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보다 '비토 룰'이 개헌 핵심 돼야

지금까지 개헌론은 권력구조에 초점을 맞춰 왔다. 대통령 중임제, 내각제 전환, 이원집정부제 채택….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어서 타협이 어려웠고, 결국 개헌은 '론(論)'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개헌 교착' 상태를 벗어나려면 헌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헌법이란 국가 의사결정 방식의 설계도이자 입법-사법-행정, 중앙-지방 등 여러 차원에서 권력의 분배와 의사결정 기구의 배치를 정하는 ‘룰 북(rule book)’이기도 하다. 이를 어떻게 설계해야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면서도, 입법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문우진 아주대 교수(정치학)가 세계적인 비교정치학자인 조지 체벨리스 미시간 주립대 교수를 인터뷰했다. 체벨리스는 ‘거부권 행사자(veto player)’ 모델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정치제도를 분석하고 있다. 괄호 안은 문 교수의 보완 설명.



제헌절 67주년 기획 - 다시 개헌을 말한다 <하> 비교정치학자 체벨리스가 본 헌법 설계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한국과 같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는 무엇인가.



“단임제는 대통령의 책임성을 약화시킨다. 대통령과 국민들과의 연계는 대통령이 재선되기 위한 노력에서 발생한다. 멕시코는 ‘재선없는 선거’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에서는 의원들이 자신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단임제는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에 중임제를 도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중임제에서 국민이 국정 실패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면, 실패한 정권의 임기가 연장될 수도 있다. 중임제는 또한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을 강화시켜 제왕적 대통령 권한이 더 확대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개헌의 초점은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돼 왔다. 권력구조를 바꾸면 정치인들의 행태나 관행까지 변화시킬 수 있나.



“대통령제와 의회제(내각제)의 주된 차이점은 누가 입법의제를 통제하는가와 정당 결속력이다. 대통령제에서는 의회가 의제를 설정하고 대통령에게 이를 승인할지 거부할지 묻는다. 반면 의회제에서는 행정부가 법안을 의회에 발의한다. 또 일반적으로 정당들은 대통령제에서보다 의회제에서 더 결속적이다. 의회의 정부 불신임 투표 때문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운명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구조 개편은 정치인들의 정치행태를 변화시킨다.”



입법효율 결정하는 건 비토 플레이어의 수



-한국에서는 대통령제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안정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내각제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있다. 두 체제의 장단점은.



“입법 효율성은 대통령제 또는 의회제와 같은 권력구조와는 무관하며, 각 권력구조가 지니는 특징적인 규칙들과 관련 있다. 대통령제에서의 입법은 대통령과 하원 또는 상원까지 포함하는 여러 거부권 행사자들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만약 남미의 대통령제처럼 의회가 여러 정당으로 구성돼 있다면 이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의회제에선 (소수 정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와 의회는 정치적으로 같은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의회제에서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거부권 행사자들의 동의를 얻기가 더 수월하다.



권력구조와 동시에 고려해야 할 문제는 선거제도와 정당의 수다. 양당체제이면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은 다당체제이면서 의회제를 채택한 이탈리아와 정책결정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하다. 양국 모두 다수의 거부권 행사자들이 있어서 정책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즉, 권력구조 자체가 아니라 거부권 행사자의 수와 이들 간의 이념차이가 입법 효율성에 영향을 미친다.”



(한 국가의 입법 효율성을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제 또는 의회제 같은 권력구조가 아니라 거부권 행사자의 수라는 게 체벨리스 교수의 포인트다. 대통령제가 효율적이고 내각제는 정치적으로 불안하다는 시각은 타당하지 않다. 대통령제가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한국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돼, 실질적인 거부권 행사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내각제가 불안정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내각제 권력구조 자체 때문이 아니라 내각제였던 제2공화국에서 정당들이 난립했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인 체제는 거부권 행사자 수를 최소화시키는 양당 의회제이고, 가장 비효율적인 체제는 거부권 행사자 수를 극대화시킨 다당 대통령제다.)



-개헌으로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늘리면 합의제형 정치를 구현할 수 있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거부권 행사자의 증가는 현상(status quo)을 변화시키기 어렵게 하고, 입법적 교착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거부권 행사자들이 서로 타협하고 양보할 동기를 부여할 수는 있다. 만약 거부권 행사자가 하나라면 견제 없이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거부권 행사자가 증가하면서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만약 이들이 타협을 원치 않거나 타협에 실패하면, 입법적 교착이 일어난다.”



-이상적인 거부권 행사자의 수가 어느 정도인가. 정치과정에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적정하게 유지하는 게 왜 중요한가.



“이상적인 거부권 행사자의 수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조건들에서도 정치제도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동일한 제도도 조건에 따라선 바람직할 수도, 치명적일 수도 있다. 거부권 행사자가 증가하면, 소수를 보호할 수 있다. 반면 의사결정의 거래비용은 증가한다. 만약 거부권 행사자가 감소하면 선거 결과에 따라 커다란 정책이 휙휙 바뀔 수 있다. 영국과 같이 소수의 거부권 행사자들을 지닌 국가나 미국과 같이 다수의 거부권 행사자들이 있는 국가들이 모두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이상적인 거부권 행사자의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법 개정안은 삼권분립 어긋나지 않아



-단순히 거부권 행사자의 수적 균형이 아니라 각 거부권 행사자 간의 질적 균형, 즉 거부권 자체의 강도나 발동 절차 등의 차이도 고려해야 하나.



“거부권 행사자들이 입법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만약 거부권 행사자가 의제 설정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은 의제 설정권한이 없는 거부권 행사자에 비해 자신에게 더 유리하게 입법결과를 끌어올 수 있다.”



-한국에선 행정부도 의제설정 능력을 지니며, 이게 대통령 권력의 중요한 기반이다. 이게 미국식 삼권분립의 원형에 부합하는가.



“미국 정치체제는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수정을 가할 수 없이 거부권만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미국 대통령은 법안에 대한 부분 거부권도 행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 주지사보다도 약한 권한을 지닌 셈이다. 이에 비해 다른 나라 대통령들은 법안을 수정할 수 있고, 의회가 대통령 수정안에 대해 토론하고 재수정 없이 때로 초다수결로 표결을 하도록 하는 조건적 의제 설정권을 지닌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대통령제는 삼권분립 원리를 따르는 미국보다 남미의 대통령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의 수정 요구권을 담은 국회법 수정안을 거부했고, 결국 법안은 폐기됐다.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행정명령에 대한 입법부의 간섭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가.



“그렇지 않다. 입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을 때에 한해 행정명령은 법으로서 권한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과 함께 한국 국회 역시 행정부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곤 한다. 특히 여소야대의 경우 그렇다. 이게 국회파행, 입법교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제왕적 국회'란 말도 나온다. 어떤 제도 보완이 필요한지.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은 상대적이다. 둘이 동시에 제왕적일 순 없다.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은 어떤 경우엔 한 쪽이 더 강하게 보일 수도, 또 어떤 환경에선 다른 한 쪽이 더 강하게 보일 수 있다. 입법 교착을 피하기 위해서는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줄이거나, 거부권 행사자들의 이념적 거리를 (선거제도를 통해) 줄이는 방법이 있다.”



초다수결 제도는 조심해서 써야



-행정부 독주를 막기 위해선 입법부의 감시-감독이 중요한데, 현실적으론 의회의 전문성이 관료를 따라가지 못한다.



“입법부건 행정부건 입법 자문위원들을 어디에 더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문성이 변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전문성 차이는 규칙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행정부가 입법부보다 전문성이 높은 것은 대통령제의 고유한 특징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은 권위주의 시절부터 행정부가 입법의제를 주도하면서 전문성을 축적해 왔고,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기 때문에 행정부가 주도적인 의제 설정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이 입법부에 비해 전문성이 높은 행정부를 형성한 것이다. 의회가 입법의제를 주도하는 미국에서는 의회가 더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국회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인 입법지원은 국회의 입법전문성을 향상시킨다.)



-한국에선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국회내 폭력을 막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있다. 쟁점 법안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해 다수결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다수결 제도는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현행법을 고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규칙은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변화가 가능할 때 또는 필요할 때, 초다수결 제도라는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초다수결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채택하는 것이 좋은가 나쁜가에 보편적인 규칙은 없다.”



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우진



고려대 학부에서 건축학과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하고, 미 UCL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제도, 게임이론, 선거와 의회가 전문 분야. 현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정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