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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60년째 현역, 팔순 배우 이순재 … 언제 은퇴하냐고? 치매 걸려 NG 내면 끝내야지

배우 이순재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섰다. 60여 년 전 그가 예술인의 꿈을 키웠던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자리다. 그는 “마지막에 빛을 내는 예술가가 진짜 예술가”라며 “그래서 예술은 평생을 지속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도록 연기 한 우물을 팠다. 배우 이순재(80). 그와 인터뷰 약속을 한 건 지난해 8월 서울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였다. 총 객석 100석 남짓의 작은 극장이었다. 객석에 앉아 조용히 연극을 보는 그의 손엔 연극 ‘황금연못’ 대본이 들려 있었다. 지난해 가을 그는 나문희·신구·성병숙 등과 함께 대학로에서 두 달여 동안 ‘황금연못’을 공연했다. 연극 연습 짬짬이 다른 작품 관람까지 나선 것이다.



 팔순 노배우의 체력과 열정이 놀라웠다. 그날 연극이 끝난 뒤 극장 계단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했다. TV 속 근엄하고 까칠한 캐릭터로 익숙했던 그의 실제 모습은 자상한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인터뷰를 제안하자 한 번에 승낙했고, 휴대전화 번호도 선뜻 알려줬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지난 13일 다시 그를 만났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는 사이 팬들이 모여들었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젊은이도 많았다. 그는 팬들과 일일이 눈 인사를 했고, 사진 부탁도 다 들어줬다. “내 나이가 많은데도 젊은 친구들이 알아봐주고 반가워하니 고맙다”고 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그는 60년째 왕성한 현역이다. 현재 MBC 수목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와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에 주역으로 출연 중이고, 다음달 15일부터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관악극회 연극 ‘헤이그 1907’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관악극회는 서울대 연극회 동문이 모여 만든 극단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연극회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 어려서부터 배우의 끼가 있었나.



 “전혀 없었다. 배우가 되려는 생각도 없었다. 대학 들어가 극장에 다니며 영화 매니어가 된 게 연기 인생의 출발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을 도맡았던 로런스 올리비에의 연기를 보고 ‘저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배우를 ‘딴따라’로 생각하고 평가절하했지만 나에게 연기는 예술적 창조행위로 보였다.”



 이씨의 연기 훈련은 독학에 가까웠다. “스크린 속 배우들의 연기를 어깨너머로 배웠고, 전영우 선생이 쓴 우리말사전을 펼쳐놓고 발음과 용법을 따져가며 대사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제대 후 1년 정도 군에 취직해 방송 업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놈의 월급 받아봤자 장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드라마센터로 가서 이해랑 선생에게 “배역 하나 주십시오”하며 프로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돈 벌 욕심은 버리고 출발한 삶이었다. 장발의 배우 아들을 만나러 드라마센터로 찾아온 아버지가 “꼭 해야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제 이 길밖에 없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앞으로 세상은 뭘 하든지 일류가 되면 밥이야 먹지 않겠느냐”고 말하셨단다.



 - 아버지의 덕담이 현실이 됐다.



 “부모님을 내가 쭉 모실 수 있어 감사했다. 어머니께선 2008년 95세로 돌아가셨다. 내가 만약 일반 직장에 다녔다면 나 역시 은퇴했을 나이니 어쩔 뻔했나. 내가 움직여 어머니를 책임질 수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그는 다작 배우다. 연극·영화·드라마 등 300편 가까이 출연했다. 64년 개국한 TBC에선 80년 언론 통폐합 때까지 16년 동안 전속 탤런트로 활동했다.



 “TBC를 정말 내 집처럼 생각했다. 69년 MBC- TV가 개국할 때 스카우트 제의가 끈질겼지만 안 움직였다. 이병철·홍진기 두 회장님의 TV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통폐합이 안 됐다면 우리나라 방송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을 텐데….”



 - 정말 많은 배역을 맡았다.



 “연기란 역할이 바뀌면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한다. 항상 새로운 걸 만드니 얼마나 신나는 작업인가. 그게 우리 직종의 가장 큰 의미이고 보람이다. 내가 연기를 해봤자 다 할아버지 아니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걸 만들어보자’ ‘옛날에 했던 거 재탕하지 말자’란 의지로 접근하다 보면 해볼 게 많다. 잘하는 것 하나 갖고 맨날 우려먹는 배우는 매너리즘에 빠져 결국 도태되고 만다.”



 그는 “연기는 내 자존심이다. 심심풀이로 하는 작업이 아니다”며 “평생 완성을 향해 나갈 뿐 완성은 없다”고 돌아봤다. 경력 60년 국민배우 입에서 “집중해도 될까 말까…”란 말도 나왔다. 그는 “촬영 1시간 전부터 가서 대사를 중얼거리고 중얼거리며 정신을 모은다. 생각이 분산되면 창조력이 안 나온다”고 했다.



 그런 그의 눈에 쪽대본이 난무하고, 난데없는 벼락스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관행이 마음에 들 리 없다. 특히 그는 “언어 훈련이 제대로 안 된 배우가 한둘이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말은 동의어도 많고 발음도 까다롭다. 정세균 ‘정’은 짧게, 정주영 ‘정’은 길게 발음해야 하는데, 남의 조상 바꿔버리기 일쑤다. 엊그저께까지 노래 부르던 아이돌 가수를 비싼 값에 ‘모셔다’ 쓰니까 제작진이 잔소리도 못 한다”며 쓴소리를 이어갔다.



 이씨는 66년 이화여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최희정(75)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고정수입이 없어 가족을 꾸릴 형편이 아니었다”며 결혼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아내와는 처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연극 연출을 그가 맡으면서 알게 됐다. 저녁 대접한다며 그를 부른 장인이 그에게 영화 표를 줬고, 그 표로 아내와 첫 데이트를 했다.



 - 내년이면 결혼 50주년이다. 그동안 한 번도 스캔들이 없었다.



 “스캔들? 그런 거 있으면 집에서 쫓겨난다.(웃음) ‘학교 조건(서울고·서울대 졸업)’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고교·대학교 동창에게 ‘탤런트 나부랭이 하더니 별 수 없구나’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92∼96년 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정당 후보로 나가 750표 차이로 석패한 후 4년을 별러 의원 배지를 달았다. 당시 지역구인 서울 중랑갑에 대해 아직도 ‘우리’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3당 합당까지 했는데도 14대 때 중랑갑에 공천 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얼마나 표가 안 나왔으면…. 완전히 내버린 지역이었다. 개천도 복개하다 우리 면목동만 딱 남겨놨다”고 했다. 그는 중랑구에 8년여 동안 살면서 지역 주민과 정을 다졌다. 정치를 그만둔 뒤에도 중랑문화원장, 중랑구 사회복지협의회장 등을 지내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바쁜 일정은 계속된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두 편이 끝나는 9월 초엔 KBS 파일럿 프로그램인 3부작 시트콤 촬영에 들어간다. 올 하반기 일일드라마 출연 여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연말엔 국립극단 무대에도 설 계획이다. 또 내년 4월 방송을 시작하는 이병훈 연출 사극도 올 겨울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이런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그가 놓지 않는 일이 있다.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1학기에는 4학년을, 2학기에는 2학년을 지도한다.



 - 직접 연기 지도를 하나.



 “물론이다. 난 이론적으로 정립된 학자가 아니어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내 경험을 통해 실기훈련을 시키는 것밖에 없다. 연기는 ‘쟁이’가 하는 거다. 이론을 안다고 터득되는 게 아니라 훈련을 통해 다져 나가는 것이다. 또 학교에 가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내 인생의 큰 낙이다.”



 -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체력 관리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가야 될 데 가는 게 체력 관리다.”



 - 연기는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



 “치매기가 와서 현장에서 NG 대여섯 번 내면 끝낸다. 연기 외에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다. 다른 재주도 없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이순재가 꼽은 ‘나의 드라마 베스트5’



◆내 멋에 산다(TBC·1966)①=우리나라 1호 방송작가로 꼽히는 유호 작가의 홈드라마. 부잣집에 입주한 가정교사 역을 맡았다. 그 집 큰아들로는 오현경이, 큰며느리엔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나옥주가 출연했다.



 ◆풍운(KBS·1982)=흥선대원군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드라마다. 이 작품 덕에 금연에 성공했다. 대원군의 대사가 한 번에 4분이 넘어갈 정도로 긴데, 자꾸 목에서 가래가 끓어 담배부터 끊었다.



 ◆사랑이 뭐길래(MBC·1991)②=역대 평균시청률 1위(59.6%) 드라마. ‘대발이 아버지’로 큰 인기를 누렸다. 김수현 작가 작품으로, 이후 김 작가가 쓴 ‘목욕탕집 남자들’ ‘엄마가 뿔났다’ ‘무자식 상팔자’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허준(MBC·1999)=평균시청률 53%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사극 . 허준(전광렬)의 스승인 명의 유의태 역을 맡았다. 이병훈 연출과의 인연은 ‘상도’ ‘이산’ ‘마의’로 이어졌다.



 ◆거침없이 하이킥(MBC·2006)③=시트콤의 명장 김병욱 PD의 작품. ‘야동순재’란 별명을 얻으며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출연했다. ‘하이킥’ 시리즈로 청소년 팬이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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