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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로마는 카이사르가 만들지 않았다

알레시아 공방전(BC 52년)에서 패한 베르킨게토릭스(왼쪽)가 카이사르를 찾아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장면. 1899년 리오넬 노엘 루와이예가 그렸다. [중앙포토]

로마의 일인자 1~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신봉아 외 옮김
교유서가, 각 권 336~556쪽
각 권 1만4500~1만7500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가시나무새』를 쓴 호주 작가 콜린 매컬로(1937~2015)가 대단한 역사소설을 내놓았다. 한국에서 세 권으로 번역된 『로마의 일인자』다. 고증에만 13년, 집필에만 20년이 걸렸다는 7부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한다. 역사와 문학의 결정적 만남으로 꼽을 만하다.

 시리즈 1부의 주인공은 가이우스 마리우스(BC 157?~BC 86)다. 평민 출신인 그는 카이사르 가문의 율리아와 결혼하며 신분 상승을 꾀했다.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를 물리쳤고, 전통 귀족인 메텔루스도 눌렀다. 그가 로마 군대를 재조직하며 일인자 위치에 등극하는 과정, 여러 차례 집정관 자리에 오르면서 다양한 게르만 부족의 침입을 격퇴하는 과정이 『로마의 일인자』의 주요 얼개다.

 매컬로의 시선이 마리우스에게만 치중된 것은 아니다. 그의 부하이자 친구였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주변인에 대한 음모, 유구르타가 서출로서 갖는 약점이 그의 인간성 형성은 물론 북아프리카의 역사 전개에 갖는 의미 등도 깊이 있게 다룬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인물의 지혜와 허세와 이합집산도 이 소설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한 정교한 플롯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심리적 배경에 대한 설명과 어우러지며 독자는 마치 고대 로마의 격동적 순간순간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뿐 아니다. 등장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거대한 역사와 그들의 사소한 일상이 절묘하게 엮인다. 그들의 사랑과 결혼은 진실하지만 정략적이며, 외적을 막기 위한 그들의 칼은 내부의 정적을 겨누고 있기도 하다. 로마 귀족층의 사회상이나 게르만족의 침입을 기술한 일반 세계사 책은 이 소설의 빼어난 문체에 녹아 든 풍부한 사실 앞에서 한낱 겉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작가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전체 지도는 물론 로마의 세밀한 골목까지 정밀하게 복원해낸다. 이 소설이 다루는 로마사의 11년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그는 이런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놀라운 문학적 (게다가 역사적) 상상력을 펼친다. 이 소설 속 술라의 아내 율릴라는 마리우스의 아내 율리아의 동생이다. 율릴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매컬로는 술라의 아내의 이름이 율리아라는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근거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차녀이자 술라의 아내로 ‘율릴라’를 탄생시켰다. 그 전말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스스로 집필한 『마스터스 오브 로마 가이드북』에서 밝히고 있다.

 사실에 엄밀해야 한다는 역사가들에겐 이것이 왜곡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내겐 이것이 역사의 현장을 간명하게 보이기 위한 적절한 조치로 판단된다. 그것보다 놀라운 게 소설을 읽기 위해 가이드북이 필요하다는 일인데, 그것까지 작가가 손수 썼다. 이번에 『로마의 일인자』와 함께 출간된 이 가이드북을 통해 다른 곳에서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역사적·지리적·인류학적 세부 사실을 알게 됐다. 엄정한 사실을 요구하는 역사가로선 그 인식이 더 뼈저리다.

 매컬로는 뚜렷한 명제를 갖고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집필했다. 고대사의 거장 로널드 사임이 최초로 제기한 그 명제는 로마가 지중해를 지배하는 제국이 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도시 국가로서의 로마가 유럽을 지배하는 제국으로 확장되면서 이전의 로마 법과 제도로는 통제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기존 체제에 안주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은 있게 마련이고, 로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전쟁을 통해서도 개인적인 이득만을 챙기려는 보수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민중 전체의 안위를 염려하는 신진 세력의 대표자로 매컬로는 이 책에서는 마리우스와 술라에, 그리고 후속편에서는 카이사르에 지지를 보낸다.

 매컬로의 이러한 역사관은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통치자 중심의 시각과 대비된다. 『로마인 이야기』는 성공지상주의·제국주의·엘리트주의·반지성주의의 사례로 남을 만하다.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망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로마의 일인자』의 마지막 권을 채 덮기도 전에 후속편인 2부 『풀잎관』을 기대하게 된다. 미묘하면서도 불가분하게 얽힌 역사와 문학의 화음에 다시 한번 도취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S BOX] 『가시나무새』 작가의 전공은 신경과학

『가시나무새』에서 가톨릭 신부와 한 여인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렸던 작가 콜린 매컬로는 왜 로마사에 끌렸을까. 그는 6부 ‘작가의 말’에서 세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다른 작가들이 많이 다루지 않았다. 둘째, 현대 서구문명의 사법·정치·상업 체계가 대부분 로마 공화정에 뿌리를 두고 있을 정도로 지금의 우리와 관련이 깊다. 셋째, 역사의 무대에서 이토록 비범한 재능을 지닌 여러 인물들이 맞물렸던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매컬로는 작가가 되기 전 호주 시드니 의대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10여 년간 연구와 강의를 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쓰면서도 과학자다운 집념을 발휘해 치밀한 고증에 매달린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로마에 대한 연구서와 논문, 지역 관광 안내책자까지 모두 수집해 꼼꼼하게 읽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고대 자료를 중심으로 작업했고, 현대서적은 부수적으로만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로마의 일인자』가 출간된 후 미국의 한 사학자가 이 소설에 나오는 황금 접시와 진주 장식은 공화정 말기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매컬로는 기원전 101년에 사망한 풍자작가 루킬리우스의 기록을 근거로 이에 반박한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행군 경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터키를 관통해 1만7700㎞를 남편과 함께 직접 답사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가 얼마나 정확한 고증에 집착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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