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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시대공감] 수영장 의자 쓰러져 독재 끝날 줄 알았나

대체 북한 같은 곳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정세 분석에 종사하는 이들은 저마다 독재정권을 분석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크게 ‘사건’과 ‘진화’ 두 가지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게 보통이다. 여기서 사건이란 분석 대상 국가 안팎에서 일어나 보도되고 논쟁되는 일들을 말한다. 각종 회담ㆍ군사적 충돌ㆍ집회ㆍ파업ㆍ고위급 간부의 교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남북한 간에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남북관계가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것을 나타낼 뿐 아니라 회담 자체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독재정권은 '사건'과 '진화'로 분석
진화 바라지만 사건이 역사 바꾸기도
살라자르·알렉산더, 어이없이 사망
관찰도 중요하나 '한 방'에 대비해야

점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진화’도 사건 못지 않게 중요하다. 1980년대 생겨난 남미의 시민사회는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등장한 게 아니라 나라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로 서서히 힘을 키웠다. 그리고 급기야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북한에도 사건과 진화가 있다. 사건부터 들여다보면 주로 정치적인 사건이 주를 이룬다. 파업이나 반정부 집회는 거의 없다. 다른 나라와의 회담은 비교적 자세히 보도되는 편이며, 북한이 어느 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하지만 내부 회동은 다르다. 외부에선 모든 내부 회동에 대해 알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내부 회동이 알려진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회동 여부가 알려졌다 해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구소련보다 분석하기가 더 어렵다.



고위급 간부의 교체도 분석하기가 어려운데 여기엔 다른 이유가 있다. 교체 여부 자체가 알려져도 그 교체의 여파와 의미는 베일에 쌓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이 수시로 바뀌는 이유는 뭘까. 김정은이 워낙 많은 것을 요구하는 지도자이다 보니 그저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아니면 북한 지도부의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일까. 나는 후자라고 보지만 다른 분석가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소련이 무너진 이후 우리는 많은 분석가가 그토록 매달렸던 고위 간부의 교체 여부가 소련 붕괴 직전의 일련의 상황과 큰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북한에서 누가 사라지고 누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분석하는 일도 훗날 부질없는 것으로 판명날 수도 있다.



반면 북한에 있어 진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많은 나라에서 진화에 대해 잘못 판단했고 북한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세 가지 분야의 진화를 살펴보는 게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경제다. 권위주의 정권은 경제적 어려움에 취약하다.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만큼 북한 정권의 운명은 경제 상황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민간 경제활동이 늘어난 것도 정권엔 위협적이다. 중국에서 정부 주도로 경제 자유화가 이뤄진 것과 달리 북한에서 최근 소규모 무역상이 늘어난 것은 정권이 어쩔 수 없이 후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북한 정권이 서서히 잃고 있는 정보의 독점력이다. 콕 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북한 사람, 특히 평양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20년 전보다 외부 사정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악화하는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있다. 10년 전만 해도 북한은 우방국이 꽤 있었다. 하지만 시리아가 무정부 상태가 되고, 쿠바와 이란이 서방세계에 문호를 열면서 북한은 국제적 지지를 잃었다.



사건과 진화를 통한 북한 정세 분석은 북한의 종말은 예측할 수 있겠지만 북한 붕괴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가 없다.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 민주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 다른 독재 정권이 출현하기도 하고, 아랍의 봄 이후 중동 정세는 더 불안해졌으며, 과거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국제사회는 점진적인 변화, 즉 진화를 원하지만, 사건은 종종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1932년부터 36년간 포르투갈을 통치한 독재자 살라자르가 수영장의 데크 체어(deck chair)가 쓰러지면서 척추 골절로 뇌사 상태에 빠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17년 아버지를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그리스의 알렉산더 왕이 원숭이한테 물린 후유증으로 숨지면서 그를 매개로 집권했던 베니젤로스 정권이 무너질 것 역시 예상된 적이 없다. 정세 분석가들은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를 주시해야 하겠지만 예상치 못한, 지각변동을 불러올 사건 '한 방'에도 대비해야 한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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