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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할머니의 우울하지만 통쾌한 일기

저자: 사노 요코 역자: 이지수 출판사: 마음산책 가격: 1만2000원
‘6시 반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는데 믿을 수 없다. 일어나서 도대체 무얼 하는 것일까?’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의 책 『사는 게 뭐라고』의 첫 문장이다. 맞다. 산다는 건 아침 눈 뜰 때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사이에서의 줄다리기다. 무엇을 어떻게 왜 선택해야 할까.

책의 저자인 사노 요코는 밀리언셀러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두 번 결혼했고 두 번 이혼했다. 전 남편 중 한 사람은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였다. 나이 육십이 넘어서도 잡지사에서 작품 의뢰를 받는다. 아들은 다 컸고, 스스로 선택한 ‘독거노인’의 삶을 살고 있다.

이쯤 되면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우아한 노년생활이다. 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풀기 힘겨운 숙제를 주는 법. 유방암으로 가슴수술을 받은 사노는 병원에서 예순일곱 걸음 떨어진 집에서 산다. 건망증을 넘어 치매를걱정할 정도의 기억력 감퇴는 이미 샀던 책과 가전제품을 또 사게 만든다. 냉장고 속에 설거지한 커피 잔과 절굿공이가 들어 있는 일이 다반사다. 그럴 때는 창피해서 선 채로 울기도 한단다. 스스로도 “늙은이는 공격적이고 언제나 저기압이다”고 할 만큼 날로 뾰족해지는 독설 탓에 이제 만나주는 친구들도 몇 없다.

『사는 게 뭐라고』는 2003년부터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8년까지의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삶을 꼼꼼하게 기록한 생활일기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울해질 겨를이 없다. 세상에 대해 ‘까칠한 시선’을 놓지 않는 이 범상치 않은 할머니의 통렬한 독설과 순간순간 가슴 밑바닥을 다 까뒤집어 보여주는 솔직함 때문이다.

TV를 보면서 “이봐 당신들, 좀 조용히 하라고.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자기네끼리만 아는 얘기나 하고 말이지. 전 국민이 다 당신네 패거리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건 기본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는 몹시 부끄러운 인류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은행 자동인출기 앞에서 악전고투할 때는 노인들에게 점점 불편해지는 디지털 사회에 성질을 내다가도 ‘비록 속도는 느릴지언정 혼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한다. 한류 드라마에 빠져 욘사마·원빈·김승우 DVD를 몇 날 며칠 동안 한쪽 방향으로만 누워서 보느라 턱이 비틀어져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카페에서 만난 젊은 여자의 주름 없는 얼굴이 부럽지만 곧 ‘청춘이란 자신의 젊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너도 머지않아 나처럼 되겠지, 아, 고소하다’며 통쾌해 한다. 암으로 2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에는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물건을 쓰고 싶다’며 상큼한 녹색 재규어와 예쁜 잠옷을 샀을 정도다.

정말이지 솔직하고 예민한 ‘미운 일곱살’ 같은 삶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주변에선 모두 마음만 젊게 먹으면 청춘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의 불안한 그림자를 비껴갈 순 없다. 어떻게 늙어야 ‘한평생 잘 살았다’ 말할 수 있을까. 침대 반경 50m가 삶의 전부인 사노 요코의 ‘웃픈’ 삶의 기록에 밑줄을 치게 되는 건 이 질문에 한 가지 답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더 어렵다고. 그러니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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