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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한국 경제는 지난 70년간 빨리 컸다. 세계에서 인구가 5000만 명이 넘는 나라 가운데 1인당 소득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뿐이다. 자랑스럽다. 그러나 걱정이 더 많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도가 크게 악화되었다. 또한 경제력 집중도 심화되었다. 한 예로 삼성·현대자동차·LG·SK 등 4대 그룹의 1년 매출이 GDP의 60%에 이른다. 10년 전 이 숫자는 40%였다. 결코 경시할 수 없다. 시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평균 경제성장률이 1980년대의 9.9%, 90년대의 7.0%에서 2000년대는 4.4%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3%도 힘겹다. 그러니 고용이 순조로울 리 없다.



 정부는 지난 2년여간 성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지난 대선 때 굳게 약속했던 동반성장이나 경제민주화는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규제 타파를 통한 투자 증진을 꾀했다. 다음에는 소득증대 정책을 쓰면 소비가 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둘 다 실적이 미미하다. 규제는 투자의 주된 걸림돌이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 특히 예측 불가능한 정부 정책이 더 큰 문제다. 또한 임금이 평균적으로 생산성 상승분만큼도 오르지 못하는데, 배당소득이나 부동산 임대소득만으로 국민 다수의 소득증대를 꾀하기는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압력으로 인해 설혹 소득이 늘더라도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



 나는 한국 경제의 해결책은 동반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만병통치약은 아닐지 모르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어 다 같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있는 사람들 것 빼앗아 없는 이들한테 나누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 전체의 파이는 키우면서 분배는 좀 더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동반성장의 경제적 원리는 무엇일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계적인 완전 평등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한 분야의 성장 효과가 그 분야에서만 고이지 않고 다른 분야로 빠르게 확산돼야 한다. 우선 부자·대기업·성장산업 등 선도 부문의 성장 효과가 아래로 잘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낙수효과다. 현재 한국 경제는 낙수효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끊겼다. 경제력 집중 완화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을 통해 낙수효과를 정상화해야 한다.



 또한 하도급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분수효과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선성장 후분배’ 정책으로 강자와 약자 간의 구조적 장벽이 너무 높게 쌓였다. 따라서 다수 국민의 고용과 소득을 늘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은 서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킬 뿐 아니라 내수 확대를 통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고용과 투자를 자극함으로써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동반성장 원리를 투자 부진 타개에 응용해 보자. 투자는 기업이 한다. 그중 대기업은 돈은 천문학적으로 많으나 창의성·유연성이 부족하다. 한국의 연구개발(R&D) 지출은 세계 5위이고 GDP 대비로는 1위다. 그러나 외국의 관찰자들은 한국의 R&D 지출이 거의 다 개발(D) 지출이고 크지 않은 연구(R) 지출도 본격적인 연구(research)에가 아니라 외국의 연구 결과에 조금 덧붙이는 것(refinement)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D로부터 R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편 중소기업은 투자 기회는 많으나 돈이 없다. 돈만 생기면 금방 투자할 수 있다. 60, 70년대에는 정부가 세금을 걷거나 돈을 찍어 유망산업의 유능기업인에게 빌려주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또 경제가 커지고 복잡해져서 유망산업이 어딘지, 유능기업인이 누구인지도 분간하기 힘들다. 대안은 있다. 대기업에 흘러갈 천문학적 돈의 일부라도 무리 없이 중소기업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해 중소기업의 투자가 늘면, 투자가 생산을, 생산이 고용을, 고용이 소득을, 그리고 소득이 소비를 자극할 수 있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경기침체를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속적 성장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이 연결고리는 중소기업이 주도하므로 양극화도 완화할 수 있다.



 돈이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가게 할 구체적 방법은 초과이익 공유,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발주 등이다. 이 밖에도 다른 방안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요컨대 동반성장은 우리의 낡은 사고를 혁신하는 것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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