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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BBC를 흔드는 손 … 영국 보수당·상업방송 세력의 속내

공영방송의 미래가 심상치 않다. 지난 16일 영국 문화매체부가 발표한 녹서(green paper)를 읽다 든 생각이다. 이 녹서는 표면적으로 2016년 말 만료되는 BBC 방송면허를 검토하기 위한 정부 쪽 의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목차만 훑어보아도 간단치 않다. BBC의 임무와 목적, 규모와 재원, 지배구조까지 모든 것을 근본부터 검토하겠다고 한다. 마치 공영방송 제도 그 자체를 문제 삼겠다는 듯이.

 녹서란 원래 정부의 자문 요청 문건이다. 정책을 공식화하기 전에 의제를 제시하고 이해당사자와 공중의 의견을 취합해 향후 공식문서인 백서에 반영한다. 그러나 이번 녹서를 정부의 정책적 의제 설정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간신히 승리한 보수당 정부는 이제 BBC를 손봐야 한다는 듯한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으며, 이를 보수 일간지들이 거들고 있다. ‘BBC와의 전쟁’이란 용어가 나올 지경이다.

 정부 쪽에서 면허 갱신 협상을 지휘하는 이는 휘팅데일 문화매체부 장관이다. 그는 장관이 되기 전부터 BBC 경영과 지배구조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 의견을 견지했다. 그가 의장으로 지휘했던 문화매체부 특별위원회는 지난 2월 BBC 트러스트를 폐지하고 수신료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보수당 정부 내에서는 그래도 BBC에 대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나마 BBC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공영방송 지지자들의 우려가 심각하다. 이들은 보수당 정권과 루퍼트 머독을 비롯한 다국적 상업방송 세력이 영국의 고유한 공적 제도를 허물고 있다고 비판한다. 보수당 정부가 방송면허 갱신을 이유로 BBC 지배구조와 재원을 문제 삼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보편적 내용 제공 역무를 축소해 상업적이고 친시장적인 매체 환경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BBC 역사가이자 가디언 기자인 휘긴스는 과거 휘팅데일이 장관에 오르기 전에 인터뷰한 내용을 가디언에 공개했다.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BBC란 ‘스타와 함께 춤을(Strictly Come Dancing)’ 같은 인기 프로그램을 제작해 상업방송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모든 분야의 내용을 다 제작할 필요도 없고, 고품질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거액의 출연료를 지불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상업방송사들이 경쟁하는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 요컨대 상업방송이 제공하지 않는 역무를 보완적으로만 수행하는 ‘최소주의 공영방송’이어야 한다. 이는 BBC가 역사적으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고, 잠시 대안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공영방송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2016년 말까지 계속될 BBC 면허 갱신 협상은 공영방송에 대한 제도론적 논쟁으로 비화할 것 같다. 일단 논쟁의 불길은 수신료와 지배구조 개선에서 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국 공중이 인두세나 가구당 공과금 형식으로 바뀐 수신료를 용인하거나 독립적이며 전문적인 BBC 지배구조를 버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스카이와 버진 케이블 등 상업적 플랫폼과 넷플릭스, 애플, 구글과 같은 국경을 넘는 매체 기업이 격돌하는 경쟁적 환경에서 과연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인지를 놓고 이념적으로 다툴 것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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