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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월평균 30건 맡아, 보수 800만원 … 변호사 홍수시대 경쟁률 9대 1

강영희(34·왼쪽), 강철구(45) 국선전담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들이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돕는 과정에서 얻는 만족감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저라면 절대 안 멈춥니다. 누군가 박살 날 때까지, 끝까지 갔을 겁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에서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은 자신이 변호를 맡게 된 철거민 박재호(이경영)를 찾아가 이렇게 외친다.

 강제철거 현장에서 열여섯 살 아들을 잃고,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박씨는 “아들을 죽인 건 철거깡패가 아니라 경찰”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영화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검찰에 맞서 국선변호사가 법정에서 진실 공방을 벌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요즘 서초동 법조타운의 국선변호사들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국선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큰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후 2년 만이다.

지난 5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317호 법정. 연휴철이라 법원 휴정기임에도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피고인은 처와 세 명의 자녀를 둔 가장입니다. 회사가 폐업하면서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져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차에 첫째 아이가 머리를 다쳐 수술을 했습니다. 치료비 구할 길이 막막해 한두 번 절도한 것이 상습 절도가 됐습니다. 일부 피해자와 합의가 된 점, 구치소 수감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는 점 등을 참작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게 관대한 처분을 바랍니다.”

경력 2년 차 강영희(34·변호사시험 1회) 국선전담변호사가 황토색 수의를 입고 고개를 푹 숙인 피고인 옆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고 선처를 바란다”는 피고인 진술이 진행됐다. 선고 일자 지정 후 재판은 끝났다. 강 변호사는 5건의 사건 변론을 더 한 뒤 일과를 마쳤다.

 “‘소수의견’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은 거의 없어요. 생계형 형사사건이 90% 이상이죠.”

 영화 얘기를 꺼내자 강 변호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술집에서 행패 부리다 재판을 받게 된 의뢰인, 회사가 망해 투자금을 단박에 날린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한 사장님 사건과 자동차 추돌사고로 생긴 분쟁 등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강 변호사는 “억울이야 하겠지만 벌금 몇 백만원짜리 사건 때문에 사선(私選)변호사를 선임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실제 경제 사정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판부에 국선변호사 선임을 요청하는 이들이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재판에서 국선변호사가 선정된 건수는 8만3185건이고 2심에선 3만2453건, 상고심 9196건으로 총 12만4834건이다. 2005년 1·2심, 상고심을 합쳐 총 6만2169건이었던 데 비해 배 가까이 늘었다.

국선이 사선변호사에 비해 무성의한 변호를 한다는 인식도 바뀐 지 오래다. 10년 전만 해도 ‘돈 안 되고 일만 고되다’는 인식이 강해 국선은 변호사들 사이에선 기피 대상이었다. “관대한 처분을 바랍니다”라는 10자 변론에 그친다는 비아냥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법원이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2006년부터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를 강화하면서 사건 수임과 급여 양면에서 안정화됐다. 그러자 국선전담변호사의 인기가 치솟았다. 국선전담변호사는 법원이 선정하는 형사사건만 한 달 평균 30건 정도 맡고, 월 800만원(경력 2년 이하는 월 600만원)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받는다.

특히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으로 매년 2000여 명의 변호사가 쏟아지면서 국선전담변호사 지원 경쟁률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07년만 해도 21명 선발에 39명이 지원해 경쟁률은 1.9대 1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9년 6.1대 1을 기록하더니 이듬해엔 12대 1로 뛰어올랐고 이후로 평균 8.9대 1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국선전담 8년 차인 강철구 변호사(45·사법연수원 37기)도 지난 5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재위촉됐다. 강 변호사는 다시 국선변호사를 지원한 동기에 대해 “매달 30건씩, 1년에 300~400건씩 형사사건을 변론하다 보니 형사 전문이 됐는데 이 경험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선이 맡는 사건은 사선변호사들이 맡지 않으려는 사건이 적지 않다”며 “시시콜콜하거나, 극악무도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사에게 필요한 덕목을 묻자 “얘기를 잘 들어주는 일”이라고 답했다. 강 변호사는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사건이라도 당사자에겐 저마다 하소연이 있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범죄자도 자신의 말에 누군가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영희 변호사도 “실제로 국선사건 피고인 중엔 ‘내 얘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화가 풀린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며 서랍 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미국에서 불법 체류 중 딸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개설해 줬다가 기소돼 1년 넘게 재판을 받고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50대 한국인 가장이 보낸 거였다. 이 가장은 같은 범죄로 한국에서 공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되자 “대포통장이 공문서 위조에도 악용될 줄 몰랐다”고 억울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 변호사가 열과 성을 다해 최종 변론하는 모습을 보고는 ‘구치소로 돌아가는 길에 펑펑 울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여한이 없다. 마음속 응어리진 게 다 풀렸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일이 고될 때마다 이 편지를 꺼내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글=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형사 사건 피고인과 성폭력 피해자 변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을까? 답은 ‘예스(Yes)’다. 다만 형사사건에 한해 가능하다. 민법이 아닌 형법(범죄와 형벌에 관련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사건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형사소송법 제33조(국선변호인)는 ▶피고인이 구속되었을 때 ▶미성년자 ▶70세 이상인 자 ▶농아자(聾啞者)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으나 변호인이 없는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도록 돼 있다. 또 빈곤, 기타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을 때 피고인의 청구로도 가능하게 돼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 5개 고등법원과 18개 지방법원, 14개 지방법원 지원에서 현재 229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법원이 지정하는 사건 외에 사적으로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

 피고인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 제도도 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수사·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인권침해나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효율적인 법률 지원을 위해 법무부가 2013년 7월 도입했다. 얼마 전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40대 여성에게도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 소속의 국선변호사가 선임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피해자에게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것인지를 물어 원하면 관할 국선변호사를 소개해주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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