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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의 시시각각] 노동개혁, 말만 하면 어쩝니까

박승희
정치부장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보며 영국 정치로 눈을 돌렸다. ‘막말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들 중 1위를 차지하는 미국 정치의 가벼움이 보기 싫은 이유도 있었다(사족이지만 4년 전 경험으로 보면 트럼프의 돌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게다. 미국 정치엔 언론 검증이라는 정화체계가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다). 영국 정치를 눈여겨본 건 데이비드 캐머런 때문이었다. 지난 5월 총선 승리로 집권 2기를 시작한 캐머런은 영국병과 싸우고 있다. 그 중 핵심이 공교롭게도 노동개혁이다.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인용한 독일의 노동개혁은 우리에겐 안 맞는 옷이다. 개혁의 내용이나 노사정위원회 작동 같은 틀은 익숙하다. 하지만 독일에선 좌파 정부가 자신들의 지지층인 노동계를 상대로 “고통 분담”을 호소해 밀어붙였다. 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였듯이. 내년 총선을 앞둔 데다 국회 선진화법이 버티고 있는 지금의 한국 정치에선 본받기 힘든 모델이다.

 반면 캐머런의 영국이 처한 조건은 우리와 흡사하다. 집권세력은 우파고, 노동개혁의 대상인 노동계는 야 성향이다. 영국의 노동법 개정안은 야당인 노동당이 버티고 있는 의회를 통과해야 한다. 지금까지 두 달여 캐머런의 개혁을 지켜본 영국 언론들의 평가는 후하다.

 무엇보다 개혁의 지향점이 뚜렷하다. 캐머런이 제시한 노동법 개정안의 핵심은 쉬운 파업, 정치 파업을 막자는 거다. 영국은 파업의 나라라고 할 만큼 파업이 잦다. 투표율과 상관없이 투표에 참여한 노조원의 과반만 찬성하면 쉽게 파업할 수 있다. 캐머런은 핵심 공공부문의 경우 파업 찬반투표에 전체 조합원 50% 이상이 참여하고, 조합원 40% 이상이 찬성해야 합법적 파업이 가능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파업 대체인력 고용도 허용했다.

 방법론에선 우군을 늘리는 수순을 택했다. 노동계 희생을 요구하기에 앞서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제 살부터 깎았다. 여론이 박수를 쳤다. 캐머런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번 돈을 세금으로 내고, 정부는 이 돈을 다시 이들에게 복지로 돌려주는 ‘터무니없는 회전목마’를 끝내겠다”고도 선언했다.

 액션 플랜도 정교했다. 총선 승리 직후 보수당 평의원 모임인 ‘1922 위원회’를 총리 관저에서 만난 데 이어 지난달 15일 ‘1922 위원회’ 총회장에 참석해 노동개혁 법안을 꼭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날 야당인 노동당 의원모임에도 참석했다. 동갑내기(49세)인 파키스탄 이민자의 아들 사지드 자비드를 산업부 장관에 임명해 개혁의 실무를 맡겼다. 캐머런은 정부 웹사이트에 글을 올려 노동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직접 설파했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캐머런이 “소통과 설득으로 영국 개조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한다는 “소통” 얘기를 다시 꺼내려는 게 아니다. 노동개혁은 목표이고, 소통은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담화는 여론전의 시작이어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다음이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보다 ‘100배는 더 어려운’ 노동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공감대와 위기의식이 과연 집권세력 내부에 있는지 미심쩍을 정도다. 대통령 담화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고작 47%(리얼미터, 8월6일)였다. 그런데도 나머지 53%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프레임 싸움도 허술하다.

메시지는 선명하고, 밀물처럼 쏟아져야 한다. 청와대가 노동개혁의 목표로 ‘유연한 노동시장’을 말하자 반대 세력은 ‘쉬운 해고’라는 선명한 용어로 성벽을 쌓고 있다. 그런데도 야당을 상대로 한 설득은 보이지 않고, 대국민 홍보는 없다. 공감하고 절박하면 내 집 안의 금붙이도 내놓는 게 우리 국민이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쏟아낸 “위기” “대수술” 등의 절박한 용어들 은 세종로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청와대 홈페이지엔 담화문만 썰렁하게 걸려 있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한다는 개혁이 이럴 순 없다.

박승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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