰 수는 없었고 버둥거릴수록 자기 분열은 깊어졌다. 나는 2015년 여름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아는 나이가 되어서 처음으로 압록강·두만강·백두산과 그 언저리를 관능이 작동되는 가시적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세월이 거꾸로 흘렀던지, 분단 70주년에 이르러 대량학살무기를 앞세운 적대관계는 극한으로 치달았고 여전히 갈 수 없는 강 건너 쪽 사람 사는 동네를 나는 겨우 망원경 구멍으로 들여다보았는데 그 구멍 속의 상념들도 1948년에 38선 이남에서 태어나 거기서 늙은 자의 자기 분열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선양(瀋陽)은 다만 경유지였다. 선양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단둥(丹東)으로 직행했다.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갔던 길을 거꾸로 가는 셈이었다. 선양에서 단둥까지는 일망무제의 벌판이었다. 좌청룡도 우백호도 거기에는 없었고 시선은 지평선 속으로 녹아들었다. 박지원은 대륙을 향해서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땅”이라고, 개벽하는 신천지의 감격을 토로했다. 그의 통곡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몸과 대지와의 교감을 보여주는데, 아마 그 교감과 트임은 몸으로 걸어서 대륙을 건너가는 자에게 가능할 것이고 고속도로를 시속 80㎞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걷는 자의 대지로부터 오는 직접성의 축복은 불가능해 보였다.







‘동양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거대한 돌무덤인 장군총을 참가자들이 탑돌이 하듯 둘러싸고 돌았다. 오녀봉 채석장에서 15년 걸려 날라온 거대한 돌 1200개의 운반 방법이 놀랍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안(集安)으로 가는 G201 도로 연변에서, 여름의 산맥은 푸르고 힘찼다. 빛나는 산맥들이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듯했는데, 산맥을 돌아 나가면 한없는 벌판이 전개되었고, 벌판의 먼 가장자리에서 산맥은 다시 일어서서 끝이 없었다. 지안은 압록강변의 산악분지였다. 험준한 지형에 의지해서 요새형 도읍을 여는 고대 국가의 산세가 그대로 남아서 여름의 힘으로 번들거렸다.

 지안의 민가들은 비슷한 크기에 동일한 모델로 지어졌고 담장의 높이도 똑같아서 사회주의식으로 설계된 취락의 동질성을 보였고 마을에는 상업광고가 전혀 없었다. 집집마다 담장에 삼족오(三足烏)·봉황새·연꽃·구름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양을 그려 놓았다. 무덤 속에서 나온 문양들이 사람 사는 마음의 담장을 꾸미고 있으니, 여기는 고구려 초기 400여 년의 강성한 도읍지다.



 고구려 왕들의 존호는 유교적 세계관의 관념에 물들지 않아서, 삶과 마주 대하는 언어의 건강함을 보여준다. 산상왕(山上王, 10대), 동천왕(東川王, 11대), 중천왕(中川王, 12대), 서천왕(西川王, 13대), 봉상왕(烽上王, 14대)들은 죽어서 그 왕이 묻힌 자리의 이름을 존호로 삼아 후세에 전했다. “11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소수림(小獸林)에 장사 지내고 존호를 소수림왕이라고 하였다”는 대목은 내가 읽은 『삼국사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에 속한다. 소수림은 어디인가. ‘작은 짐승들이 모여 사는 숲’이라는 뜻으로 봐서 아마도 국내성 왕궁에 딸린 동물원이 아닐까. 고구려의 왕들은 죽어서 강가에 묻히거나 산꼭대기 봉수대에 묻히거나 ‘작은 짐승들이 사는 숲’에 묻혀서 한 줌의 흙을 국토에 보탰고 그 묻힌 자리의 지명에 불멸의 지위를 부여했다. 고구려인들의 강토 사랑은 그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왕들은 죽어서 자신의 존호를 국토에 포개었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20대)의 존호는 왕의 무덤 자리가 아니라 그 생애의 자랑과 고난을 압축하고 있는데, ‘광개토’는 한반도 모든 임금의 존호들 중에서 가장 사실적이고, 서사적이고, 압도적이고, 다이내믹하다. 광개토대왕은 39세에 죽었다. 그의 아들 장수왕은 97세까지 살았고 그중 78년을 왕위에 있었다. 장수왕은 장수하기도 했지만 그의 존호에서는 부왕의 요절에 대한 한이 묻어난다. 광개토대왕의 치세에는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편안하고 오곡이 풍성했다’고 비문에 적혀 있으니, 이 젊고 용맹한 임금이 요절했을 때 고구려 신민의 슬픔은 하늘에 닿았을 것이었다.






25일 오전부터 6인승 승합차로 백두산을 올라갈 때 비가 내렸다. 자작나무 숲이 젖어서 향기가 대기에 낮게 깔렸다. 정상에 올랐을 때 구름이 갈라지고 개벽하듯이 햇살이 내려왔다. 천지는 창세기의 호수처럼 시원(始原)의 힘을 품어냈고 젖은 봉우리들이 번쩍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안개가 몰려와서 천지를 뒤덮었다. 고은 시인이 손나팔을 입에 대고 “안개다! 안개다! 안개가 온다”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는 목청을 다해서 고함쳤다.

 백두산 정상이 안개에 덮이는 기상현상이 그 시인에게는 지체 없이 알려야 할 파천황의 긴급 중대사태인 것이었다. 그의 고함소리에는 주술적 신명이 담겨 있어서, 안개의 접근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먼 지평선 쪽의 안개를 불러들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안개다! 안개로구나!” 그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흐린 사진을 찍었다.



호텔의 만찬 자리에서는 북한의 젊은 여성들이 봉사했고 식사 후에는 간단한 공연이 있었다. 호텔 정문 앞에는 인민공화국 깃발과 오성홍기가 교차로 세워져 있었다.

 호텔봉사원들은 미녀로 소문난 압록강 건너 강계 여성이라고 했다. 체구가 크지는 않았으나 목이 길고, 눈동자가 새카맣고 시선은 찌르는 듯했고, 눈썹은 짙었고, 긴 말총머리에 윤기가 흘렀다. 김동환(1901~미상)의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의 여성 주인공 ‘순이’는 여진족의 후예 재가승(在家僧)의 딸인데, ‘머루알같이 까만 눈과 노루 눈썹 같은 빛나는 눈초리/게다가 웃을 때마다 방싯 열리는 입술’로 묘사되어 있었다. 나는 ‘순이’를 떠올리며 젊은 여성봉사원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었다. 조국 산천의 마을마다 집집마다 별 같은 딸들이 자꾸자꾸 태어나기를 나는 바랐다. 여성봉사원들은 일하기 편하게 개량한 한복 차림에 인공기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단 여성도 있었고 오른쪽 가슴에 단 여성도 있었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사슴고기의 향기는 품격이 높아서 잘생긴 짐승의 이미지와 같았다. 개고기는 메뉴에 없었지만 손님이 부탁하면 무침으로 가져다주었다. 양념이 진하지 않아 개의 육질이 직접 전해져 왔다. 산이 깊어서 그럴 테지만 나물이나 야채요리는 단연코 뛰어났다. 무와 배추는 섬유질이 억세고 물이 많아서 씹으면 와삭거리면서 상서로운 액즙이 입안에 가득 찬다. 김치는 소금이나 젓갈에 과도하게 절여지지 않아서 고랭지의 서늘한 기운이 살아 있었고 그 국물은 고지의 겨울바람처럼 청량했다. 이 날카로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목구멍에서 창자 쪽으로 찌릿한 전류가 흐른다. 나는 김칫국물에 흰쌀밥을 비벼 먹었다. 나물은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도 많았는데 모두 다 들이나 산의 흙 냄새·물 냄새, 햇볕의 강도, 계절의 촉감을 지니고 있었고 나물마다 그 서식지의 질감을 사람의 몸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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