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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서 ‘신발’ 갈아 신는 러 열차 왜

러시아와 유럽의 철도 폭이 달라 열차의 대차(바퀴 부문) 교체는 필수다. 폴란드 국경 인근 벨라루스 브레스트 중앙역에서 기중기를 이용해 대차를 바꾸는 모습. [안효성 기자]

안효성
정치국제부문 기자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해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던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가 29일 오전 8시(현지시간) 멈춰섰다. 폴란드 국경을 앞둔 벨라루스의 브레스트 중앙역에서다.

 이곳에선 승객들의 입국심사뿐 아니라 철도가 치러야 할 중요한 ‘의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신발을 갈아 신는다”고 표현하는 대차교환 작업이다. 너비가 다른 선로에 맞춰 열차 바퀴를 러시아의 광궤에서 유럽의 표준궤로 바꾸는 작업이다. 브레스트역 대차교환 책임자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롭스키는 “유럽으로 가기 위해 러시아 열차는 여기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선로의 너비가 1520㎜인 광궤를 사용하지만 폴란드부터는 1435㎜ 너비의 표준궤를 사용한다.

 열차가 브레스트역 정비창에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객차와 대차(열차 바퀴가 달린 부분)를 분리했다. 개당 40t을 들어올릴 수 있는 리프트 4개가 21t 무게의 객차를 가뿐히 들어올렸다. 4개의 리프트가 객차를 수평으로 천천히 들어올리기 때문에 내부에 타고 있는 승객은 객차가 분리되는 걸 느끼지 못한다.

 기존 대차를 뒤로 빼자 새로운 대차가 객차 밑으로 밀려왔다. 객차를 새 바퀴 위에 고정시키는 작업까지 1시간30분이 걸렸다. 하루에 30~35량, 한 달간 1000량의 객차가 이곳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유럽과 러시아를 오간다.

 유라시아 열차의 대차교환 작업엔 유럽의 역사가 녹아 있다. 철도 선로의 폭은 표준궤(1435㎜)를 중심으로 그보다 넓은 광궤, 좁은 협궤로 나뉜다. 프랑스와 독일·영국 등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표준궤를 사용한다. 철도가 처음 발달한 영국에서 1846년 궤간법을 제정해 선로 너비를 표준궤로 통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스페인은 철도를 부설하며 광궤를 택했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경험한 러시아는 프랑스가 철도를 이용해 병사와 군사물자를 대량으로 실어나를까 염려했다. 러시아는 선로 폭을 다르게 해 프랑스와 독일 열차가 러시아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우송대학 채일권(철도특성화대학원) 교수는 “브레스트는 러시아와 독일의 접경 지역이었다”며 “이곳을 기점으로 서쪽부터가 진정한 유럽 철도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철도에 담긴 역사는 한국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 표준궤가 설치된 사연은 정반대다. 일본은 1904년 경부선과 경의선을 부설하며 표준궤를 깔았다. 일본 내에선 협궤를 사용하면서도 선로 너비가 넓어 비용이 더 드는 표준궤를 한국에 깐 이유는 중국으로의 침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각국마다 선로의 너비가 다른 이유를 살펴보면 선로가 부설됐을 19~20세기 초의 국제정치학을 읽을 수 있다”며 “침략과 수탈의 역사가 선로의 너비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대차교환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 남북이 분단돼 철도를 이용해 대륙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어서다. 하지만 한반도종단철도(TKR) 복원 구상이 나오며 얘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4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궤간가변 대차기술을 개발했다. 선로의 너비가 바뀌는 구간에서 기차 바퀴의 폭이 서서히 넓어지는 기술이다. TKR이 연결되면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역인 웅산~두만강역에서 열차의 바퀴가 넓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안효성 정치국제부문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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