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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살의 어설픈 청년, 중국 정치를 농락하다!"

증시 얘기입니다. 오른다 내린다, 사라 팔아라, 이 종목이 유망하다...그런 말은 아닙니다. 전 그런 얘기할 자격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25년 역사의 중국 증시를 구조를 한 번 들여다보자는 차원입니다. 저희 '중앙SUNDAY' 2일자 나온 기사인데요, 좀더 보강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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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은 컸다. 중국 증시 불안은 이제 중국을 넘어 세계 경제를 떨게 한다. 서방 경제분석가들조차 상하이 증시의 버블 붕괴에 공포감을 갖는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거품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한 순간 꺼지는 일은 지난 25년 상하이 증시 역사에서 다반사처럼 일어나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중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야 서방 레이더에 잡혔을 뿐이다. 한 두 주일 사이에 종합지수가 100% 폭등하는 건 예사였다. 1000포인트 하던 주가가 불과 2년 반 사이 6배나 뛰기도 했다. 아래 도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상하이 증시는 한마디로 '버블로 점철된 역사'였다.







도대체 중국 증시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거대한 도박장'



유명 경제학자 우징롄(吳敬璉·85)은 '경제학계의 양심'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존경받는 자유주의 성향의 학자다. 상하이 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2001년 1월, 중국 관영 CCTV에 출연한 그가 작심한 듯 한 마디 던졌다.



"중국 증시는 거대한 도박장과 같다. 사기와 조작이 판친다. 일반인들은 그릇된 정보에 속은 줄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우징롄은 "허위공시, 내부자 거래, 시세조작 등 온갖 불법행위가 증시에 만연하고 있다"며 "도박장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일갈했다. 그로부터 14년, '증시 도박장론'은 그다지 개선된 게 없어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진행된 주가 '대기대락(大起大落)' 장세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번 사태의 '주범'은 돈을 꿔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거래였다. 말이 신용거래지, 그 실상을 보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탈법(脫法)행위였다. 신용거래로 돈을 조달하는 방식은 크게 장내 조달, 우산형(傘形)신탁, 장외 조달(場外配資) 3가지로 나뉜다. 장내 조달은 담보에 따라 제공되는 합법 신용거래다. 문제는 우산형 신탁과 장외조달이 바로 폭등락의 도화선이 됐다.



가장 심각했던 문제가 장외조달 방식이었다. 전주(錢主)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모집한 소액 투자가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투가자들은 그 돈으로 주식을 사는 거래 행태다. '증시 도박'과 인터넷 P2P(개인과 개인)금융의 결합이었던 셈이다. 전주는 보유 주식을 담보로 담보가액의 5배 정도를 빌려주고, 연룰 10%의 이자를 챙긴다(합법 조달의 경우는 담보액 만큼만 빌릴 수 있다). 전주는 주가가 떨어져 원금을 떼일 것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걸어놨다. 주가가 담보액 이하로 떨어질 경우 자동적으로 주식을 매도하도록 계좌에 프로그램을 심어놓은 것이다. 증권회사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가가 오를 때는 전주도 좋고, 투자가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매물이 쏟아졌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이 같은 장외 조달 방식의 신용거래액은 약 1조 위안(약 175조 원)에 이른다. 상장사 유통 주 거래액의 약 2% 정도에 달하는 수준이다. 시장을 흔들기에 충분한 양이다. 여기에 신용도가 낮은 여러 투자자가 한 우산(계좌)을 통해 돈을 꿔 거래하는 우산형 신탁까지 가세하면서 거품은 더 커졌다.







주식 광풍. 1992년 8월 10일 선전(深?). 투자가들이 공모주를 사기 위해 '인간띠'를 연출하고 있다.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더 많은 투자자가 돈을 빌려 증시로 몰려들었다. 시장은 투기장으로 변했다. 그들은 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확신했다. 근거는 하나, 정부였다.



'과시하는 손'



중국 증시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정책시(政策市)'다. 주가가 수급이 아닌 정부의 정책에 따라 변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개입에 따라 주가가 출렁인다. 이런 식이다.



상하이 주가가 다시 8.5%나 폭락했던 지난 27일. 중국 증권감독위는 늦은 밤 부랴부랴 기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국가 대표(國家隊)들이 시장에서 철수한 것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증감위, 증권회사, 증권금융공사, 휘진(匯金)공사 등 국가(국유)기관들이 아직 시장에 버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주식을 팔지 마라'는 얘기였다. 시장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태생적 한계다. 중국에서 증시 설립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시장(market)'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국유기업 개혁을 위해 주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주식을 거래하는 시장이었다. 그런 이유로 1990년 12월 19일 상하이 증시가 문을 열었다.



중국에서의 '시장'은 지켜야할 이념적 당위가 아닌 경제운용의 한 툴(수단)일 뿐이다. 주식시장도 다르지 않다. 국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시장은 용인될 수 없다.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주식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게 기본적인 그들의 생각이다.







1986년 11월 14일 덩샤오핑이 중국을 방문중인 존 펠란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에게 중국 제1호 주식을 선물하고 있다. 이 주식은 지금도 뉴욕증권거래소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 폭등락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1년여 전부터 증시부양 카드를 뽑아 들었다. 경제 부진이 이유다. 부동산 시장 침체, 공급과잉에 따른 산업 경기 위축, 국유기업과 지방정부의 높은 채무, 선진국 불경기에 따른 수출 부진...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민 게 주식이었다. 정부도 도박장의 한 플레이어에 다르지 않았다.



치밀하고도 대담했다. 홍콩 자금의 상하이 증시 투자(후강퉁·?港通)를 허용했고, 금리인하를 통해 돈을 풀었다. 심지어 공산당기관지인 인민일보를 동원해 '지금은 주식을 사야할 때'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정부가 깃발을 들자 투기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갖 신탁상품을 만들어 신용거래를 부추겼다. 기업은 본업을 젖혀둔 채 은행 돈을 빌려 주식 투자에 나섰다. 놀란 정부가 신용거래를 규제하려 들자 거품이 꺼지기에 이른 것이다. 그게 지난 1년 상하이 증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기는 점점 힘들어 보인다. 시장 정책이 예전처럼 잘 안 먹혀 들어간다. 국가가 갖고 있던 비(非)유통주가 시장에 풀리면서 유통 물량이 크게 늘었고, 모바일 시스템으로 시장 정보가 순식간에 전파되면서 정부가 손을 쓸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수십조원을 쏟아부어도 시장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정부 개입이 '보이는 손' 단계를 넘어 '과시하는 손'으로 발전한 이유다.



'주식 따로, 경제 따로'



주가는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여주고, 종합지수는 미래 경제를 보여주는 선행 지표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주가 따로, 경제 따로'다. 지수 흐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35여 년의 개혁개방 기간 중 거시 경제가 가장 좋았던 시기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의 기간이었다. 2001년 말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수출이 늘었고, 매년 10~14%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기간 상하이 주가는 축 늘어져 있었다. 주가가 기업의 가치가 아닌 정부 정책과 투기심리에 의해 결정되기에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폭등 장세가 본격 시작된 건 대략 지난해 6월 중순이다. 당시 상하이 종합지수는 2000포인트 선이었다. 그로부터 꼭 1년 후 5000포인트를 돌파했다. 150% 상승이었다. 반면에 지난 1년 여 동안 중국 거시경제는 '전전긍긍' 수준이었다. 국민과의 약속인 7% 성장을 지키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도자들은 '7% 성장이면 스위스만한 경제체가 새로 하나 생기는 것'이라고 호기를 부린다. 그러나 경제는 흐름이다. 10%를 달리던 경제가 7% 성장에 머물렀다면 그것은 불경기다. 업계는 공급과잉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같은 거시경제 상황은 지난 1년간 주가에 반영되지 않았다.



핵심은 역시 이번 파동이 경제에 어느 정도 충격을 줄 것이냐다. 유명 경제학자인 리타오쿠이(李稻葵)칭화대 교수는 "증시 급락에 따라 소비가 위축될 수는 있지만 치명적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역시 '경제 따로, 주가 따로'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이유를 설명한다.



"올 들어 5개월간 주가급등으로 많은 기업이 기업공개(IPO)에 나섰지만, 그 규모는 전체 자금 조달(주로 은행대출)의 4%에 불과하다. 증시와 실물경제의 연관성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중국의 개인소비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미국 등 선진국이 70%인 것에 비하면 매우 적다. 이번 주가 폭락으로 인한 가구 당 평균 자산 감소는 크게 봐도 3% 수준이다. 소비에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번 주가 폭락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경제가 아닌 '정치'다. 정부, 더 근본적으로는 공산당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출범한 시진핑(習近平)-리커창(李克强)체제의 핵심 경제정책은 '시장 조절 기능의 강화'였다. 이를 위해 '행정간섭 철폐(簡政放權)'를 추진해 왔다. 증시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이를 무색하게 했다. '시장 자율을 존중하겠다'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주식시장 부양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시장 기능 강화'다. 기업의 직접금융 비율을 높여 시장화 정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상황은 반(反)시장화 쪽으로 전개됐다. 일부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다. 자사 주가가 폭락하자 아예 종목 문패를 내렸다. 기업 대주주는 '주식을 팔지 말라'는 정부의 으름장에 슬금슬금 눈치를 봐야 했다. 시장화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기대치가 높았다. 중국 주식시장, 이제 25살이다. 수 백 년 역사를 가진 서방 증시의 잣대로 상하이 증시를 볼 수는 없다. 중국 경제는 세계 제2위 수준으로 몸집이 불어났지만, 증시는 여전히 신흥시장일 뿐이다. 그게 오늘 중국 증시의 객관적 모습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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