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지요. 하지만 비통함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40㎞ 떨어진 우퇴야 섬에서 루벤 하비크가 한 말이다. 청년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다시 그의 말이다. “다시 돌아온다는 게 좀 이상했어요. 결국 돌아왔네요. 여기 오기 전에 어떤 기분이 들까 나 자신도 궁금했어요. 좋은 감정들입니다. 돌아오길 잘 했다고, 돌아올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드네요.”(로이터통신)
다리가 불편한 그는 보행기에 의지해 걷고 있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바로 4년 전 이곳에서 다쳤다. 그는 우퇴야 사건의 ‘생존자’다.
2011년 7월 22일 이곳에서 열린 노동당 청년 여름캠프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극우 극단주의자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경찰복장을 한 채 섬으로 진입, 13분간 총을 난사했다. 69명이 숨지고 240여 명이 다쳤다. 루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날로부터 4년 만인 7일 다시 노동당 여름캠프가 열렸다. 보통 1주일 일정이지만 이번엔 사흘로 줄었다. 경비도 삼엄했다. 그러나 열기는 여느 때 수준을 넘어섰다. 대개 600명 남짓 참석했는데 이번엔 1000명이 넘었다. 공포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였다. 스포츠·요리·정치토론 등 다양한 활동도 여전했다.
시리아 이민자 출신인 노동당 청년 지도자인 마니 후사이니는 “다시 돌아오게 돼 기쁘다”며 “우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69명의 목숨을 앗아간 외국인 혐오증을 젊은이들이 패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캠프 주최자인 에밀리에 베르사아스도 “‘암흑의 날’이 멋진 캠프에서의 기억을 지우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올해 처음으로 캠프에 참가한 빅토리아 오버랜드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섬으로 들어올 때는 다소 긴장했지만 곧 캠프의 밝은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며 “우리가 섬을 되찾았다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생존자들은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네 발을 맞았던 이나 리바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4년 전처럼 캠프에서) 접시를 치우고 부엌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리곤 “4년 전 테러를 경험하면서 정치에 관여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정치로부터, 내 신념으로부터 한발 물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많은 젊은이들이 우퇴야를 다시 찾게 돼 기쁘다”고 했다.
테러 발생 당시 노르웨이 총리이자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옌스 스톨텐베르그도 내내 함께했다. 그는 “1974년부터 이 섬에서 보냈던 여름 캠프의 행복한 기억을 되살리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다시 섬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캠프는 젊은이들이 두려움 없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퇴야섬은 4년 전 모습 그대로 이들을 맞았다. 다만 숲속 나무에는 69명 피해자의 이름이 새겨진 원통형 철판 조형물들이 설치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