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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보수 진영의 재벌개혁론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우리 국민은 성공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학벌과 연줄이다. 절반 정도의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 성실성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30%가 채 안 된다(『인적자본정책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종합연구』). 과거에는 달랐다. 1965년에는 정반대였다. 절반 정도가 실력이 출세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응답했다. 연줄은 18%에 그쳤다(동아일보 1965년 1월 14일). 50년간 우리 국민의 의식이 그만큼 바뀌었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모 잘 만나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활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근본 이유지 싶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아버지가 재벌인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얘기가 돈다고 한다. 이런 우스개가 진심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 얘기를 하는 건 우리 경제를 떠받쳐 왔던 재벌 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단적인 사례가 승계를 둘러싼 잡음들이다. 이른바 ‘형제의 난’은 그중 하나다. 물론 이런 소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더욱 문제 되는 건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리는 격이 되고 있어서다.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의 성공조건이라는 인식을 자극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재벌개혁론이 나오는 건 또 다른 증거다. 지금까지 재벌개혁은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제, 순환출자 금지, 내부거래 규제, 금산분리 등의 정부 정책은 그들의 아이디어였다. 개혁 방향을 둘러싼 논쟁 역시 진보 진영끼리의 다툼이었다. 보수 진영은 동떨어져 있었다. 대신 방어 논리 개발에 전념했다. 그 어떤 것이든 재벌 규제는 모두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기업 마인드가 위축되고, 경제성장에 저해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요즘 보수 진영에서도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보수학자인 만큼 논리적 근거도 효율성이다. 지금의 재벌은 효율성을 늘리긴커녕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니 개혁해서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예컨대 이런 논리다. 재벌그룹이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하자. 진보는 그 자체를 반대한다. “재벌이 골프장을 왜 하느냐”는 식이다. 반면 보수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사업에 도움 된다고 판단했다면 이를 막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여기까지는 보수 개혁론자도 똑같다. 계열사 설립과 내부거래는 가로막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끼리 나뉘는 건 골프장 설립 주체 문제다. 오너가 100% 소유하는 게 경영효율성을 증대시킬까. 보수 개혁론자들은 오너 소유에 반대다. 사업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계열사들이 공동 소유하는 게 효율성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한다. 오너가 소유하면 계열사들은 이 골프장만 이용해야 한다. 다른 골프장과 비교해서 유리한 곳을 사용하는 게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그런데도 오너가 골프장을 갖고 있다면? 사적(私的) 이익을 위해 그룹의 효율성을 희생시켰다는 주장이다.

 물류와 소프트웨어 회사도 마찬가지다. 보수 개혁론자들은 설립과 거래 여부는 기업의 자율이라고 본다. 게다가 물류와 소프트웨어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다. 기업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때도 많다. 이 때문에 관련 기업을 설립하고 이 회사와 내부 거래하는 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판단한 계열사들이 공동설립하는 게 옳다는 논지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상당수 재벌그룹은 오너 가족이 100% 소유하고 있다. 물류 기능이 필요한 계열사들은 정작 출자에서 제외돼 있다. 이렇게 되면 계열사들은 오너 개인 소유 회사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물류회사가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재벌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만큼은 누구에게나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오히려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일고 있다. 국민의 활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경고음이 그것이다. 둑은 한번 균열이 생기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재벌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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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