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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저렇게 늙고 싶진 않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존경할 만한 노인이 적은 나라의 젊은이는 불행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금 그렇다. 전 세계를 상대로 절찬리 상영 중인 롯데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 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저렇게는 나이 들고 싶지 않다.’

 ‘대국민 사과’ 영상 속 94세 신격호(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 총괄회장의 눈썹은 과장되게 새까맣게 그려져 있었다. 입술은 지나치게 도톰하게 칠했다. 노령을 화장술로 감추려는 발버둥이 그대로 읽혀 안타까움만 자아냈다. 어려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노추(老醜)의 증거일 터다. 이 장면은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궈낸 그의 노년기의 쓸쓸함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모두 추해지는 건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이라는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아래로 떨어질수록 인생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며 나이 듦을 찬양했다. 롯데 일가의 모래시계는 거꾸로 가는 모양인지 신 총괄회장뿐 아니라 그의 남동생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도 품격 잃은 노년을 만천하에 과시 중이다. 조카들 사이를 이간질하며 갈등을 부채질하는 백발의 그의 모습은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신 총괄회장의 아들 둘 모두 젊은이의 롤모델이 되긴 글렀다. 장남 신동주(61·히로유키·宏之) 전 부회장이 한국어를 못한다며 “궁민 요로븐 재손하무니다”고 재미동포 부인과 함께 일본식 90도 절을 하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형식적 사과로 멍석을 깐 후 친동생 욕을 수분에 걸쳐 늘어놓는 그의 모습은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반면교사 사례로 삼으면 딱일 터다. 차남 신동빈 회장의 한국어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의 『슬픈 외국어』에 빗댄다면 ‘슬픈 모국어’에 가깝다.

 나이 듦의 품격이 사라지면서 국격까지도 위태로운 듯하다. 한 영국인 경제전문지의 서울특파원은 사석에서 롯데 사태를 두고 “94세 재벌의 집안 싸움이라니, 덕분에 하한기인데도 기삿거리는 많아서 좋아”라고 뼈있는 농담을 했다. 올해 초 본국으로 돌아간 어느 외신기자와 e메일을 나누던 중 그가 “난 롯데 사태 관심 없다”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답이 이랬다. “한국 재벌들 나이 들면 다 집안 싸움하는데 뭐가 새로워?” 창피했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은 연금저축 가입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내가 신이라면 청춘을 인생의 마지막에 배치했을 거다”라고 했지만 그도 우리도 신이 아니다. 노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늙는 게 두렵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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