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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음지가 정보기관의 숙명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7월 1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인민군 육군대장 박영식을 지난 4월 말 숙청된 현영철의 후임 인민무력부장으로 보도했다. 이로써 5월 13일 이후 숱한 억측이 나돌던 현영철 숙청설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현영철 숙청’을 99% 확신하며 공개했던 국가정보원으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면 무언가 개운치 않은 점들이 있다. 국정원은 첩보를 수집해 이를 정밀하게 검토·분석한 뒤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정보로 생산·배포하는 기관이다. 5월 13일을 기준으로 볼 때 현영철 숙청 및 처형설은 단순 첩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왜 이 첩보를 그렇게 중요하게 다뤘는지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현영철에 대한 정보 공개의 최적 시점은 오히려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제2차 군단예술선전대 공연 관람 소식을 전하면서 수행 간부를 황병서(군 총정치국장), 박영식, 이영길(총참모장) 순으로 호명했던 6월 15일 무렵이었다고 본다. 그즈음 현영철의 후임으로 박영식이 인민무력부장으로 선임됐음을 밝히고 박영식의 프로필과 현영철 제거 사실, 인민무력부장 교체 이후의 북한 군부 동향, 당·군 관계 등을 꼼꼼히 분석했다면 어땠을까. 여기에 장기적으로 김정은의 권력 기반에 미치는 영향이나 남북 관계에 주는 함의 등을 소상히 담은 정선된 정보 분석보고서가 나왔다면 국정원의 대북정보 공신력은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다.



 현영철의 숙청과 처형설을 공개한 경로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사안이 과연 5월 13일 이른 아침 예정에도 없는 국회 정보위원회를 열어 보고할 만큼 화급한 일이었을까. 외국 언론이 먼저 보도하려는 징후가 있었다는 게 국정원 측 설명이지만 그간의 패턴을 감안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국회 정보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흡사 국정원 대변인이 된 듯 앞다퉈 관련 사항을 언론에 전달하는 장면은 기이할 정도다. 분명 비공개로 분류됐을 해당 정보가 여과 없이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의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비슷한 행동을 했다면 그 경중에 따라 특별윤리위원회 회부, 경고, 의원직 박탈은 물론 형사처벌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사안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개 의도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증 단계의 첩보를 그렇듯 서둘러 공개한 것은 국정원의 고질병인 한건주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론 정보 전문가인 이병호 신임 원장의 리더십 아래 국정원이 환골탈태해 경쟁력 있는 대북정보력을 회복했음을 국민에게 과시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국면 전환용 충격효과를 기대했을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린 일이다. 장성택에 이은 현영철의 숙청 및 처형설은 북한의 공포정치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평양의 내부 불안에 대한 우려를 크게 부각시켰다. 여기에 최근 불거지고 있는 고위급 인사의 대량 망명설 유포는 김영삼·이명박 정부 말기에 그랬듯 북한 체제 붕괴론을 다시 한 번 대두케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남북 관계에 악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5월 13일 이후 남북 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8·15 70주년을 맞아 구상하던 각종 남북 공동행사들이 중단됐고,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의 북한 선수단 파견도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7월 16일 개성공단 남북 공동위원회도 성과 없이 끝났다. 자신들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고 체제 불안정설을 자극하는 남측과는 대화할 용의가 없다는 평양의 신호다.



 이는 국정원이 아직도 북한 체제를 흔들고 남북 관계 개선을 저지하는 대북 와해공작을 지속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준다. 만일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통일 준비 노력과 크게 배치되는 것이다. 거꾸로 국정원의 이미지를 고양하고 정국 국면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단타성 조치였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그동안 국정원을 불신과 오욕의 수렁에 빠뜨려 온 파우스트적 거래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비밀정보기관이다. 성공한 공작이라고 해서 자랑해서는 안 되고, 실패가 부각된다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숙명이다. 게다가 국내 정치 개입과 불법 사찰, 불법 도청 같은 과거의 업보가 여전히 멍에로 남아 있지 않은가. 최근 불거진 해킹 프로그램 구매사건이 사회적 논란으로 증폭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국정원이 가야 하는 최선의 길은 음지에서 법과 원칙에 충실하며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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