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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산책] "때를 모르니 도리어 꺾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문물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왕조에 물밀듯이 들이닥친다. 향교와 서원의 자리에 일본식 학교와 교회당이 들어서고, 세계 열강은 자립이니 계몽이니 달콤한 명분을 내세워 선동하며 한반도를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의식 있는 지식인들의 고민과 행보가 사회 각처에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흥학(興學)의 구호에 휩쓸리고 공학(孔學)과 공교(孔敎)를 표방하며 자립의 권한을 내세웠지만 힘없는 나라의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자립 두 글자는 망국의 장본이다(自立二字之爲亡國張本).”

이 말은 명분뿐인 구호들을 바라본 시골 선비 박수(朴銖)의 근심어린 한 마디다. 자립을 누군들 바라지 않겠는가. 일찍이 파스칼도 말했듯이 힘없는 정의는 무력할 뿐이다. 힘이 없으면 자립을 아무리 외쳐도 의미가 없다는 진실을 박수는 꿰뚫어 보았다. 또한 무력하기 그지없는 조선은 그들이 의도하고 조종하는 대로 국론이 분열되어 위아래가 반목하고 결국 망국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도 간파하였다.

아울러 그는 외세의 힘에 비해 절대적으로 약하고 무기력한 조선의 힘을 인식하고 격동하는 정세에 순응하면서 민족의 맥을 유지하고 이어나가야 한다는 방안을 주장했다.

“한창 굽혀지고 있는 형세인데 펴려고 한다면 그 형세를 면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꺾일 것이다(見屈而欲爲伸, 則勢不得免, 而反見?敗矣).”
그러니 난무하고 있는 위험한 구호에 휩쓸리지 말고 은인자중하여 나라가 부지되지 못하는 가운데 한 가닥 우리 민족의 정신을 부지해 나갈 것을 당시의 지식인인 유학자들에게 권고하였다. 일견 소극적인 저항으로 보이지만, 혹은 목숨을 끊고, 혹은 나라를 떠나, 적극적으로 저항한 의혈지사 못지 않게 현재의 우리나라를 일구는 원초적 힘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수의 자는 형부(衡夫), 호는 중당(中堂),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864년 전라북도 부안의 홍해리(洪海里)에서 태어나 쉰다섯 해를 살고 1918년에 별세하여 당산리(唐山里)에 묻혔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17세에 비로소 학문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과거 공부에 뜻을 두었고, 후에는 문장 공부에 매진하였으나 모두 소용없는 학문임을 느끼고 도학 공부를 시작하여 35세에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 들어갔다.

중당유고
율곡 이이의 이기설(理氣說)과 우암 송시열의 의리와 반계 유형원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일생 익히고 실천할 학문의 요지로 삼았다. 이것이 방방곡곡의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 훗날 나라를 회복할 근간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왕조도 기울고 왕조를 유지해 오던 유학의 도(道)도 스러져가는, 그야말로 형세가 한창 굽혀지는 시대를 살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민족정신을 이어가는 데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러기에 후손들이 겨우 모아 간행한 『중당유고』 3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광복을 맞이하고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시대가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구호를 위한 구호가 진실을 묻어버리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현상은 여전하다. 교묘히 구호를 이용하고 조장하는 세력도 여전히 존재한다. 인권이라는 구호 아래 사회악이 필요 이상 보호받기도 하고, 자주국방이라는 구호 아래 전시작전통제권을 두고 국론이 분열되기도 한다.

인권이든 자주든 모두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라고 해서 그 시행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박수는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니, 때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정의를 행하더라도 중도가 될 수 없다(貴乎識時, 昧乎時, 則所行雖正, 不得爲中矣)”고 단언하였다. 구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때를 알고 형세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꿰뚫어 본 박수의 통찰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선종순 고전번역교육원 전주분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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