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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재외동포 청춘이 겪어본 대한민국

‘재외동포’라는 말의 뜻빛깔은 복합적입니다. 한쪽에선 차별의 이름으로, 다른 한쪽에선 공감의 의미로 이해되곤 합니다. 재외동포 청춘들의 실제 삶은 어떨까요. 청춘리포트는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나라를 찾은 2030 재외동포 청춘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이 겪은 ‘대한민국’을 소개합니다. 날 때부터 이 나라에서 자란 청춘들이 새겨들을 말이 적지 않습니다.

“모두 다같이 총 맞은 것처럼~ 뱅뱅뱅뱅뱅뱅 빵야빵야~.”

지난달 31일 ‘재외동포재단 대학생 초청연수’ 에 참가한 46명의 재외동포 학생들이 한반도면 선암마을에서 옥수수를 따고 있다. [사진 재외동포재단]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 지형 관람대. 주차장 쪽에서 20대 청년 46명이 가수 빅뱅의 ‘뱅뱅뱅’을 부르고 있었다. 가사를 부르는 한국어 발음이 다소 어눌하다. 이들은 올해로 18년째를 맞은 재외동포재단 대학생 초청연수 영월 지역에 참가한 재외동포 학생들.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29개국 187명의 대학생이 지난달 28일부터 약 1주일간 한국에서 전통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주차장에서 관람대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 등산 코스. 날씨가 더워 학생들의 이마와 등에서 땀줄기가 쭉쭉 흘러 티셔츠를 적실 정도였다. 관람대에 올라 평창강 물줄기가 만들어 낸 한반도 지형을 보자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이 내 나라구나, 이렇게 생겼구나….”

 김 알리나(19·여)씨는 한반도 지형을 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우크라이나. 하지만 정작 그곳에선 외모와 가정환경 때문에 ‘외국인’이란 딱지가 붙었다.

 “나는 스스로를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집에선 한국인이라고 하고…. 학교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으며 이방인 느낌을 받았어요.”

 스스로를 ‘한국인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 건 문화 차이 때문이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당연히 쓰던 젓가락을 학교에 있는 우크라이나 친구들은 쓸 줄 몰랐다. 방에서도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와서 나와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고요.”

 김씨의 말처럼 재외동포 학생들은 한식을 비롯한 한국 문화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오후 1시 한반도 지형 관람을 마친 점심시간. 이날 점심 메뉴로 상에 불고기가 놓이자 학생들은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금세 전기밥솥 한 통이 비워졌다. 점심 식사가 끝나갈 즈음 브라질에서 온 백의현(20·여)씨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네 살 때 브라질로 이민을 갔어요. 사실 한국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죠. 그래도 집에서 한국 음식을 꼭 챙겨 먹어요. 국적은 브라질이지만 내가 먹는 음식도 내가 아는 문화도 모두 한국이죠.”

 점심 식사 후 ‘OX 퀴즈대회’를 위해 영월청소년수련관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선 ‘K팝 열창’이 이어졌다. 2PM·2NE1 등 어떤 한국 가수의 노래든 막힘이 없었다. K팝에 대한 재외동포 청춘들의 애착은 남다르다. 재외동포 학생들이 사는 현지의 10~20대들이 K팝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들과 더 친밀해졌기 때문이다. 김민영(20·여)씨도 K팝을 좋아하는 현지 친구들 덕에 “한국말과 노래가 배우고 싶어졌다”는 경우다.

 “저는 엘살바도르에 살거든요. 여기 친구는 외국 문화에 대해 배척하려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유독 한국 가수에 대해선 잘 알아요. 아버지가 살았던 경북 영천에 가면 사람들이 저를 보고 ‘아버지하고 똑같이 생겼데이’ 이러거든요. 그런 말을 들을 때 정말 자랑스러워요.”

 러시아에서 온 김 알렉산드라(23·여)씨도 마찬가지다. 김씨의 조부모는 1930년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이다. 현재는 러시아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동양인이라고 대화에 끼워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현지 친구들이 먼저 와서 말을 걸며 한국 가수에 대해 묻더라고요. 현지 친구들이 한국 음악과 드라마에 관해 말할 때가 가장 뿌듯해요.”

 오후 4시 영월청소년수련관 2층 강당. 이곳에선 한국 역사·문화와 관련된 OX 퀴즈대회가 열렸다. 사회자가 첫 번째 문제를 냈다.

 “단종은 왕자와 공주를 한 명씩 남기고 돌아가셨다. 자, O일까요 X일까요. 선택해 주세요.”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O’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정답은 X! 단종은 16세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자녀가 없었습니다.”

 곳곳에서 “오 마이 갓!”이란 소리가 터져나온다. 한병철(19·말레이시아)씨는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별로 재미있는 나라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라고 하면서도 “이번 프로그램 중에 세종대왕 영릉을 방문하고 나니 한국사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재외동포 학생들은 별마로 천문대에 올랐다. 처음으로 고국의 밤하늘을 들여다본 학생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본국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부모님이랑 형제들이 생각난다”고도 했다. 쿠바에서 온 루이스 라울 이스키에르도 김(25)씨도 그랬다. 루이스의 할아버지는 독립군 출신이었다. 할아버지는 생전 한국땅을 밟고 싶어 했지만 2008년 쿠바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 대신 내가 한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쿠바 내 한국 후손을 찾아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죠. 그 일을 하면서 어니스토 임 유(Ernesto Lim Yu)라는 인물이 2004년 대전국립묘지에 이장된 사실도 확인했어요. 외국에서 죽었어도 한국땅에 묻힐 수 있었던 거죠. 우리 할아버지도 그러셨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날인 1일 아침. 재외동포 학생들의 마지막 지역 체험 스케줄은 바로 ‘옥수수 수확 체험’이었다. 재외동포 선조들이 일명 ‘보릿고개’를 넘을 때 가장 많이 먹던 음식을 직접 손으로 수확해 보자는 취지였다. 옥수수밭에 목장갑, 밀짚모자, 팔토시 등으로 ‘완전무장’한 학생들이 섰다. 그중엔 일명 ‘몸빼바지’를 입은 학생도 눈에 띄었다. 브라질에서 온 백의현씨가 옥수수를 따면서 말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농촌에서 일을 거드는 걸 ‘농활’이라고 부른다면서요? 브라질에 돌아가면 아버지한테 꼭 자랑해야지!”

 이날 학생들이 이렇게 딴 옥수수는 세 자루나 됐다. 고국의 여름은 무더웠으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재외동포 청춘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nang.co.kr
영월·원주=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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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