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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엔 70년 애환 응축, 거기서 ‘또순이 정신’도 탄생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가 서울 청계6가 오간수교 부근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는 이곳을 70년 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으로 꼽았다. 현대화된 평화시장과 오간수교가 보인다. 김춘식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는 고정일(75) 동서문화사 대표의 마음은 복잡다단하다. 출판인이자 소설가인 고 대표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한창이던 1940년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8·15 광복의 환희, 분단과 6·25전쟁의 비극, 4·19와 5·16의 격동기, 10·26과 서울의 봄, 87년 민주화 운동 등 격동의 현대사를 지켜봤다. 굴곡진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기쁨의 눈물도 흘렸고, 피란길에 어머니와 동생 둘을 눈앞에서 떠나보내며 피눈물도 흘렸다. 독재에 항거해 감옥에도 갔다. 현대사 전개 과정에서 인간 고정일이 경험한 희로애락은 동시대를 살아온 대한민국 사람이 보고 듣고 겪고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나간 70년을 되돌아보고 다음 70년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고 대표를 만난 이유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숨 가쁜 현대사의 시작은 45년 8·15 광복이었다.

-해방 당일 기억나는 장면이 있나.
“다섯 살 때였다. 내 기억에 그날은 오히려 조용했던 것 같다. 16~17일이 더 요란했다. 서울 종로 보신각과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 빌딩) 주변을 사람들이 가득 채웠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몰려나왔고 전차에 매달려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해방 이후 정국은 매우 혼란스러웠을 텐데.
“하지 남한 주둔군 사령관은 처음에 공산당을 용인했다. 그래서 박헌영·이강국이 공공연히 활동했다. 땅과 비료를 준다고 하니 마르크스·스탈린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로당에 가입했다. 위조지폐를 뿌린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을 계기로 공산당을 불법화했다.”

-6·25전쟁의 기억은.
“서울이 3일 만에 점령돼 처음엔 피란 갈 겨를도 없었다.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 사령부가 지금의 종로5가 효자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학교 옆에 살았는데 정문에 탱크가 서 있던 기억이 있다. 평화극장에서 저녁마다 스탈린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영화를 강제로 보게 했다.”

-직접 겪은 전쟁의 참상은.
“아버지가 제2국민병으로 전쟁터에 간 상태에서 51년 1·4 후퇴 때 피란길에 올랐다. 경기도 용인 신갈의 달마을에서 중공군과 미군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17~18세 북한군 처녀들이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월 25일 밤에 초가집에서 잠을 자는데 미 공군기 10여 대가 폭격했다. 이 와중에 초가지붕이 날아갔고 어머니와 두 동생을 잃었다.” (고 대표는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현대사의 대표적 현장으로 서울 청계6가 오간수교(五間水橋)를 꼽았는데.
“지나간 70년이 상징적으로 압축된 곳이다. 나를 비롯, 그 시대 사람들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참 열심히 살아냈던 공간이다. 45년 광복 이후 38선으로 분단되면서 북한에서 못 살겠다고 월남한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 청계6가 뚝방길이다. 그들처럼 전쟁에 몸서리친 사람들이 평화의 염원을 담아 평화시장을 만들었다. 지금은 초고층 빌딩과 패션 상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당시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
“새벽 4시부터 미군 부대 앞에서 깡통을 들고 길게 줄 서서 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받아왔다. 이걸 끓인 꿀꿀이죽을 먹고 연명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군복을 청계천에서 검게 물들여 내다 팔면서 먹고살았다. 함경도 출신 또순이들이 억척같이 살더니 결국 평화시장과 광장시장의 주인이 됐다.”

-고 대표와 청계6가의 인연은.
“휴전 이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신문팔이를 하면서 매일 종로 영창서관에 가 책 한 권씩 사서 읽었다. 서점 주인이던 장복한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1년간 서점에서 일했다. 그분은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해주셨다. 그 무렵 언젠가 나도 훌륭한 문학책을 출판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할아버지가 철 지난 잡지를 대주셔서 오간수교 위에서 책 좌판을 열었다.”

-불과 16세에 출판사를 차렸는데.
“청계천 또순이 아주머니들의 강인한 생활력에 영향을 받았다. 56년 청계천변 옛 덕수상고 담벼락에 천막 책방(정문서림)을 열었고 그해 12월 정일출판사(현 동서문화사의 전신)를 차렸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지혜와 사랑』을 발간하며 출판인이 됐다.”

-큰 성공을 거뒀는데.
“책보다 밥이 더 절실했던 60년대에 대담하게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전 30권)을 출판했는데 쫄딱 망했다. 빚쟁이 등쌀에 20세 때 여관방에서 자살 시도를 했다. 많은 분의 격려 속에 재기해 69년 『대망』(전 20권)을 내면서 동서문화사로 출판사 이름도 바꿨다.”
고 대표가 낸 『대망』은 출간 5년 만에 국내 출판 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100만 부) 기록을 세웠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한국 출판계에서 고 대표의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였다. 그의 도전은 『세계문학전집』 『한국세계대백과사전』으로 이어졌다. 한국출판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이유다.

-『실록대하소설-불굴혼 박정희』(전 10권)를 직접 집필했다.
“10년 공을 들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 보름 전에 김재규를 찾아가 ‘거사를 도우라’고 했다. 김재규가 당시 장면 정권의 국방장관이던 현석호에게 곧바로 달려가 고자질했다. 보고를 받은 현석호는 ‘박정희가 쿠데타는 무슨 쿠데타’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는데.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을 보면서 박 대통령이 핵 개발에 나서 소량의 플루토늄을 1차로 추출한 것으로 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묵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10·26 이후에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레이건 행정부의 신임을 얻으려 핵 개발 관련 서류를 모두 챙겨 미국으로 가져갔다. (10·26과 미국의 관련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지난 70년, 기적적인 발전의 동력은.
“대다수의 순수한 국민이 지도자를 잘 따랐다.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킨 부모들의 희생도 기억해야 한다. 또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의무교육 도입이 민족사에서 큰 결정이었다는 사실이다. 한·미 동맹이 오늘날의 발전에 바탕이 됐다. 지난 70년간 최고의 지도자를 꼽는다면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다.”

-지난 70년을 돌이켜 보는 소회는.
“숱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뤄왔지만 동시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후손들이 좀 더 진지하게 앞 세대의 피와 땀을 반추해보면 좋겠다. 우리는 좀 더 경건해져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들려줄 말은.
“격동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봐왔다. 실패는 성공의 척도다. 많은 청년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 용기를 내고 전진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인생은 달라졌다. 청년들이여, 대망을 품어라.”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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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