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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원석은 어떻게 ‘황홀한’ 보석이 됐나

라공(Lagon) 팔찌. 플래티늄, 85.42캐럿의 카보숑 컷 오벌형 블랙 오팔 1개, 사파이어 비즈, 에메랄드 롱 비즈, 파라이바 투르말린,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Thomas Deschamps/Julien Claessens ⓒCartier
하이 주얼리(High Jewelry)는 보석 공예의 정수다. 귀금속 분야의 ‘오트 쿠튀르’다. 진귀한 원석이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장인들의 손에서 수많은 시간 동안 깎이고 다듬어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어마어마한 가격에도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수집용으로, 투자용으로, 그리고 또한 과시용으로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프랑스 브랜드 까르띠에(Cartier)는 하이 주얼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847년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1819~1904)가 파리 뇌브데프티샹 거리 5번지에 처음 매장을 연 이후 늘 최고를 추구하는 정신으로 주얼리의 역사를 써왔다. 매년 주제를 정해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이는데, 올해의 화두는 ‘에투르디쌍(Etoudissant)’이다. ‘깜짝 놀랄 만한’ ‘짜릿하게 황홀한’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지난달 16일 남프랑스의 휴양지 칸에서 에투르디쌍 컬렉션이 공개됐다. 각국 기자 100여 명과 VIP들이 참가한 이 하이 주얼리 인터내셔널 런칭 행사에 한국 프레스도 처음 초대됐다. 지중해를 살포시 품은 리비에라 해변의 한 고풍스런 별장으로 중앙SUNDAY S매거진이 찾아갔다.

프랑스 남동쪽 휴양지역을 일컫는 코트다쥐르(Côte d’Azur)의 7월은 짜릿했다. 하늘은 파랬고 바다는 짙은 녹색이었다. 파랑과 초록의 선명한 대비는 루이 까르띠에가 즐겨 사용했다는 청금석과 터키석의 조합, 그리고 대표적인 색조 모티브로 꼽히는 ‘공작 꼬리(peacock’s tail)’에서의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의 조화를 떠올리게 했다. 그 청록이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향해 우리를 태운 하얀색 보트는 파도를 헤치고 바람을 갈랐다.

배에서 내려 다시 차로 꼬불꼬불 언덕을 올라갔다. 흰색 담장이 끝없이 이어진 이 마을은 척 보아도 최고급 별장촌.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앞마당에 헬기 이착륙장이 있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축소해 놓은 듯 장미와 아이리스가 가득한 정원은 바다로까지 이어졌다. 그림 같은 암석 해안이 펼쳐졌다. “스코틀랜드 남작인 애버컨웨이 경이 1905년 땅을 사서 지은 저택입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어렵사리 빌렸어요. 지금 주인이 누구인지는 비밀입니다.” 김은수 까르띠에 상무의 귀띔이다.

600여 점의 ‘작품’을 향한 투어가 시작됐다. 저택의 1층은 완벽한 전시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시 공간은 레드·그린·블루·화이트·오렌지의 다섯 가지 색깔로 구분했다. 레드는 까르띠에의 메인 보석들, 그린은 동식물에게서 영감을 받은 보석, 화이트는 뮤지엄 컬렉션 등으로 구분했다고 김 상무가 덧붙였다.

로마노프(Romanov) 팔찌.
팔찌로 부활한 러시아 황후의 브로치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로마노프(Romanov) 브레이슬릿이었다. 큼지막한(197.80 캐럿) 실론산 마제스틱 쿠션형 사파이어와 수많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이 팔찌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이 사파이어는 원래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후였던 마리아 표도로브나의 것이었다. 당대 최고의 보석 디자이너였던 파베르제는 사파이어 주변을 26개의 다른 보석으로 꾸민 브로치로 만들어 황후에게 바쳤다.

그런데 1919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황후는 고향인 덴마크로 급하게 몸을 피했고 그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수많은 보석들은 소비에트 광물학자 알렉산드르 퍼스만에 의해 목록으로 남겨진다. 우여곡절 끝에 1928년 말 뉴욕 까르띠에 공방에 등장한 이 보석은 오페라 가수 간나 발스카의 목걸이로 쓰여지다가 1992년 소더비 경매에 나왔고 2014년 까르띠에의 품으로 다시 오게 됐다.

까르띠에의 보석 장인들은 고민 끝에 1000시간이 넘는 노력을 들여 이 사파이어를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팔찌에는 사파이어 대신 매끈한 비단 느낌으로 폴리싱 처리된 락 크리스탈을 끼울 수 있다. 또 사파이어는 목걸이나 왕관에도 부착할 수 있게 했다. 가격에 대해 까르띠에 측은 “아직 가치를 연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모잠비크산 쿠션형 루비와 버마산 루비들이 함께 세팅된 가랑스(Garance) 목걸이와 반지, 귀걸이 세트도 시선을 모았다. 셸 정유회사 창업주의 부인인 디터딩 여사가 구입했던 것들로 목걸이는 한번 매듭을 지은 듯한 스타일이 돋보였다. 현장 큐레이터는 “요즘 좋은 루비를 찾기가 힘들다. 좋은 원석이 지구에서 없어지기 시작했다”며 “세트가가 86억원대”라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비싼 제품은 ‘로열 컬렉션 티아라 겸 네크리스’로 320억원대에 달한다.

커피 열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아라비카(Arabica) 목걸이·팔찌·귀걸이 세트는 가넷·루비·브라운 다이아몬드가 살짝살짝 움직이는 느낌을 살렸다.

왼쪽부터 가랑스(Garance) 반지, 푸시카르(Pushkar) 반지, 에테 엥디앙(Ete Indien) 반지, 아라비카(Arabica) 팔찌
플랑부아양(Flamboyant) 반지. 플래티늄, 30.19캐럿의 코랄 비즈 1개, 총 13.47캐럿의 코랄 비즈 4개, 총 14.28캐럿의 잠비아산 에메랄드 비즈 4개, 카보숑 컷 에메랄드, 오닉스, 블랙 래커,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Thomas Deschamps/Julien Claessens ⓒCartier
에테 엥디앙(Ete Indien) 팔찌. 플래티늄, 24.91캐럿의 에디오피아산 카보숑 컷 오벌형 오팔 1개, 인그레이빙 가넷, 인그레이빙 만다린 가넷, 만다린 가넷 비즈, 카보숑 컷 컬러 사파이어, 라운드 컷 차보라이트 가넷,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Nils Herrmann ⓒCartier
까르띠에 상징 ‘팬더’ 다양하게 변주
동물 모티브의 보석은 아무래도 역동성이 부각됐다. 특히 까르띠에의 심볼인 팬더(panther)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됐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절, 유럽에서 팬더는 희귀한 동물이었다. 당연히 가죽은 최고급으로 취급됐으며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깃발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블랙 재스퍼 원석을 900시간 동안 가공한 336g 짜리 네라(Nera) 반지가 발군이었다. 포효하는 팬더의 눈은 초록색 에메랄드, 입은 옐로 골드로 처리한 이 작품은 돌을 새기는 기법인 글리프틱(glyptic) 공방을 유일하게 갖추고 있는 주얼리 메종 까르띠에의 저력을 한눈에 확인시켜 주었다.

또 푸르시트(Poursuite) 팔찌는 각각 다이아몬드와 오닉스로 만들어진 두 마리 팬더가 팔찌 안의 링 속을 움직인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이를 위해 팬더의 움직임에 맞춰 작동하는 개폐 시스템을 고안했고 이를 위한 볼베어링도 개발했다. 0.05mm 단위로 제작한 마이크로 공학적 정밀 작업이 돋보였다.

뱀도 주요 모티브 중 하나다. 까르띠에 장인들은 1910년대 이래 뱀이 보여주는 풍부한 곡선의 아름다움에서 커브와 소용돌이의 아름다움을 포착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맘바 스네이크(Mamba Snake) 목걸이는 247.13캐럿 짜리 희귀한 블랙 사파이어를 가운데 배치하고 다이아몬드와 루비, 화이트 골드로 두 마리의 뱀을 형상화했다.

탕트(Teinte) 팔찌. 화이트골드, 오닉스, 크리소프레이즈, 코랄,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Julia Noni ⓒCartier
색조 보석의 조화, 실험정신의 발현
까르띠에 168년 역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열린 마음으로 각국의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창업주의 세 손자(루이·피에르·자크)는 각각 파리·뉴욕·런던을 맡아 회사를 운영했는데 이들은 191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 여행 열기를 타고 인도·페르시아·이집트·중국을 돌아다니며 이들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보석 제작에 활용했다. 여기에는 잔느 투생이라는 걸출한 디자이너의 힘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각을 제시했으며 아르데코·초현실주의·미래주의·기하추상 등 당대의 예술사조를 디자인에 접목하는 데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 파리 상류사회를 대표하던 비베스크 백작부인으로부터 “당신은 다이아몬드에 향기를 채웠어요”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이같은 열린 마음과 실험 정신은 고스란히 까르띠에의 DNA가 됐다. 재클린 카라치- 랑가네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는 그것을 ‘컬러의 힘’에서 찾고 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조화로운 컬러”라며 “인상파 화가처럼 색조의 하모니를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비올리느(Violine) 시리즈의 경우 칼세도니(Chalcedony·옥수)와 자수정의 은은하면서 부드러운 조화를 극대화했습니다. 오팔은 휘황찬란한 색인데 거기에 어울리는 가넷(Garnet·석류석)을 매칭해 푸시카르(Pushkar) 시리즈를 만드는 식이죠. 아까 보셨던 가랑스 시리즈에서 모잠비크 루비는 주홍색, 버마 루비는 핑크톤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색은 섞어쓰지 않았는데 워낙 색이 좋아서 같이 묶어 봤죠. 이런 것들이 저희의 자신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수정에 사파이어와 루비를 결합한 것을 두고 까르띠에는 ‘최초의 색채 결혼 같은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탕트(Teinte) 시리즈에서는 산호와 오닉스에 녹옥(Chrysoprase)을 섞었고,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시리즈에서는 사파이어·루비·에메랄드의 3색 보석을 조합하고 인도식 꽃과 과일 형태로 만들어내는 ‘투티 프루티(Tutti-Frutti·모든 과일)’ 스타일을 구현했다.

재클린은 “2년간 50개 정도의 유니크 피스를 만들어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찾는 것”이라며 “원석 시장을 직접 다니기도 하는데 멋진 원석을 구하면 바로 영감이 떠오를 때도 있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현재 한국인 디자이너 2명이 일하고 있어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겼다”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행사는 10월 23일부터 28일까지 싱가포르에서 다시 개최될 예정이다. ●


칸(프랑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까르띠에 ⓒCa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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