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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자위권 법제화는 “헌법 파괴”

[뉴스위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3기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교도통신이 지난 7월 17·18일 양일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7.7%에 그쳤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51.6%였다. 지지율이 70%를 넘어섰던 2013년 초에 비하면 반토막 난 셈이다. 6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47.4%)에서 한 달만에 9.7%포인트 급락했다.

아베 정권 규탄 시위대 [사진 AP]


지지율 급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집단 자위권 법안 처리를 여당 단독으로 강행한 사건이다. 현 일본 여당인 자민당·공명당 연합은 15일 중의원 특별위원회, 16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집단 자위권 법제화를 위한 11개 안보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했지만 중의회 과반 의석을 보유한 여당 연합은 단독으로 법안을 가결시켰다. 이제 집단 자위권 확보까지는 두 달 내로 실시될 예정인 참의원 본회의만 남은 상황이다. 여당 연합은 참의원 의회에서도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참의원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단독 가결이 가능하다. 이변이 없는 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획득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한 가지 이변 가능성은 야당의 거센 반발과 지지율 하락에 위기감을 느낀 자민당이 집단 자위권 법제화를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다. 이미 일본 각지에선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빗발친다. 15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선 6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 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나고야,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 일본 전역에서 시위가 잇따랐다.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법안 통과에 찬성하지 않는 일본인은 전체의 73.3%로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 아베는 21일 방송에 출연해 “정치는 지지율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며 향후 법안 처리도 강행할 의사를 밝혔다.

아베 입장에선 그럴 만도 하다. 일본의 무장과 교전을 금지한 일본 헌법 9조(일명 평화헌법) 개헌은 오랜 세월 아베를 비롯한 일본 우익 세력의 숙원이었다. 아베가 방송에서 “개헌은 필생의 과업”이며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이번 사태는 2014년 12월 조기 총선에서 일본인이 자민당에 단독 과반 의석을 몰아줬을 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2014년 조기 총선으로 구성된 3기 아베 정권은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으로 중의원·참의원 양쪽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면서 단독 입법은 물론 단독 개헌 발의 요건까지 갖췄다.

이번 안보법안은 평화헌법 개헌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입법의 탈을 썼을 뿐 개헌에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이 금지하는 교전권을 개헌이 아닌 입법으로 획득하려 하기 때문이다. 헌법학자인 아오노 아츠시 오이타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입법을 “사실상의 헌법 개정”이라고 평했다. “전후 일본이 고수해 온 ‘전수방위(직접 공격을 받았을 때 방어를 위한 무력만을 행사하는 것)’ 입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일본의 선제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이 집단 자위권의 본질이다.”

일본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아츠시 교수는 “당당하게 개헌을 제안하고 국민의 판단에 따른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며 아베 내각이 단독으로 개헌이나 다름없는 입법을 강행한 것은 “헌법파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헌법 9조만이 문제가 아니다. 권력자가 멋대로 권력을 행사한 전례로 남을 우려가 있다.” 이시카와 켄지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는 한층 더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쿠데타였다”고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개헌 없이 집단 자위권을 입법하려는 것은 “헌법을 뒤엎는 행위”이며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헌법을 뒤엎는다면 혁명이지만 아베는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행동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헌법을 파괴하는 것을 쿠데타라고 한다.”

일본 정부가 헌법 해석을 새롭게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일본 헌법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헌법이다. 1946년 제정된 헌법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개정도 없이 이어졌다. 일본 헌법보다 앞서 제정된 헌법은 많지만 모두 개헌을 여러 차례 거쳤다. 일본은 개헌하지 않는 대신 해석을 바꿔가면서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했다. 평화헌법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일본 국민은... 전쟁, 무력에 의한 위협, 무력 행사를 국제 분쟁 해결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9조 1항과 “육해공군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9조 2항을 통상 평화헌법이라 일컫는다.

헌법 제정 당시 일본 정부는 헌법 9조를 ‘일본은 자위권을 보유하되 행사할 수는 없다’고 해석했다. 만약의 경우엔 유엔이나 동맹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 일본이 가진 자위권의 전부였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되고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정부는 1954년 헌법 해석을 변경하면서 자위대를 창설한다. 전수방위 원칙은 이때 생겨났다.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며, 방어를 위한 최소한도의 무력은 행사하되 집단 자위권은 행사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병력은 있는데 군대는 없는 일본식 ‘평화주의’의 시작이다.

이후 걸프전, 북핵 위기, 9·11 테러 등 국제 정세의 변화에 맞춰 평화헌법 해석도 조금씩 바뀌었다. 평화유지군 파병이 허용됐고, 비전투지역 다국적군 지원도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집단 자위권은 끝내 금단의 영역으로 남았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 취급을 받는다. 특히 해상자위대의 경우 전 세계 해군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을 자랑한다. 만약 집단 자위권까지 갖춘다면 이를 빌미로 선제공격도 가능해지고, 군대와 자위대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진다.

일본이 군대를 갖는 것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국가는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모나코 등 대개 인구가 100만 명 미만인 소국이다. 군대가 없다고 해도 경찰이 군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인접 국가로부터 국방을 제공받으므로 완전히 무방비 상태는 아니다. 일본처럼 인구 1억이 넘고 국내총생산(GDP)이 4억 달러에 달하는 대국이 군대를 가지지 않기란 험난한 국제 정세를 생각해볼 때 힘든 일이다. 자위대가 사실상의 군대 역할을 하는 이유다.

군대가 있다고 평화주의 원칙이 깨지는 것도 아니다. 일본 외에도 ‘국제분쟁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포기한다’고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이탈리아, 헝가리, 에콰도르, 카자흐스탄 등 많다. ‘침략전쟁’ 또는 ‘공격적 전쟁’을 부정하는 조항까지 평화헌법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일본 헌법이 특수한 이유는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 때문이지만, 사실상 군대와 다름 없는 자위대가 있어 유명무실하다. 일본이 개헌을 통해 집단 자위권을 획득하거나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한다고 해도 ‘분쟁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포기한다’는 핵심 조항이 남아 있는 한,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일본이 전쟁 국가가 되거나 독도를 침공할 가능성은 없다.

결국 문제는 상호 신뢰와 협의다. 아베 정권이 과거사 문제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설득에 나섰다면 일본이 독도를 침공한다느니 군국주의의 망령이라느니 하는 우려는 애초에 나올 일도 없었다.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듯한 자세로 일관하면서 군비를 강화하겠다고 하니 주변국으로선 경계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보유하면 동북아 지역 안보에도 큰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주변국과 집단 자위권 행사를 놓고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 이유다.

가장 난처한 것은 한국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는 한 인터뷰에서 “집단 자위권을 일본이 갖게 되면 안보 측면에서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일본과 중국 사이에 군비 경쟁이 벌어지면 한국도 군비를 늘려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외교적인 부담도 만만찮다. “한·미 동맹, 군사 동맹 그리고 한·중 간의 경제협력, 말하자면 양면성이 공존하는 상태다. 그런데 중·일 간에 직접적인 국지전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미국을 택하느냐, 중국을 택하느냐라는 강요를 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이처럼 이해 관계가 깊은 한국과 정상회담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한국 정부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우리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우리의 동의 없이 용인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본 국민과의 협의도 마찬가지다. 아베가 지난해 7월 집단 자위권을 본격적으로 거론할 무렵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선 ‘집단 자위권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지난 5월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 역시 그랬다. 안보법안에 대해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81.4%였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별다른 조치 없이 입법을 강행했다가 지지율 역풍이 불자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아베가 직접 20일, 21일 연이어 방송에 출연해 집단 자위권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이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비유 탓에 야당과 시민단체의 분노를 샀다.

가장 큰 난관은 여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번 입법으로 아베 정권의 개헌 추진 동력이 다했다는 시각이 나온다. ‘넷우익의 역습’ ‘젊은이는 정말 우경화하고 있는가’ 등의 저서를 쓴 평론가 후루야 츠네히라는 “안보법안 성립으로 헌법 9조 개정은 영원히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개헌 반대 여론이 2004년 28%에서 2015년 44%까지 상승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지난 10년 간 개헌 반대파가 크게 늘어난 것은 집단 자위권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우리는 국제법상 집단 자위권을 보유하지만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유지했다. ‘갖고 있지만 행사하지 못한다’는 모순적 해석은 개헌에 찬성하는 보수파의 집중 표적이 됐다.” 집단 자위권은 유엔헌장 51조에 명시된 유엔 회원국의 권리다. 일본 역시 회원국이기 때문에 집단 자위권이 인정되지만, 교전권을 불허하는 헌법 9조로 인해 실질적인 집단 자위권 행사는 불가능했다.

후루야는 집단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이번 안보 법안으로 그 모순이 해소되기 때문에 그동안 개헌을 지지해 온 세력의 논리가 약화됨은 물론 일본 국민의 개헌 찬성 여론 역시 줄어든다고 내다봤다. 2013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개헌 찬성 여론이 아베의 집권 이후 서서히 감소했다. 지난 4월 조사에선 처음으로 반대(44%)가 찬성(42%)보다 높게 나타났다. “현행 헌법에 문제가 있으니 개정해야 한다는 개헌파의 논리가 집단 자위권 해석 변경과 안보법안 성립으로 ‘해소됐다’고 여겨진다는 의미”라고 후루야는 분석했다. “정부는 안보법안이 성립되더라도 헌법 9조가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고 강조하지만, 개헌을 주장하는 근거는 이전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오는 9월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다. 아직까지는 아베의 재선이 유력하다. 6월까지만 해도 투표 없이 재선될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아베의 입지는 굳건했다. 그러나 지지율이 더 낮아질 경우 여론을 의식한 자민당에서 다른 의견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다면 내각 총 사퇴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추진하다가 그 역풍으로 내각 총 사퇴에 내몰렸다. 아베의 그늘에서 기시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진다.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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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