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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강도가 된 가장’ 사회에 던진 고민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윤정민
사회부문 기자
지난 5일 밤, 네온사인들이 수놓아진 서울 강남 거리를 힘겹게 걷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그는 백화점에서 흉기를 들고 돈을 요구하다 도주하는 중이었다. 범행 전 꼬박 이틀을 굶은 그는 도주라고 하기엔 참으로 어색하고 느린 동작으로 2시간 가까이를 걷고 또 걸었다. 별달리 갈 곳도 없다는 막막함 때문이었을까.



 평범한 가장이었던 이모(52)씨가 사업 실패 후 한순간에 강도범으로 추락한 사연이 보도된 뒤 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본지 7월 17일자 18면> 이씨 가족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전화도 계속 걸려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는 것은 그와 같은 막막함을 느껴본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이들 중 상당수는 “나 자신도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겪었다” “나 역시 두 자식을 둔 가장으로서 사는 게 만만치 않다”고 했다.



 물론 삶이 고되다는 것이 범죄를 변명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이씨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은 60대 여성이었다. 피해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씨는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가 놓인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이가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힘없고 돈 없는 이들은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구조다. 그들의 좌절은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라는 말에 응축돼 있다. 실패를 딛고 성공을 이루는 이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의지가 약하다고 탓할 문제는 아니다.



 “사회는 스스로 만들어낸 암흑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음속에 그늘이 가득 차 있으면 거기에서 죄가 범해진다. 죄인은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그늘을 만든 자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최근 늘고 있다. 지독한 생활고를 꼼짝없이 감내하고 있는 이들은 훨씬 더 많다.



 온정의 손길이 잇따르면서 이씨 자녀들의 생활은 한결 나아질지 모른다. 따뜻한 소식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지 사회적 고민이 계속돼야 한다. 범죄는 범죄대로 보되, 그 이면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범죄에 대한 안전망도 촘촘해질 수 있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범죄를 엄벌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이씨 같은 범죄자들이 양산될 뿐이다.



 “하루아침에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뒷골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이뤄져야 합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한 시민의 진지한 고언을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윤정민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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