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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슈틸리케, 히딩크의 향기가 난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한국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에게 거스 히딩크(69·네덜란드) 향기가 난다.

정몽규(53) 대한축구협회장은 지난 8일 동아시안컵이 열린 중국 우한에서 기자들과 만나 "난 축구협회 뿐만 아니라 회사(현대산업개발)를 운영한다. 한국 정서상 능력 있는 과장과 나이 많은 부장이 있다면 어린 과장을 키우는 게 쉽지 않다"며 "슈틸리케 감독은 위계질서를 따지는 우리나라 문화를 깨고 능력 있는 어린 선수들을 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나이와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이재성(23·전북), 김승대(24·포항), 권창훈(21·수원) 등을 발탁해 이번 대회에 기용했다. 동아시안컵 1·2차전에서 1승1무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히딩크 감독처럼 한국 사회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교토상가에서 뛰던 무명 미드필더 박지성(33·은퇴)을 발탁했다. 히딩크는 청소년 대표도 못해 본 차두리(35·서울)를 뽑았다가 '아버지 차범근의 후광으로 뽑았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활동량과 차두리의 스피드를 믿고 뽑았고, 박지성과 차두리는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 9월 부임한 슈틸리케 감독도 외부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2부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정협(24·상무)과 이용재(24·나가사키)를 소신껏 발탁했다. 두 선수는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며 믿음에 보답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에게 경기 중 성과 존칭을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게 했다. 후배들은 노장 황선홍과 홍명보를 향해 "선홍 패스!, 명보 패스!"를 외쳤다. 덕분에 그라운드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도 팀 내 분위기가 자유분방하다.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선 손흥민(23·레버쿠젠)과 김진수(23·호펜하임)가 차두리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격의 없이 장난쳤다. 신태용 코치는 팔꿈치를 다친 구자철(26·마인츠)을 흉내내며 유쾌하게 위로해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단 아침식사는 선수들 자율에 맡긴다. 과거 한국인 감독 시절 선수들은 정해진 시간에 전원이 함께 아침을 먹어야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팀 스케줄도 스스로 짠다. 동아시안컵 휴식일에는 선수들에게 자유시간을 보내고 저녁 먹기 전까지만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숙소에 틀어박혀 비디오 분석에 매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평소 무뚝뚝하다. 골이 터져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세심하다. 이번 대회에서 부상으로 낙마한 여자대표팀 심서연(26·이천대교)까지 챙겼다. 이번 대회 단장을 맡은 유대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슈틸리케 감독이 심서연이 입원한 병원을 물으며 남자 선수단 이름으로 꽃을 전달하고 싶다고 부탁했다"며 "또 여자대표팀이 1차전에서 중국을 1-0으로 꺾자 '완벽한 승리였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이 정말 그랬나요"라고 되물으며 환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된장찌개·청국장 등 한국 음식도 잘 먹는다. 그런데 국과 찌개가 스프인줄 알고 늘 처음에 먹는다. 주변에서 "밥과 함께 먹지 않으면 짜다"고 말하면,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말로 "맛있어요!"라고 말한다.

우한=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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