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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몸으로 가르치는 자를 따른다

[이코노미스트]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1881년, 당대의 저명한 유학자 송병선(훗날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자결)은 고종에게 부국강병을 위한 8가지 방책을 담아 ‘신사봉사(辛巳封事)’를 올렸다. 이 중 제 3조의 내용을 소개한다. ‘셋째, 세자를 보좌함으로써 나라의 근본을 견고히 하는 것입니다. 적통을 승계할 아들을 가르치는 절차는 세 가지가 있으니, 교훈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덕과 의리로 보좌하는 것이며, 신체를 보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옛 말에 이르길 ‘말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지고 몸으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른다’ 하였으니, 모든 것을 가르칠 때 항상 전하께서 솔선수범하시어 직접 보여주는 것을 중시하시옵소서’이다(고종18.11.30). 영조 때 호조판서 이태좌도 효장세자의 관례와 혼례를 축하하며 “말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지고 몸으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른다고 하였으니 전하께서는 학문을 더욱 부지런히 하고 아랫사람을 더욱 정성스럽게 대하여 몸소 후손에게 모범을 보이소서”라고 진언했다(승정원일기 영조3.10.3).



군자의 덕은 바람, 소인의 덕은 풀



요컨대 장차 나라를 다스릴 왕세자를 훈육함에 있어 아버지인 임금이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부모가 본인들이 하지 않고 있는 것, 본인들의 행동과 어긋나는 것을 자식에게 요구한다면 자식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에게 따지고 반발할 수도 있다. 아버지가 책을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자식에게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야단친다면 과연 그 가르침에 무게가 실릴 수 있을까? 이는 위선이다. 자식이 변하길 바라고, 자식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면 부모가 먼저 그 모습대로 행동해야 한다. 가르침이 말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 될 때 비로소 자식은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된다.



송병선과 이태좌가 인용한 위의 구절은 [논어집주(論語集註)] ‘안연’편에 나온다. 공자의 말로 잘못 사용되기도 하지만(숙종32.10.17) 정확히는 주자가 붙인 주석이다.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제가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 도를 실현하겠다면 이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그대가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이는 일을 하려 합니까? 그대가 선(善)하고자 하면 백성들도 선해지는 것이니, 군자의 덕이 바람이라면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지는 법입니다.” 주자가 이 글귀에 주석으로 ‘죽인다는 말이 어찌 윗사람이 할 말인가? 몸으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르고 말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지는 법이다’라는 윤돈(북송 때 학자)의 말을 인용해 첨부했다. 리더가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이며 뭇사람들을 올바로 이끌 생각은 하지 않고, 폭력적인 수단을 가지고도를 이루겠다는 잘못된 말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비단 부모-자식 사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리더가 조직을 운영할 때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덕목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따르라고 명령하려면, 설령 그가 명령이나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외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솔선수범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철저히 실천하고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야 그 지시에 진정한 권위가 실리는 법이다.



명종 때 사치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 너도 나도 비싼 수입품을 찾다 보니 밀거래가 성행하고 재물의 낭비도 심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간원은 지도층부터 검약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사치가 유행을 이루어, 중국 물품을 즐겨 사용하는데, 심지어 의복까지도 전적으로 중국 비단을 씁니다. 이 습성 자체를 바로잡지 않는 한 무역을 통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겠습니까? 비록 법전(法典)에 비단옷을 입어도 된다고 되어 있으나, 선조(先祖) 때에는 재상이라도 전혀 입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우 당상관만 되도 모두가 비단옷을 만들어 입고 있으니, (비단을 구하기 위해) 역관과 결탁하게 되고, 역관 또한 그 청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옛 사람의 말에 ‘몸으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순종하지만 말로 가르치는 자에게는 따진다’고 했듯이 위에서 먼저 절약과 검소를 실천한 후에야 비로소 사치의 풍습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실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물건과, 약재, 서책, 궁각(弓角) 외에는 일체의 무역을 금지하고 비단으로 만든 의복은 가의(嘉義, 종2품) 이하로는 착용하지 못하도록 하시옵소서”(명종7.4.20).



이와 관련해서는 세종 때에도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세종은 그 자체로 성군(聖君)이었다. 소통과 경청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런 세종조차 만년에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이즈음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며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켰고 지병이 심화되어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내와 사랑하는 두 아들이 연이어 죽어 정신적으로도 매우 피폐해 있었다. 세종이 불교를 통해 종교적인 위안을 찾으려 했던 이유다.



그런데 세종이 불사(佛事)를 행하려 하자 신하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불교를 이단으로 규정한 성리학 국가 조선에서 이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던 것이다. “불사는 대단히 불가한 것이니, 위에서 이를 행하면 어떻게 백성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의 말에 ‘몸으로 가르치는 자를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이 보고 본받는 것은 모두 임금 한 몸에 달려 있는데, 지금 전하께서 스스로 의리가 아닌 것을 행하시니, 이후 다른 사람이 그른 일을 한다 해도 어찌 이를 금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단 배척에 앞장서야 할 임금이 도리어 이단을 좇으니, 장차 백성들이 이단을 따르지 않도록 어떻게 교도하겠냐는 것이다. 또한, 임금 스스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백성들의 잘못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냐는 힐문이었다(세종 30.7.19). 이에 대해 세종은 “경들의 간언을 심히 아름답게 여기지만, 내가 만일 어진 임금이라면 반드시 경들의 말을 따르겠지만, 나는 부덕한 임금이기 때문에 경들의 말을 따를 수가 없다”며 거부했다.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야



무릇 ‘말’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말에 감동했다면, 그것은 말이 좋고 멋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한 사람의 행동이 말과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배우고 싶고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을 이끌고 구성원들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리더가 몸소 실천하고, 솔선수범할 때 그것이 바로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최고의 ‘메시지’가 된다. 그래야 리더의 지시에 도덕적 권위가 생기고 구성원들도 리더를 믿고 따르게 된다. 나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리더를 우리는 따르지 않는다. 자신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이를 요구하는 리더를 우리는 믿지 않는다. 말이 아닌 행동이 핵심인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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