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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 모두 야당 탓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세상사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지렁이 눈으로 볼 건 다 보고, 곰탱이 피부로도 느낄 건 다 느낀다. 아무리 가리고 뒤집어써도 드러날 건 다 드러난다는 얘기다. 쉬운 예가 예능프로그램이다. 꽃미남 아이돌, 베이글 요정들을 총출동시킨다고 시청자 눈이 절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해외여행 버라이어티에 할배들을 데려가지는 않았을 터다. 현실감이 있기에 감정이입이 가능한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거다.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감동과 여운이 거기서 나온다.



 당·정·청이라는, 이름도 이상한 모임이 68일 만에 열렸대도 감흥이 없는 게 그래서다. 당·정이면 당·정이지 당·청은 뭐고 당·정·청은 또 뭔가. 정부와 청와대가 제각각 움직이는 별개조직이었던가. 이해하기도 수긍하기도 어렵다. 그건 또 그렇다 쳐도 한 사람 레이저 눈빛이면 ‘한 방에 훅 갈’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모인들 뭘 결정할 수 있겠나. 스스로 정권의 사활이 걸렸다면서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에 유죄판결을 받을지 모를 인물을 등 떠밀어 세우는 해프닝이 그래서 벌어진다. (모두 꺼리는 데다 거북한 수사를 피할 수 있는 명분을 얻는 검찰에게도 좋은 묘수이긴 하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지만 그 화기의 실체가 무엇인 줄 아니 감동이 없다. 한 사람 뜻에 맞아야만 화기애애함이 유지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집권당과 정부·청와대의 모습이 이리 군색하고 구차한 건, 적어도 그럴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 이유다. 모두 제1야당 탓이다. 경찰이 하릴없이 서 있기만 해도 늘 하던 무단횡단이 주저되는 법이다. 제1야당이 조금이나마 존재감을 보였어도 여당과 정부·청와대가 저리 멋대로 하면서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디 작기나 한가. 130석이나 되는 거대 야당 앞에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존재감은 5석 정의당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당내 계파 싸움이나 막말 치고 받는 봉숭아학당은 거론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김영란법, 공무원연금법개혁안 등 법안 처리 때마다 관련도 없는 걸 조건으로 내거는 건 집권을 꿈꾸는 제1야당에 어울리는 태도가 아니다. 더 이상한 건 그 일로 여권 내의 갈등만 증폭됐지 야당은 사람들의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게 못내 아쉬웠던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경제를 살릴 긴급처방전인 추경예산안 통과조차 법인세 인상이라는 조건 딱지를 붙였다.



 국정원 해킹 파문도 그렇다. 새정련의 태도는 아무래도 진실 규명보다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정부에 흠집을 내 내년 총선구도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계산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사건의 본질과 관계 없어 보이는 승용차 번호판 색깔까지 시비하는 건 가뜩이나 인터넷을 달구는 음모론 불판에 기름 붓는 결과 말고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발목잡기가 효과 없음은 지난 선거들에서 증명된 게 아닌가. 그보다는 대안을 모색하라는 게 유권자들의 명령이었다. 그것은 남의 등에 붙은 겨가 아니라 내 다리에 묻은 똥을 바라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통렬할수록 효과가 있다. 엊그제 시작했다는 ‘셀프디스 캠페인’은 그래서 신선해 보인다. 문제는 말만 할 게 아니라 뼈저리게 느끼고 뼛속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를 모른다면 열심히 배우고, 호남 타령 말고 정책 고민도 해보란 말이다.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려면 정권을 견제하는 강하고 합리적인 야당이 보여야 한다. 그런 모습을 바라며 들려주고 싶은 우화가 있다. 스위스 화가 크라나하나 베크린 얘기다. 어느 날 젊은 화가가 베크린을 찾아와 얘기하더란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성공할까요? 저는 작품 하나를 그리는 데 2~3일 걸리는데 그걸 파는 데는 2~3년 걸립니다.” 베크린이 대답했다. “나는 작품을 파는 덴 2~3일이면 되지만 그걸 그리는 데 2~3년 걸린다오.” 발목 잡는 덴 2~3일이면 충분하지만 대안을 생각하는 덴 2~3년도 부족한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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