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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 그 진부함에 관하여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에로스에게서 자신을 지키려는 젊은 아가씨’(1880).
한두 번 혹은 서너 번이지, 연애도 너무 자주 하면 그것도 병이다. 그것도 아주 진부한 질병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신화의 시대부터 21세기까지 반복해서 이야기되는 이 문제-사랑과 연애-에 대한 수없이 많은 글과 영화와 드라마를 뻔한 줄 알면서도 우리는 보고 또 보고 있다.

이진숙의 접속! 미술과 문학 <16>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부그로의 ‘에로스에게서 자신을 지키려는 젊은 아가씨’

쉽게 사랑에 빠지거나 끊이지 않고 연애를 하고 있다면, 스스로 습관성 연애중독증이 아닌지 한 번쯤은 의심해 볼만하다. 습관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모두 진부함이라는 악마와 손잡게 된다.

프랑스 화가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 Bouguereau, 1825~1905)의 그림 ‘에로스에게서 자신을 지키려는 젊은 아가씨’ 역시 달콤하게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지만, 미화하고 싶은 그만큼 진부해진 경우다. 에로스는 예쁜 아가씨를 사랑의 화살로 맞추어 사랑에 빠뜨리려고 한다. 아가씨가 밀쳐낼수록 에로스는 더 짓궂게 군다.

왜 옛날 사람들은 사랑을 관장하는 신을 제우스가 아니라 철 없는 소년 신 에로스라고 생각한 걸까.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이 대부분 논리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운명’이기도 하고, 또 ‘운명의 장난’이기도 하다.

아가씨의 눈빛을 보라. 손은 밀어내지만, 저 눈빛은 당기는 눈빛이고 저 미소 띤 입은 본심을 숨긴 거짓을 말하는 입술이다. 아가씨는 그렇게 매혹적이면서 “아니요”라고 말하고 있다. 적당히 튕기면 더 애달파지는 흔하디 흔한 사랑의 ‘밀당’이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도 무한 도돌이표를 단 악보처럼 지칠 줄 모르고 되풀이되는 장면이다.

그린 방식도 상투적이다. 부그로는 19세기 말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전통적인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좋았고,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을 그렸다. 이 점이 그의 성공의 원인이자 실패의 원인이었다. 당대에는 꽤 인기작가였던 그는 사후에 혁신을 생명으로 하는 근대미술의 등장으로 미술계에서 철저히 잊혀졌다. 예술계에서 진부함은 이제 죄악이 됐다.

부그로에겐 약이자 독이 된 진부함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사랑, 연애의 진부함이 어떤 것인지 꼭 집어 보여준다. 여기서 로맨스는 사라지고 불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늘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끝나게 되는 메커니즘이 공개된다. 체호프는 도덕적 코멘트를 붙이지 않고, 사랑을 미화시키지도 않는다. 연애중독자의 ‘특별한 연애의 기술’도, 거기에 빠져드는 여성의 심리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상투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 구로프는 변명할 길 없는 연애중독자였다. 아이가 세 명 있는 가장이었지만, 오래전부터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왔다. 다 이유가 있다.

너무나 분명하고 뻔한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나쁜 배우자’다. 구로프는 자신의 아내가 “직설적이고 거만하고 유행을 쫓고 천박하고 속이 좁고 촌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배우자는 악역을 담당해야 바람이 합리화된다. 그렇다고 나쁜 배우자(정확하게는 안 맞는 배우자)와 함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둘째 바람둥이가 되려면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구로프는 꼭 잘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매력적”인 구석이 좀 있었다.

그렇다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다 바람둥이가 되지는 않는다. 사실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성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환상이다. 그는 자신과 사랑에 빠졌던 여자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여자들을 “싸구려 종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그 싸구려 종자들이 없다면 그는 단 이틀도 살 수가 없었다. 새로운 여인과의 은밀한 로맨스에 대한 유혹은 언제나 그를 설레게 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데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쌓은 유혹의 기술도 중요하다. 이번에 그가 고급 휴양지 얄타에서 만난 여인은 하얀 스피츠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게 접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개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개를 쓰다듬었고, 개 주인 여자와 자연스레 말문이 트였다.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보자.

“구로프는 자신이 모스크바 사람이며, 인문학을 공부했지만 은행에서 일하고 있고, 한때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했으나 그만두고 지금은 집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성장했으며 지금은 결혼을 해서 2년째 S시에서 살고 있고, 얄타에는 한 달 정도 머무를 예정이며, 어쩌면 휴식이 필요한 남편도 이곳에 올지 모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체호프다! 짧은 단락 속에 묘사된 정보의 비대칭성을 주목해 보자. 구로프는 자신이 세련된 서울 사람이며, 학벌, 현재의 안정적인 직장과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있음을 전한다. 한때 오페라 가수가 되고자 했던 낭만적 기질의 소유자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여인들에게는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낭만적이지 않은 남편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는 자신도 그렇게 어리숙한 시골뜨기가 아니며, 결혼 2년 차이니 약간 싫증이 날 때도 되었고, 남편도 이곳에 올지 모르지만 아직은 안 왔고, 한 달 가량의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즉, 남자는 자신의 매력에 관한 정보를, 여자는 자신이 그 매력에 넘어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정보를 주고 받은 것이다.

상투적 불륜 꼬집은 체호프
휴양지에서의 짧은 사랑이 끝나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갔고, 서로는 서로를 잊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구로프는 자꾸 그녀가 생각났다. 이런 일은 드물었다. 그녀를 찾아 나섰고, 둘의 밀회는 다시 시작됐다. 이렇게 되니 이건 이전의 그렇고 그런 연애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쳐진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한 머리를 보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왔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운명적인 만남이란, 자신의 운명을 바꿔야만 의미가 생기는 법일 터다. 체호프는 구로프와 여인이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소설을 끝낸다. 다만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내는 데,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뉘앙스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 역시 언젠가 그렇고 그런 ‘싸구려 종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상투성의 덫에 걸린 사랑을 미화하지 않고 그 구조를 담담하게 담아낸 체호프의 작품만이 유일하게 상투적이지 않은 예술작품이 됐다. 더 놀라운 것은 100년도 전에 쓰인 이 소설의 공식이 요즘에도 과히 틀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투적인 것은 상투적이어서 변함없이 상투적인 힘을 갖는 모양이다. ●


이진숙 문학과 미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문화사 속 인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위대한 미술책』『미술의 빅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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