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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이상용의 영화 속 철학 산책] 멋진 인생(1961)

1 주택 협동조합을 이끄는 조지 베일리는 신뢰의 상징이다. 영화는 돈이 신뢰를 흔들 때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인간 신뢰가 낳은 새옹지마
영원한 아메리칸 드림 대변


[영화 속에서] 이상용 영화평론가

프랭크 카프라(1897~1991)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는 말과 동의어다. 경제대공황 시기(1929~1939)에 선보였던 그의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선함을 강조했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디즈씨, 도시에 가다’(1936) ‘우리들의 낙원’(1938)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 등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을 앞세워 공동체(시골)의 정신을 예찬하고, 소시민이 주인이 되는 인민주의를 보여주었다. 고달픈 시기를 살던 1930년대 미국인들은 카프라의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영화 현장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감독의 자리에 섰던 카프라의 인생은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었다. 그는 6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였다.

2 영화 ‘멋진 인생’의 포스터 3 영화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 캐럴’ 뒤집은 묵시록 성격
2차 세계대전 이후 영화 현장으로 돌아와 선보인 ‘멋진 인생’은 카프라의 변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주인공 조지 베일리는 작은 마을 베드포드 폴스에서 가난한 조합원들에게 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하는 사업을 펼쳐나간다. 베일리가 이끄는 조합은 이 마을의 유일한 자본가 포터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 유일한 기업이다. 그런데 베일리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에 입금해야 하는 8000달러를 분실한 것이다. 이 영화는 절망에 빠진 한 남자가 어떻게 구원되는가를 보여주는 크리스마스 영화다.

은행가 포터가 원하는 것은 마을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베일리는 다 쓰러져가는 집을 조금씩 고쳐가며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행조합의 대출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짓는 사업을 펼친다. 명백하게 대립하는 두 인물의 구도를 통해 자본주의 대 인민주의, 개인주의 대 공동체주의의 구도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베일리의 연설을 통해 펼쳐지는 인간을 향한 믿음과 당위성은 1930년대 카프라 영화처럼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한다.

영화에는 이전의 카프라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소인 ‘천사’가 등장한다. 영화는 절망적인 기도를 들은 신이 2등급 천사 클라렌스에게 베일리를 도와주라고 지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강물에 뛰어들려고 하는 베일리 앞에 나타난 이가 바로 클라렌스다. 그는 베일리의 소망대로 ‘만약에 베일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마을이 어떻게 변했을지 보여준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버전을 뒤집어 전개하는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묵시록이다. 포터의 손에 의해 탐욕스럽고 비인간적으로 변해버린 마을은 인심을 찾아볼 수가 없고,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충격적인 장면은 조합 대출을 통해 짓던 주택단지가 ‘무덤’으로 변해 있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이 악몽은 카프라 영화의 새로운 비전을 생각하게 한다. 카프라나 주인공 베일리 역을 맡은 제임스 스튜어트는 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인물들이었다. ‘멋진 인생’은 전쟁이 끝나고 만들어진 카프라의 첫 영화다. 개봉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장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라 ‘필름 누아르’였다. 사람들은 극장에서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었다. 악몽을 경험한 베일리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8000달러가 넘는 돈을 모으는 장면은 설득력 있는 현실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올드 랭 사인’을 ‘떼창’ 하는 장면도 당시 관객들에게는 어설픈 판타지로 보였다. ‘멋진 인생’은 시대착오적인 영화였다.

인간 향한 믿음 … 성탄절 이브의 ‘기적’
그러나 이 영화의 생명력은 의외로 강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멋진 인생’은 저작권이 풀린 후 연례행사처럼 크리스마스 전야마다 방영되었다. 그것은 곧 미국인들의 신화를 대변했다. 사람들은 각박해지는 현실 속에서도 영화를 통해 희망을 느끼고 싶어 했고, 영화를 TV에서 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열렬한 애정을 표하기 시작했다.

카프라의 영화적 주제 중 하나는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것이다. ‘멋진 인생’의 새옹지마는 영원한 아메리칸 드림을 대변하면서 사람들의 희망을 품어주기 시작했다. 카프라의 삶도 그랬다. 그는 이민자로 미국에 들어왔지만 가장 미국적인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이방인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미국적일 수 있었던 카프라의 새옹지마야말로 영화만큼이나 극적인 ‘멋진 인생’을 대변해 주었다.



전쟁보다 무섭던 냉전시대
인간 속에서 ‘천사’를 찾다


[영화 밖으로] 강신주 대중철학자

‘멋진 인생’은 자본가 포터와 협동조합을 이끄는 베일리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영화다. 흥미로운 점은 포터라는 자본가를 악당으로, 베일리는 선인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미국 사회는 냉전 논리에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었다. 미국이 사회주의 진영의 맹주 소비에트 연방에 맞서 자본주의를 옹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멋진 인생’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 우호적인 영화가 아니다. 냉전 시대에 발표된 반자본주의적 영화가 후대에 가장 미국적인 영화로 떠올랐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베일리가 꿈꾸었던 것은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자발적 공동체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건축 협동조합이었다. 조합원들이 돈을 모아 집 한 채를 짓는다. 조합원 중 한 사람이 순서에 따라 입주한다. 비싼 이자로 대출받을 일은 없지만 신뢰가 담보되어야 한다. 조합원이 집을 몰래 팔아 마을에서 탈출하는 순간, 불신이 자라게 되고 협동조합은 붕괴될 테니 말이다.

4 프랭크 카프라 감독
자본주의·사회주의를 넘으려 한 감독
베일리는 위기에 빠진 타인을 구하기 위해 항상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바친다. 자신의 귀,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꿈, 심지어 신혼여행마저도 포기한다. 베일리는 협동조합을 떠받치고 있는 정서적 토대인 신뢰의 상징이다. 그러니 은행을 운영하는 자본가 포터에게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마침내 포터에게 베일리를 무너뜨릴 기회가 찾아온다. 베일리의 삼촌이 잃어버린 협동조합비 8000달러가 그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베일리에게 닥친 위기의 본질은 돈을 잃은 것이 아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베일리의 뇌리에는 ‘사람’이 사라지고, ‘돈’이 들어오게 된다. 돈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매정하게 굴던 베일리는 자살이라도 해서 생명보험금을 타려는 생각을 품는다.

그 순간, 천사가 나타나 베일리를 구한다. 천사의 도움으로 베일리는 순간이나마 자신이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다는 걸 깨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곧이어 크리스마스 이브답게 기적이 일어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가 도와주었던 사람들과 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찾아온 것이다. 신뢰를 신뢰로 갚은 것이다.

‘멋진 인생’은 표면적으로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전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의가 있다는 것, 그래서 타인을 자발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생겨난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 어쩌면 카프라는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마저도 넘어서려고 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한다면, 사회주의는 그 본성을 구조적으로 원천봉쇄하기 위해 사유재산 자체를 부정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동물성을 사회에 풀어놓으려고 했다면, 사회주의는 인간의 동물성 자체를 감금하려고 했던 것이다.

냉전 시대 미국인들이 ‘멋진 인생’에 감동했던 까닭은 전쟁보다 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도가니에 수많은 사람과 재화를 쏟아버리고 간신히 소생한 자본주의는 이제 모든 미국인을 상호 불신과 경쟁의 콜로세움에 세웠다. 공동체라는 감각이 거의 증발해버린 무정한 사회에서, 미국인들은 안방극장에서나마 베드포드 폴스 마을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천사는 없지만 ‘천사’가 될 수는 있다
불행히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타인보다 먼저 신뢰를 보내는 이는 드물다. 행여 타인을 믿었다가 배신을 당할까 두려워한다. 베일리가 되기보다는 베일리와 같은 사람이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어쩌면 ‘멋진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은 위기에 빠진 베일리를 도왔던 2등급 천사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띨띨한 천사가 없었다면 베일리는 결코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영화 이면에 깔려 있는 비장한 절망감이 은근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에는 천사가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서로 신뢰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고 천사가 없다는 것에 너무 절망하지는 말자. 바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을 테니. 잊지 말자. 천사를 기다리는 방법 말고, 우리가 천사가 되는 근사한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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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