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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어 포기 안 했다 … 결국 골프의 신이 내게 왔다

박인비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원동력으로 가족을 꼽았다. 박인비는 우승 트로피를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지연 기자], [턴베리 AP=뉴시스]


“아빠,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이제 골프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볼까 봐요.”

박인비의 ‘전설’ 함께 만든 네 가족
2008년 슬럼프에 골프 포기할 뻔
사업 접은 아빠 만류에 재도전
엄마는 대회 내내 한식 챙겨줘
프로 골퍼 출신 남편은 샷 조언
8년 함께한 호주인 캐디도 식구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박인비(27·KB금융그룹). 메이저 챔피언의 타이틀을 차지한 이듬해인 2009년 그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스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극심한 슬럼프였다. 골프가 아닌 다른 일을 하면 행복할 것 같다고 아버지에게 사정했다. 아버지 박건규(53)씨는 ‘딸바보 아빠’였지만 이때만큼은 딸을 나무랐다. “인비야, 절대 포기해선 안 돼. 아빠는 투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너를 보고 싶다.”



 아버지 박씨는 박인비가 2부 투어에서 뛰던 시절, 사업도 뒤로하고 캐디백을 메고 미국 전역을 누볐다. 아버지의 뜻을 잘 알기에 박인비는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다. 슬럼프는 그 이후에도 3년 이상 계속됐다. 그렇지만 운동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3일 새벽(한국시간) 끝난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 브리티시여자오픈. 4대 메이저 석권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사상 일곱 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 박인비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가족이었다. 박인비는 “그동안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다. 그러나 힘들 때마다 가족들을 떠올리면서 힘을 얻었다. 가족이 있기에 내가 있다. 가족과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가족”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남편 남기협씨, 어머니 김성자씨, 박인비, 아버지 박건규씨, 가족과 다름없는 캐디 브래드 비처. [이지연 기자], [턴베리 AP=뉴시스]


 골프는 철저한 개인 운동이다. 그러나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서 혼자가 아닌 5명이 플레이를 했다. 아버지 박씨와 어머니 김성자(53)씨는 대회 기간 한식을 좋아하는 박인비의 식단을 챙겼다. 프로 골퍼 출신인 남편 남기협(34)씨는 박인비보다 박인비의 샷을 더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틈날 때마다 원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2007년 프로 데뷔 이후 줄곧 함께하고 있는 캐디 브래드 비처(32·호주)도 빼놓을 수 없다. 비처는 국적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엄연히 또 한 명의 가족이다.



 브리티시여자오픈은 박인비가 간절히 우승을 바랐던 대회였다. 2013년 메이저 3연승을 거둔 뒤 이 대회에서 바로 부담감 탓에 무너졌던 경험이 있다. 지난해에도 한 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다가 2타 차 4위를 했다. 올해 대회를 앞두고 박인비는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다. 부담과 스트레스가 쌓여 샷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허리에도 통증을 느꼈다. 마음이 앞설수록 몸은 따로 놀았다. 그러나 박인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둘째 날 비바람에 한 타를 잃었을 때는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만 했다. 포기하지 않았더니 골프의 신(神)이 내 옆으로 왔다”고 말했다.



 최종 라운드가 열린 2일 아침 박인비는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 박병준(83)씨에게 전화를 했다. 위암으로 투병 중인 할아버지는 박인비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박인비는 “할아버지는 늘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신다. 어제 생신을 맞은 할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기를 받았다”고 했다.



 3타 차 공동 5위로 출발한 박인비는 마지막 날 7타를 줄이면서 골프의 전설이 됐다. 그랜드슬램은 위대한 선수와 전설을 가르는 기준이다. 아널드 파머(86·미국)나 샘 스니드(1912~2005), 필 미켈슨(45·미국),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는 위대한 선수였지만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이루지 못했다. 박인비는 남녀를 통틀어 타이거 우즈(40·26세3개월15일), 미키 라이트(80·26세8개월1일·이상 미국)에 이어 역대 셋째로 어린 나이(27세21일)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박인비는 대기록을 달성한 저녁, 가족들과 함께 김치찌개와 불고기로 우승 파티를 했다. 박인비는 “골프는 참 이상하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버디가 나온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 언젠가 해가 뜰 거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힘든 시간을 즐긴다는 건 쉽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그 긍정의 마인드는 가족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경기도 판교 박인비의 집에는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첫 우승을 기념해 식구로 맞이한 애완견 새미(16)다. 나이가 많은 새미는 대회 기간 병원 응급실에 몇 차례 실려 가고도 기적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 박인비는 “새미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빨리 집에 돌아가 새미를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턴베리=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커리어 그랜드슬램=한 선수가 시즌에 상관없이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2013년 에비앙 챔피언십이 메이저대회로 승격되면서 LPGA투어 5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4개 대회에서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한다. 5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면 ‘수퍼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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