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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그 천추샤 맞아요”

이번엔 일전에도 이 칼럼란에 등장한 적이 있는 친구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바로 이랜드 그룹 박성경 부회장이다. 사실 이랜드가 우리 라이언 그룹의 팍슨 백화점과 함께 일을 한 지는 이미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그룹 경영에 전혀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에 2013년 우리 가족이 서울에 놀러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처음 스카이 박(Sky Park)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대의 첨단을 걷는 옷차림 때문이다. 블랙 앤 화이트의 대비는 강렬했고, 옷감의 재단은 맞춘 듯 꼭 들어맞았다. 거기에 모자와 스카프, 각종 장신구의 매치는 기본, 아찔한 하이힐까지. 내 눈앞에 그가 나타났을 때 나는 마치 패션 교주를 영접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통역을 사이에 두고 소개를 나눴다. 나는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이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박 부회장은 내 명함을 보곤 통역에게 내가 말레이시아 사람인지 물었다. 그리고는 나와 이름이 같은 홍콩 가수가 있다고 전했다. 통역이 내 국적을 확인해주자 그녀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번졌다. 나는 때를 놓쳐 오해를 살까 싶어 얼른 “내가 바로 천추샤 본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게 아닌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내 얼굴과 몸매가 40년 전 은막의 스타 시절과 차이가 그렇게 크단 말인가. 바로 코앞에 앉아 있는 데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서럽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녀가 나의 이름과 노래 ‘원 서머 나이트(One Summer Night)’를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사람을 감동시킨 노래 한 곡이 외면의 미모보다 낫다는 방증이다.

그 날은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박 부회장은 나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류 문화공연인 와팝(WAPOP) 콘서트에 가서 공연할 계획을 세웠다.

거대한 의문이 일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마땅한 무대 의상도 없었다. 이걸 어쩐담. 그는 바로 자신의 의류 브랜드에서 블랙 앤 화이트 호피 무늬 옷을 찾아냈다. 그는 정말이지 블랙 앤 화이트에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떠밀려 제안에 응했다. 한데 누가 알았겠나. 내가 22살 짜리 K팝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함께 ‘원 서머 나이트’를 합창하게 될 줄을. 1976년에 발표된 곡을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부를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최근 몇 년 간 공개 석상에선 노래 부른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니 천여 명의 관중 앞에 서자 무척이나 떨렸다. 그 청년과 손에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웬걸. 그는 나보다 더 심하게 떨고 있었다. 아마 그 역시 나 같은 ‘엄마’급 가수와 합창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을 게다. 부디 너무 놀라지 않았길 바란다.

그 날을 시작으로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밀접해졌다. 특히 딸 아이가 새로운 브랜드 런칭 작업에 합류하면서 두 가족이 만날 기회도 잦아졌다. 지난해 11월에는 내 생일을 맞아 열린 자선 서화전을 보러 특별히 말레이시아까지 오기도 했다. 그는 내 친구들이 자선활동에 열심인 모습을 보곤 한국 순환전을 담당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국 친구와 힘을 합칠 수 있다니, 나야 당연히 환영이다.

지난 4월 마침내 제주도에서 전시를 열었다. 사계절의 풍경을 주제로 작업을 했던 나는 감사의 뜻으로 박 부회장에게 유채꽃 작품을 선물했다. 그는 그림에 ‘유채꽃 인연’(사진)이란 이름을 짓고 켄싱턴 호텔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뒀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마치 내 노래를 듣고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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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