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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12> 흑빛으로 변한 황금산

[일러스트 임수연]

황금산 레뮤리아가 찬란한 금빛과 함께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하며 공기층을 일그러트렸다. 낮의 새들이 레뮤리아를 향해 경배를 드리듯 멈추어 있었다.

“이건 수수께끼야. 미치겠어. 52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

레뮤리아를 본 수리는 부담감이 더 심해졌다.

“아, 52의 비밀을 풀기는커녕 도대체 그 숫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답답하다.”

사비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버거워하고 있는 수리를 위로하고 싶었다.

“52라는 숫자의 비밀을 풀지 못하면 어때? 이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돌아가면 되잖아? 수리야, 힘내.”

수리는 몹시 예민해져 있었다. 쉽게 짜증을 부렸다.

“그 숫자를 풀지 못하면 나비도 찾지 못할 것이고 나비를 찾지 못하면 골리쌤도 찾지 못할 것이고 결국 아빠도 찾지 못할 거야. 사비야, 우리는 아빠를 보았어. 빤히 눈앞에서 보고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어. 그게 마음에 걸려.”

사비가 수리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마루가 둘의 잡은 손을 야무지게 끊어버렸다.

“너희 뭐 하니? 다른 사람 좀 배려하자. 윤리 시간에 안 배웠니? 친구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

마루는 눈을 흘기더니 불현듯 휘휘 휘파람을 불었다.

“저 황금산에서 나오는 에너지 봤어? 공간이 휘어지잖아? 진짜 후덜덜이지?”

사비는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했다.

“공간을 왜곡시킬 정도의 강한 에너지가 왜 누이들에게 필요할까?”

수리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수리야. 나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말해도 될까?”

사비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들반들했다.

“어서 말해. 벌써 궁금해.”

“우리가 이곳에 와서 처음 보았던 붉은 머리 거인들 있잖아?”

수리의 재촉에도 사비는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아, 그 빨간 쓰레기통 뚜껑 쓴 거인들?

마루는 스스로 말하고 우스운 듯 키득키득 웃었다.

“마루야! 우리 진지하다. 까불거리지 마라.”

수리가 제법 엄하게 굴었다.

“그 붉은 머리 거인들이 이스터 섬의 거인 석상과 관련이 있는 거야? 닮긴 했잖아? 아니 똑같아. 그치?”

수리의 눈빛은 별처럼 총총했다.

“나는 그렇다고 믿어. 두 존재는 분명히 깊은 관련이 있어. 잘 생각해 봐. 어떤 유사한 특징을 갖는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물은 반드시 어떤 공통된 조상을 갖는다, 그리고 이 두 종이 언제쯤 서로 다른 종으로 분리되었는지를 탐구하는 방법이 바로….”

“분자시계!”

사비가 수리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마루는 아직도 까불까불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스터 섬의 붉은 머리 거인들은 돌덩이잖아? 이곳의 붉은 머리 거인들은 생명체고. 미친 거 아니야?”

마루는 계속 킥킥 웃었다. 수리와 사비는 마루를 째려보았다. 그래도 마루는 계속 웃었다.

“내가 미친 것 같아? 그럼 대답해 봐, 이것들아. 이곳의 생명체가 이스터 섬의 돌덩이로 진화된 거니?”

마루의 공격은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증거 있어?”

수리는 화제를 돌리려 했다.

“마루야. 지금 이게 중요하니? 당장 나비를 찾아야 하고 골리쌤을 찾아야 한다고. 이렇게 한가하게 입씨름할 시간은 없어.”

마루는 느려터진 말투로 궁시렁거렸다.

“나비는 골리쌤이 지키고 있잖아? 그리고 골리쌤은 케아라닥틸루스가 지키고 있지. 젠장.”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야? 어디서 나오는 거지?”

볼트가 수리의 팔을 흔들었다.

“여긴 누이들의 땅이야. 이 제국의 이름은 라파 누이!”

“그건 우리도 알고 있는 이름이야, 볼트. 라파 누이!”

수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라파 누이? 그렇다면, 붉은 머리 돌덩어리들은 돌리? 그래 돌리! 이게 바로 분자시계라네.”

마루는 돌리 돌리, 하며 뛰다 화들짝 놀라 외쳤다.


미친 새들의 공격

“폴더!”

폴더가 쿵쿵 소리를 내며 힘차게 걸어나왔다

“그들은 결국 우리다.”

폴더의 음성은 큰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마루가 또 방정맞게 받아쳤다.

“돌덩이. 돌리. 돌덩이. 돌리. 으하하.”

마루는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급기야 사비가 마루를 말렸다.

“마루야, 그만해. 인격모독이야.”

“무슨 인격모독? 돌격모독이지. 내가 돌덩이와 돌리하고 얘기하고 있는 거네. 으하하.”

폴더는 인상을 찌푸렸다. 순간 누이들이 이상한 목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뚜뚜뚜.”

수리는 점점 더 혼란스러웠다.

“무슨 소리지? 익숙한 소리야. 뭐지? 뭐지?”

“너는 나비를 지키지 못했다. 네피림에게 빼앗겼다.”

폴더의 음성은 준엄했다. 꾸짖음이었다.

“약속을 지키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네피림이 쳐들어왔죠. 그런데 폴더, 당신은 왜 누이들과 있는 거예요? 당신은 누이들을 감시하고 있었잖아요?”

폴더는 수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볼트가 나섰다.

“폴더는 우리를 도와주고 있어. 붉은 머리 거인들 중 유일하게 우리를 돕고 있지.”

“폴더, 당신은 무엇을 돕고 있는 거죠?”

사비가 물었다. 순간 볼트가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미친 새들이야. 미친 새들이라고. 미친 새들은 낮의 새들을 잡아먹는단 말이야. 큰일났어.”

수리 일행이 난생 처음 보는 새들이었다.

“날아다니는 상어야. 상어랑 똑같아. 저 이빨. 흉측해.”

미친 새는 입 없이 턱과 이빨만 있는 구강 구조였다.

“미친 새들의 땅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미친 새들의 땅이라니? 무슨 미친 소리야?”

겁에 질린 볼트의 모습에 마루가 덩달아 겁에 질렸다.

“라파 누이 제국은 누이들의 땅이야. 미친 새들의 땅은 바로 옆에 붙어 있지. 그리고 우리가 보았던 물의 땅은 올름의 땅이지.”

마루는 볼트에게 손가락질까지 했다.

“그럼 커다란 공룡들은 어디서 사는 거야?”

“공룡? 아, 힐라 몬스터?”

“힐라 몬스터? 그거 수리가 전문적으로 애용하는 도마뱀 이름인데?”

마루는 혀를 쏘옥 내밀었다.

“힐라 몬스터들의 땅이 있어. 우리는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땅을 벗어나지 않아. 왜냐하면, 네피림의 통제를 받지 않거든. 너희들이 처음 왔을 때 보았던 건 힐라 몬스터들의 특별한 날이었어,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볼트의 설명에 수리가 침을 튀기며 물었다.

“볼트? 그렇다면, 네피림은?”

이번에는 폴더가 대답했다.

“팬옵티콘(panopticon)


, 네피림이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미친 새를 보낸 게 분명하다. 우리는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 전에 빨리….”

폴더는 어쩌면 많이 좌절하고 있었다.

“아니요. 내가 협상을 하면 되요. 네피림이 나에게 임무를 주었어요. 52를 찾아오라고요. 분명히 이 숫자엔 어떤 비밀이 있을 거예요. 그걸 찾기만 하면 우린 팬옵티콘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요.”

수리는 자신만만했다. 폴더의 눈동자에 수리가 점점 커지면서 결국 지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큰일났어. 미친 새들이 낮의 새들을 먹고 있어.”

볼트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했다.

미친 새의 턱 아래에는 볼록한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낮의 새들을 잡아먹을수록 볼록 주머니는 풍선처럼 마구 커졌다. 황금산 레뮤리아는 어느새 흑빛으로 바뀌어있었고 찬란한 금빛은 사라져버렸다. 공간을 왜곡시키던 그 에너지도 죽어버렸는지 들이마시는 공기마저도 가슴이 벅찰 정도로 단단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브라키오사우르스

“저것 봐!”

“어? 브라키오사우르스다.”

마루가 방방 뛰었다.

“왜 왔지? 네피림이 보낸 건 아닐테고. 희한하네.”

수리도 궁금했다.

“이들은 물의 땅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볼트도 이상하다는 듯이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브라키오사우르스가 고개를 길게 빼고 목을 놓아 울었다. 후우우 후우우 울었다.

“누군가 찾고 있어. 그래. 골리쌤이야. 사랑이야. 사랑.”

사비가 손뼉을 쳤다. 수리는 브라키오사우르스 앞으로 냅다 달려갔다. 그 앞에선 파리 한 마리 정도나 될까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수리가 관심을 끌려고 아무리 손짓 발짓을 해도 소용없었다. 브라키오사우르스는 수리를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폴더가 쿵쿵 다가오더니 수리를 번쩍 들어 브라키오사우르스 눈앞에 대령했다.

“골리쌤은 분명히 살아있어요. 같이 찾으러 가요. 그런데 저것 봐요. 저 미친 새들이 이곳을 파괴하고 있어요. 이곳이 멸망하면 우리는 골리쌤을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 몰라요.”

브라키오사우르스는 순한 눈을 꿈뻑거렸다. 말을 알아 들었을까?

잠시 후, 브라키오사우르스 여러 마리가 쾅쾅 땅을 찢으며 달려 그 길고 강력한 모가지로 미친 새들을 쳐냈다. 브라키오사우르스가 모가지를 흔들 때마다 미친 새들은 까무룩히 멀리 날아가버렸고 그들의 시체는 땅으로 우두두 떨어지기도 했다.

“끝내준다. 쥬라기월드를 넘어서는 역대급 명작이다.”

마루는 야호 소리를 내며 브라키오사우르스를 힘차게 응원했다.

“어, 리키니우스.”

볼트는 잽싸게 달려가 한 노인을 부축했다. 그 노인은 우물에서 기어올라왔다. 수리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깊은 우물에 묻어둔 노래. 저 노인이 바로 그 책이야.”

순간 수리는 그 노인의 몸을 뚫고 나오는 강력한 메시지를 알아챘다.

“아, 전설 속에 존재하는 그 책이야. 펠림프세스트(palimpsest). 고의적으로 중요한 기록을 쓰고 지운 다음 다시 그 위에 하찮은 기록을 적은 책. 저 노인이 바로 52라고!”

팬옵티콘
1791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을 말한다. 팬옵티콘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라는 뜻의 ‘opticon’을 조합한 단어. 번역하면 ‘모두 다 본다’라는 뜻이다.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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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