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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보석처럼 빛나고 활자는 리듬 타고 흐른다

저자: 백영옥 황덕호 정일서 류태형 출판사: 그책 가격: 1만5000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ㆍ66)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해외 작가의 이름이 또 있을까.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책만 50여 권에 달할 정도(절판본 제외)니 하루키에 대한 한국인의 애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문학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감각적인 글을 보면 ‘하루키스럽다’고 하고, ‘하루키스트’를 자처하는 팬들은 그의 작품 속에 나온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그의 발자취를 좇는다. 그야말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하루키 월드가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이라는 제목처럼, 하루키를 만나는 방법으로 음악을 택했다는 게 이 책의 미덕이자 강점이다. 소설가 백영옥, 재즈평론가 황덕호, 라디오 PD 정일서, 클래식음악 평론가 류태형은 하루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음악에 얽힌 이야기에 개인적 소회를 더해 술술 풀어놓는다.

황덕호 평론가는 음악 에세이『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를 통해 현역 재즈 피아니스트 중 시더 월턴을 가장 좋아한다는 하루키의 고백을 듣고 당혹감에 빠졌다. 꽤나 들었지만 그를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인 ‘시더 월턴 찾기’에 나섰다. 본인이 소장한 10장의 음반을 시작으로 80년대 듀오ㆍ3중주ㆍ실황 등을 몇 년에 걸쳐 입수하고 경청하는 대장정을 거치며 점차 시더 월턴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지난해 발표된 음반 ‘릴리빙 더 모먼트’를 슬그머니 추천하기에 이른다. 데이비드 윌리엄스와 빌리 히긴스라는 합이 맞는 세션과 그들이 열기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인 키스턴코너 클럽에서 녹음한 실황이니 무엇보다 믿을 만하다는 계산에서다.

류태형 평론가와 정일서 PD의 접근은 보다 학문적이다. 류 평론가는 ‘모든 데뷔작은 걸작’이라는 전제 하에 1979년 7월 고단샤에서 출간된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얘기로 글을 시작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항구 근처의 레코드 가게에서 콜라를 마시던 새끼 손가락이 없는 점원 아가씨에게 주문한 석 장의 음반이 앞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풍요롭게 하리란 예언이다. ‘캘리포니아 걸스’가 삽입된 비치 보이스의 음반, 마일즈 데이비스의 ‘더 뮤징스 오브 마일즈’, 그리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팝과 재즈, 클래식이 고루 섞인 조합을 보면 그리 과언은 아니지 싶다.

정 PD는 하루키의 팝송 사용법을 낱낱이 분석한다. 비틀스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작명법 『노르웨이의 숲』이나 『양을 쫓는 모험』에서 여주인공 키키가 등장할 때마다 흐르는 척 베리의 ‘조니 B.구드’ 같은 테마 음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초심자에겐 백영옥 작가처럼 개인적 경험과 연결고리를 끄집어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부분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온다. 단편집『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를 읽으며 4월은 잔인한 달이란 기억을 씻어내고 4월은 카레 먹는 달로 설정한다. 그리고 무사시노대 근처에 있던 재즈카페 ‘피터 캣’에서 산더미처럼 많은 감자튀김을 만들던 하루키를 상상하며 감자껍질을 벗기는 식이다. 얼핏 보면 얼토당토 않지만 매끄럽게 이어지는 사고 회로를 따라 실행에 옮기는 것 역시 작품을 추억하는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터다. 물론 주방에 울려퍼지는 배경음악은 마일즈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이어야 한다.

그러니 이 책은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에 따라 시작해도 되고, 이미 읽었던 혹은 읽고 싶은 작품을 먼저 찾아봐도 좋다. 다만 휴대전화 속 MP3가 됐든 유니버설 뮤직에서 동시 발매한 기념음반 CD가 됐든 플레이어는 가까이 놓고 시작해야 한다. 언제 어떤 음악이 듣고 싶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각기 다르게 지글거리는 잡음을 선사할 수 있는 LP가 옆에 있다면 금상첨화다. 보다 개인적인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을테니.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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