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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파워하우스 산시방…‘철삼각’ 주축 정치국·중앙군사위 최대 인맥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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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작 영화 ‘황토지(黃土地)’는 중국 5세대 영화의 효시다. 베이징영화학원의 78학번 첸카이거(陳凱歌)가 연출을, 장이머우(張藝謀)가 촬영을 맡았다. 39년 척박한 황토 고원인 옌안(延安) 소비에트 근거지에서 펼쳐지는 민중의 이야기를 그렸다. 황토지의 무대 산시(陝西)성이 굴기(起·우뚝 섬)하고 있다. 중심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있다. 산시성 출신이거나 산시성 근무 경력이 있는 엘리트 집단을 말하는 산시방(陝西幇)을 중국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청(李成) 선톤차이나센터 연구주임은 시진핑 시대의 파워하우스로 지목했다.

산시방은 다수파다.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3명(43%), 정치국원 25명 중 8명(32%), 중앙군사위원 11명 중 4명(36%)을 차지한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후난(湖南)·후베이(湖北),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쓰촨(四川),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시대의 장쑤(江蘇)·산둥(山東)을 잇는 지역 인맥이다.

올 2월 15일 고향 산시성을 찾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시안 고성에 올라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인민일보 해외망]


 시진핑에게 산시성은 각별하다. 부친 시중쉰(習仲勳·1913~2002)의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여서다. 시진핑 자신도 하방 생활 7년을 산시성 옌촨(延川)에서 보냈다. 시진핑은 과거 인터뷰에서 “나는 옌안인(延安人)이다. 산시는 뿌리(根), 옌안은 혼(魂)”이라고 말했다. 올 2월 설 바로 전날 옌촨의 량자허(梁家河)촌을 다시 찾았다. 산시성에 대한 그의 애착을 담은 행보다.

 리청 박사는 7인의 상무위원 중 시진핑·위정성(兪正聲)·왕치산(王岐山)을 산시방 클럽의 ‘철삼각(鐵三角)’으로 불렀다. 위정성은 1945년 옌안에서 태어났다. 52년 위정성의 모친인 판진(范瑾·1919∼2009)은 베이징일보 사장 겸 베이징시 선전부 부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시중쉰은 중앙선전부 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처럼 시진핑 집안과 위정성 집안의 인연은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치산은 시진핑과 40여 년 전 하방 당시 처음 만났다. 리청 박사는 시 주석이 베이징으로 여행하던 중 왕치산이 머무르던 마을에 들러 그와 함께 한 침대를 쓴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왕치산의 별명은 ‘소방대장’이다. 98년 아시안 금융위기 직후 광둥(廣東)성 금융위기를, 2002년 하이난(海南)성 악성 부동산 버블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베이징 시장으로 사스 위기를 해결했다. 2011년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을 방문한 왕치산에게 뉴욕소방대 모자를 선물해 화제가 됐다.

부패 척결, 경제위기 해결 ‘소방대장’

왕치산은 시 주석에게도 소방대장이다. 2012년 총서기에 취임한 시진핑에게는 세 가지 도전이 앞에 놓여 있었다. 부패, 보시라이(薄熙來) 재판, 경기 부진이었다. 모두 왕치산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왕치산은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아 반부패 캠페인을 주도했다.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반부패로 시진핑의 “파리와 호랑이를 모두 척결한다”는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왕치산은 보시라이 재판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재판의 초점을 불법행위가 아닌 보시라이의 부패에 맞췄다. 둘째, 재판 과정을 SNS를 활용해 공개했다. 불투명한 재판이라는 비판을 잠재웠다. 셋째, 무기징역이란 절묘한 형량이다. 심하지도, 관대하지도 않은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올해에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처리에 성공했다. 경제 위기 해결도 왕치산의 활약이 컸다.

시진핑은 중산층 생활을 약속했다. ‘중국의 꿈’이다. 금융개혁은 3중전회 개혁안의 핵심이다. 민영은행과 외국 금융기관을 조인트 벤처로 엮어 시장 개혁을 심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금융자유화는 민영기업으로 더 많은 자금을 흘러가게 만들 수 있다. 왕치산은 금융 전문가다. 금융 전문가라는 왕치산의 국제적 명성은 시진핑의 자산이다. 시진핑 경제팀인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장,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 리웨이 국무원발전연구중심 주임, 톈궈리(田國立) 중국은행장의 후견인이 왕치산이다. 톈후이위(田惠宇) 차오상(招商)은행장은 왕치산의 전 비서였다.

 산시방은 상무위원 이외에도 막강하게 포진해 있다.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조직부장이 산시방의 핵심 멤버다. 모두 2017년 19기 상무위원의 유력한 후보다. 리잔수 주임은 허베이(河北)성 핑산(平山)현의 혁명가 집안 출신이다. 허베이·산시·헤이룽장·구이저우성에서 두루 근무했다. 허베이성 공청단 근무 경력도 있다. 산시성 조직부장, 시안(西安)시 당서기, 산시성 부서기를 역임했다. 시 주석과의 친분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 주석이 허베이 정딩현(正定縣) 서기(1982~85)였을 때 리잔수는 우지(無極)현 서기(1983~85)였다. 두 현은 불과 30㎞ 떨어져 있다.

중앙판공청 주임, 중앙조직부장 포진

자오러지 부장은 시 주석의 인력관리 담당이다. 수천 명의 고급 간부 인사를 맡고 있다. 시중쉰과 자오러지의 부친 자오서우산(趙壽山)이 친한 친구였다는 설이 전한다. 자오러지는 산시방의 대변인으로 통한다. 산시 태생에 사투리가 강하다. 동생인 자오러친(趙樂秦) 역시 산시성에서 잔뼈가 굵었다. 현재 광시(廣西) 좡족자치구 구이린(桂林)시 당서기다.

 리젠궈(李建國)는 전인대 부위원장으로 정치국원이다. 전임자와 달리 정치국원이 됐다. 의외였다. 승진의 비밀은 산시성 서기 10년 근무 경력에 있다. 시중쉰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핵심 연설을 한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마카이(馬凱) 부총리 역시 시안에서 성장했다. 최근 국가제조강국영도소조 조장을 맡아 중국을 제조업 대국에서 강국으로 탈바꿈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왕천(王晨) 전인대 부위원장 겸 비서장도 산시성에서 하방 생활을 했다. 지방 근무 경력도 있어 산시방에 포함된다. 리젠궈의 선례를 따라 정치국원 승진 가능성이 크다.

 허이팅(何毅亭) 중앙당교 부교장도 산시성이 고향이다. 허이팅 부교장은 ‘반부패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며 공무원 청렴 규정인 ‘8항 규정’ 등을 만들었다. 공산당의 두뇌 격인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을 겸직하고 있어 왕후닝 주임의 뒤를 이을 전망이다.

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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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