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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양양’ 파도 위 산책 동해에서 만난 새로운 여름

40년간 군사보호지역으로 빗장이 걸려 있던 강원도 양양의 청정 해변. 지난달부터 서퍼 전용 비치로 탈바꿈했다. 낮에는 서핑, 밤에는 캠핑과 클러빙을 할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이 넘쳐난다.
“서핑에선 물에 들어가고 나올 때가 제일 위험해.”

지난달 개봉한 영화 ‘라이드’에 종종 등장하는 대사다. 허나 이는 비단 서핑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듯 하다. 영화에서처럼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자퇴서를 내고 돌연 LA로 떠나 서핑에 푹 빠진 아들에게도, 그를 쫓아 득달같이 비행기에 몸을 실은 워커홀릭 엄마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든 뉴욕을 떠나 낯선 LA에 둥지를 튼다는 것도, 목숨같이 여기던 직장에서 해고된 것도 결코 적지 않은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니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사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일이 그렇다. 낯선 곳에 발을 담근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올 여름 백화점과 길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서프보드와 래시가드를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그대에게 권한다. 그 아이템들을 풀 장착하고 보드 위로 올라보라고 말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불볕더위에 시달리며 이 여름을 보내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세상만사에 대한 저 조언을 바꿔 말하면, 들고 날 때만 제외하면 무엇이든 해볼 만하단 뜻이기도 할 터다.

서핑은 억울한 스포츠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품는 오해가 너무 많은 탓이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한국에선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아마 하와이와 호주 등지에서 높은 파도 사이로 바람을 가르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본 때문이리라.

하지만 1995년 제주 중문해수욕장에 첫 서핑클럽이 생긴지 20년이 지났고, 국내 서핑 추산 인구는 지난해 2만 명에서 올해 7만 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부산 송정도 훌륭하고 태안 만리포도 좋지만, 올 여름 첫 발을 뗀다면 강원도 양양으로 가야 한다. 지난달 국내 최초로 오직 서퍼의, 서퍼에 의한, 서퍼를 위한 전용 해변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2일, 마침내 고대하던 날이 왔지만 맘은 편치 않았다. 둥근 해가 떠도 모자랄 판에 밤새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은 무심하게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더구나 성수기 고속도로는 꽉 막혀 쉽게 뚫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강원 영동 지방에 들어서는 순간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고 하늘은 말간 얼굴을 내비쳤다. 과연 높고 낮은 파도가 쉼없이 밀려들며 서퍼들을 반긴다는 서핑의 메카다웠다.

‘서피비치(SURFYY BEACH)’는 하조대 해수욕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군사보호지역으로 지난 40년간 출입을 통제해 왔다는 것. 하지만 이제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견고한 철조망 사이로 뚫린 두 개의 게이트가 활짝 열린다. 한걸음만 내딛으면 길이 1㎞, 넓이 1만 평에 달하는 너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정작 여름이면 해수욕객의 안전을 이유로 50~80m 안팎의 레저활동구역에서만 서핑이 가능한 다른 해수욕장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적절한 긴장감과 그간 아무도 뛰놀지 못했던 바다를 독차지한다는 설렘이 뒤엉키는 곳. 그야말로 서퍼들의 천국이다.

서프보드는 크게 롱보드와 숏보드로 나뉜다. 초보자에게는 보다 균형을 잡기 쉬운 롱보드, 그중에서도 소프트보드를 추천한다.
사계철 스포츠 … 강습·렌탈 하루 5만원 선
이곳에서는 매일 3차례 서핑 수업을 실시한다. 1시간 남짓한 이론 수업과 1시간 가량의 실습이 이어진다. 흔히 서핑이라 하면 엄청나게 비쌀 것이라고 염려하지만, 초급 강습과 종일 렌탈권이 5만3000원선이다. 스노보드는 리프트권이 필요하지만 바다는 별다른 입장료를 요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부담이 덜한 편이다. 의상 역시 물을 무서워한다면 부력이 있는 전신 슈트를 빌려 입으면 되고 수온이 낮지 않을 땐 래시가드에 반바지면 충분하다.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서프보드의 명칭. 앞쪽은 노우즈(nose), 뒤쪽은 테일(tail)이라 부른다. 물고기에서 따온 명칭처럼 테일 밑의 지느러미 모양은 핀(pin)이라 부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서퍼와 보드를 연결하는 리시(leash) 코드다. 망망대해에서 보드를 잃어버리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에 서퍼의 생명줄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다면 이 리시는 어디에 매야 할까. 정답은 ‘뒷발’이다. 이형주 서프사업 팀장은 “왼발을 앞에 놓는 레귤러와 오른발이 앞서는 구피 중 본인이 편한 쪽을 선택하면 된다”며 “하지만 서핑의 스탠스가 반드시 스노보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팀장 역시 스노보드 경험을 살려 사흘간 레귤러로 시도했지만 도저히 일어나지 못해 나흘째 구피로 바꾼 뒤 한 번에 테이크 오프(take off)에 성공했다니 머리보단 몸을 믿는 편이 나을 듯하다.

4~5명씩 조를 짜서 바다로 들어가 보니 물은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멀리서는 푸른 파도가 넘실댔고 가까이에선 에메랄드 빛을 띤 물결이 일렁였다. 매일 같이 2~3m 높이의 파도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20~30cm의 낮은 파도는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설령 실패해도 잔뜩 물만 먹고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더구나 한참을 걸어들어가도 허리 높이 밖에 되지 않는 얕은 수심도 두려움을 덜어주는 요인이었다. 하와이에선 결국 팔 젓기에 지쳐 서핑을 포기했던 기자로서 여기서는 결코 그런 타협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할 수 있다.

2시간 정도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쉽게 서핑에 입문할 수 있다. 지상에서는 주로 이론 교육이 이뤄지고 바로 수상 실습으로 이어진다. 서프보드 위에 엎드려 있다가 몸을 일으키는 푸시 업과 테이크 오프 동작을 주로 연습한다. 이 동작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진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기립’의 감동 느끼고 저녁엔 해변의 파티
하지만 이론과 실전은 다른 법. 서프보드 위에 몸뚱이를 얹는 일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몸이 너무 아래로 쏠리면 앞 코가 들렸고 좌우 균형이 맞지 않으면 무한정 흔들렸다. 파도가 다가오면 보드를 밀면서 올라탄 뒤 팔을 젓는 패들링(paddling)을 시작해야 하는데 출발선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꼴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맞은 위치를 찾았다면 이제 파도가 등을 떠미는 느낌이 들 때 보드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푸시 업(push up)과 양발로 올라탄 뒤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는 테이크 오프가 매끄럽게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균형을 잡고 파도를 타는 라이딩, 즉 우리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그 모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워낙 운동신경이 없는 터라 첫술에 배부르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십여 번의 시도에도 몸은 쉬이 말을 듣지 않았다. 좋은 파도가 올 때마다 “업!”이라고 외치는 강사의 목소리도 점점 더 아득해져 갔다.

하지만 파도를 꼭 타야 맛인가. 파도를 기다리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기립(起立)의 감동이 있다면 부유(浮游)의 여유도 있단 얘기다. 그리고 사실 서핑의 진수는 여름보다 겨울에 맛볼 수 있단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불어 파도에 난 길을 따라 사이드 라이딩이 가능하다는 것.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들리지만 여름·가을 부지런히 타면 올 겨울 못할 일도 아닐 터다.

그마저도 실패하면 또 어떤가. 매일 밤 열리는 라이브 공연과 디제잉 파티를 즐겨도 좋고, 푸드트럭이 늘어선 캠핑존에서 먹고 마시면 될 일이다. 강사는 연신 “파도와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드가 중간에 놓이면 크게 다치기 십상이란 얘기였다.

새로운 취미를 갖는 데도 용기는 필요하다. 그 사이에 두려움만 놓지 않는다면 무료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양양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ㆍ서피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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