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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서의 스윙맨]라이크 파더, 라이크 선

2004년 8월 19일 송진우 당시 한화 이글스 투수가 막내 아들 우현이와 한밭경기장 주변 산책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켄 그리피 시니어 입니다. 여기 옆은 내 아들 주니어. 인사드리려무나. (꾸벅) 우린 부자 메이저리거입니다. 저는 1973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시작해 199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19년을 뛰었죠. 아들 놈은 1989년 시애틀에서 시작해 신시내티를 거쳐 2010년 다시 시애틀로 돌아와서 총 21년을 활약했고요. 같은 시대에 우리 부자가 현역으로 뛰었던 적도 있읍죠. 바로 제가 마흔 살, 아들이 스무 살이었던 1990년의 일입니다. 함께 시애틀에서 활약하며 참 여러 기록을 세웠습디다. 우리 부자는 그해 8월 31일에 메이저리그 최초로 부자 백투백 홈런을 쳐냈고...(아들을 툭 치며) 그때 참 기가 막히지 않았냐? 아버지와 아들 모두 올스타전 MVP를 수상한 것은 특별해 보이지도 않아. 우리 부자가 합작한 782개(시니어 152+주니어 630) 홈런은 사실 본즈 부자(바비 본즈 332+배리 본즈 762)에 이은 역대 2위 기록 아니냐?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도합 15 차례 올스타전 선발은… (아버지 얼른 본론을 말씀하셔야죠). 흠흠. 백 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어쩌면 우리 같은 존재는 희귀한 사례는 아닐 게요. 얼마 전 300홈런을 날린 프린스 필더 부자를 비롯해 요기 베라와 데일 부자 등 흔하진 않아도 찾기는 어렵지 않거든? 헌데 태평양 건너 한국은 어떻소? 역사가 짧은 KBO 리그에서는 이런 존재들을 보기 힘든 거라 미루어 짐작하네만. 서른 네 살, 사람으로 치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질 그때 아닌가? 그러나 내 보기엔 이제 슬슬 한국도 부자 야구 선수들이 탄생할 듯 싶소만. 물론 우리처럼 동시대에 현역으로 뛸 부자는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말입니다. 딱 한 팀만 빼고는. 지금부터 한국의 야구 명문가는 어디였을까 알아 봅시다!









1990년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 전 모습. 시애틀 매리너스의 부자 야구 선수인 켄 그리피 주니어(왼쪽)가 그의 아버지이자 팀 동료인 켄 그리피 시니어와 훈련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곧 인천야구였다 ‘김진영-김경기 부자’



1989년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의 前 감독인 김진영씨(左)와 아들인 김경기씨의 모습






헐리우드 영화 중에 “아들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간다고 했다.”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어쩌면 아버지란 존재는 아들이 세상에서 만난 최초의 라이벌이자 넘어야 할 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발자국을 깊이 남겨 놓은 아버지, 그것을 한눈 팔지 않고 따라간 아들. 그 선구자로 포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이들이 곧 인천 야구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김경기-김진영 부자(父子)입니다.



한국 야구의 발상지이자 구도(球都). 야구 이야기와 전설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도시, 인천. 김진영-김경기 부자는 이런 인천 야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일 겝니다. 특히 아버지인 김진영 감독은 인천 야구의 대부격이죠. 그는 한국프로야구 원년 시즌이 끝난 1982년 11월 11일 인천을 연고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사령탑에 오르며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지요. 프로 감독을 맡은 뒤엔 한국 최초로 구단을 1,2군으로 나눠 운영하는 등 체계화에 앞장서기도 했고. (아버지만 말고 아들 쪽 근황도 좀 알려 주세요) 아, 김 감독의 1남 2녀 중 막내이자 외아들인 김경기도 마찬가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인천고와 고려대를 거쳐 당시 인천 연고팀이던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지. 국가대표 4번 타자 출신인 김경기는 “아버지의 개인지도 덕에 타격에 자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더군요.



이후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와 함께 1998년 첫 우승을 맛보기도 했지만 2년 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트레이드도, 방출도, FA 계약도 아닌 ‘팀의 연고 이전’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귀소 본능 때문일까. 향수병 때문일까. 김경기는 인천의 새 연고팀인 SK 와이번스로의 트레이드를 강력히 요청했고 2002년 고향에서 은퇴를 할 수 있게 됐죠. 현재는 SK의 1군 수석코치를 맡고 있답니다. 마치 우리 아들 놈 같구나? 시애틀에서 프로 데뷔를 해 은퇴할 때 즈음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쑥스럽습니다. 사실 시애틀에서의 활약 덕에 내년도 명예의 전당 피선거권을 얻게 됐죠.)





▲충청도의 힘! 삼부자 야구선수



우현군의 9살 시절 모습. 송진우 코치의 둘째 아들 송우현(20)은 지난 2015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에서 한화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송 코치의 첫째 아들 송우석(22)은 신고선수로 한화에 입단해 뛰고 있다.






다음은 삼부자 야구선수를 소개할까 합니다. 정확히 11년 전 에피소드라는군요. 한화의 전설 송진우가 대전구장으로 출근할 때 아빠 손을 잡고 붕어빵 아들이 눈에 들어오더이다. 방학을 맞아 따라 나왔다는 우현이(당시 성룡초 2년 재학중) 녀석이 오른손에 투수 글러브를 꼈기에 “왼손잡이냐?”고 누군가 물었더니 하는 말. “며칠 전부터 아빠 따라서 왼손으로 바꿨어요.” 이미 세 살 위인 형 우석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야구를 시작했으니 삼부자 야구선수의 탄생은 시간문제였는지도 모르죠.



아! 삼부자가 같은 팀에서 뛸 기회도 있었구먼요. 작년 열린 신인 2차 지명에서 둘째 아들인 우현이 6라운드 전체 58순위로 넥센에 입단했죠. 이미 첫째 아들인 우석 군이 신고선수로 입단했기에 더 아쉬웠습니다. 물론 당시 송진우가 코치로 있던 한화에게도 선택의 기회는 있긴 했지만요. 그러나 한화는 “송우현은 좌타 1루수인데 우리 팀에선 포지션이 애매해 뽑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더욱이 올시즌 송진우가 야구 해설위원으로 잠시 마이크를 잡으며 삼부자가 동시에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잠시 유보 됐네요. (아버지 그래도 형제 야구선수도 귀한 존재 아닌가요? 한국에선) 그렇고 말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번갈아 가며 차지했던 SK 조동화-삼성 조동찬 형제나, SK 최정-최항 형제, NC 나성범-LG 나성용 등등.





▲아버지와 아들, 1루에서 조우할까? 박철우-박세혁



2012년 7월 14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서 열릴 예정이었던 프로야구 퓨처스올스타전이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경기전 KIA 박철우 코치가 아들인 두산 박세혁과 포즈를 취하고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야구장에서 만나지 말자.” 이 갸우뚱한 대화는 무엇인고? 아버지 박철우는 2013년 당시 KIA 2군 타격코치를 맡고 있었습니다. 둘이 그라운드에서 만난다는 얘기는 곧 아들인 박세혁이 1군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아들 역시 “아버지는 집에서 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아들은 고려대 재학 중이던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 전체 47번으로 두산에 지명됐습니다. 포수는 기본이고, 3루와 우익수 글러브까지 낄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죠. 당시 아버지는 경기고 야구부에 인스트럭터로 근무했습니다. 이듬 해에는 KIA 2군 코치로 일하게 됩니다. “아버지 같은 선수가 되겠다”는 아들의 소망 때문일까요? 아버지는 올해 두산 코치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러나 2013 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한 아들. 부자는 이렇게 엇갈립니다.



(그럼 부자의 상봉은 언제일까요?) 머지 않았다. 9월 제대 후 복귀를 눈앞에 뒀거든. 아들이 안타를 때리고 1루에서 아버지의 사인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지. 1루에서 만난 부자는 어떤 대화를 나눌까?





▲KBO리그 최초, 켄 그리피 부자를 꿈꾼다



2012년 6월 1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아들 최종현(제물포고)과 캐치볼 훈련을 마친 SK 최영필이 아들에게 투구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딱 한 부자. KBO리그에서 켄 그리피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부자.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프로에서 활약하는 꿈 같은 장면을 연출할 단독자. 최영필-최종현 부자입니다. (아버지, 최영필은 얼마 전까지 무적 기간도 있던 걸로 압니다만…그게 가능할까요?) 물론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최영필은 할 수 있다! 왜냐? 그의 마음가짐 때문이지.



“나에게는 1경기 1경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 뿐이다.” 작년 6월 최영필이 한 말입니다. 제 은퇴 나이와 비슷한 마흔 살인 친구가요. 신고선수 출신인 최영필은 이때부터 선수 등록을 했습니다. 이 노장은 출장한 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6경기에서 3홀드 평균자책점 1.00을 기록하며 KIA 불펜을 이끌었습니다. 최영필은 현재 KIA 투수진 중 심동섭(40)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등판 횟수(37)를 기록하고 있답니다.



최영필의 꿈.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부자(父子) 야구선수입니다. 올해 최영필이 프로생활을 이어가면서 목표가 가시권 안에 들어왔으나, 안타깝게도 아들 최종현이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하면서 꿈은 유보됐죠. 아들의 꿈도 아버지와 같습니다. 올초 인천 제물포고를 졸업한 그는 “언젠가 아버지와 1군 무대에서 만날 날도 꼭 올 거라 믿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전성기를 “지금”으로 만들고 있는 최영필을 대한민국 야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들이 선발로 나온 경기를 아버지가 마무리한다? 믿기지 않는 기록이 현실화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최영필 부자를 통해서요.



신시내티에서 열린 지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앞서 켄 그리피 부자가 시구를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 얼마 전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서 우리 부자가 시구했던 추억이 문득 떠올라요.) 그래 맞다. 둘이 합쳐 수십 년을 보낸 신시내티 아니더냐? 여기서 축제가 열리는데 산증인인 우리 식구가 빠질 순 없었지! 지난 18일 열린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이채로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황재균의 ㅅ ㅅ 머신? 강민호의 MVP 수상? 아니요. 그것보다 더 흥미롭고 짜릿햇던 장면. 바로 스타의 2세들이 만든 훈훈한 장면이었죠. 권혁, 정우람, 이용규 등의 아이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축제의 주인공이었죠. 언젠가 KBO 리그가 쉰 살을 맞을 날이 온다면, 며칠 전 그라운드를 함께 누빈 올스타 부자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힘들 것 같긴 한데…) 불가능하다고? 올시즌 유달리 불혹의 선수들이 ‘회춘 모드’를 들어선 양상을 볼 때 그리 힘든 일도 아닌 것 같구나, 아들아!



지난 KBO 리그 올스타전 당시 이용규의 아들이 테임즈의 수염을 잡고 장난을 치고 있다.[사진=한화 제공]




온라인팀=이상서 기자 cod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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