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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주가 만난 사람] “과학계·사회 소통 잘돼야 부국 … 동북아 평화 주역 양성이 꿈”

김경민 교수 1954년 부산 출생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학사)

한양대 정외과 김경민 교수

미국 미주리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일본 방위연구소 외국인 1호 객원연구원
경주 중저준위방폐물처리장 부지선정위원 역임
현 국방기술품질원 이사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발전 전문위원
해군 자문위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김경민(61) 교수는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한·미 원자력협정 타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굵직한 과학계 이슈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미디어에 등장한다. 그럴 때면 그가 정치학을 연구하는 학자인지, 과학기술을 연구한 학자인지 헷갈린다. 언론인으로서 과학기술계 취재를 20여 년 해왔던 필자도 놀랄 정도로 그의 과학기술 지식은 수준급이다.

 김 교수의 전공은 국제정치학이다. 정치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원자로나 전투기, 잠수함 등 군함의 사양을 제대로 아는 경우를 김 교수를 제외하고 아직 필자는 만나보지 못했다. 대개 과학기술인이 과학기술은 심도 있게 알아도 국제정치를 잘 모른다. 물론 김 교수가 과학기술인들과 견줄 만큼 깊이 있게 과학기술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일반인이 알 필요가 있는 정도, 국제정치에서 이슈가 되는 핵심 기술 정도를 가려내 잘 정리하고, 필요할 때 잘 풀어낸다. 그런 그에게 굳이 별명을 붙이자면 ‘과학과 사회의 커뮤니케이터’가 어떨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교육과학기술부), ‘과학과 사회소통상’(한국과학기자협회), ‘원자력과 사회소통상’(한국원자력학회), ‘우주과학소통상’(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그가 그동안 수상한 상을 봐도 그런 별명이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과학계 이슈 현장엔 언제나 참여
사실 과학계에서는 ‘과학을 사회에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고민 중 하나다. 과학계와 사회가 잘 소통돼야만 그 사회가 과학계를 후원하고, 그 힘은 곧 국부 창출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나라마다 이런 소통 채널이 아주 약하다.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과학기술계의 보배다.

 그는 민간인으로서 흔치 않게 우리나라가 세 척을 보유한 8000t급 이지스함(세종대왕함, 율곡 이이함, 서애 유성용함)을 모두 들어가 봤다. 또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 공장, 프랑스 라팔전투기 공장, 일본 F-2 전투기 공장, 각국의 민간 여객기 생산 공장, 일본 우주발사장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공장, 후쿠시마 원전 등 이슈가 되는 현장을 방문해 살아 있는 지식을 습득했다.

 필자가 김 교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는 원자로 폐로 관련 공부를 위해 일본에서 전문가를 만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첫 원자로인 고리1호기의 폐쇄가 결정됐기 때문에 폐로가 진행 중인 일본을 찾은 것이다. 해외 현지를 방문할 때 김 교수는 직접 방문을 신청하고 단독으로 가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해외 전투기 생산 회사들이 아무에게나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에서도 김 교수의 한국 내 ‘가교’ 역할을 인정하는 것 같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일본 방위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을 해 영어와 일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가 군사기술을 포함한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일본 방위청 산하 방위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있으면서다. 한양대 교수는 휴직을 했다. 외국인으로 방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그가 처음이었다. 방위연구소는 자료가 아주 풍부하며, 일본 학자가 일본군 주도의 위안부 문서를 찾아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 군사기술 잠재력 찾아내 세상에 알려
김 교수는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패망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계가 무시하지 못할 군사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객원연구원 신청을 한 터였다. 그러나 일본 군사 관계자들을 아무리 만나 봐도 자신들은 그런 기술력이나 군사력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핵잠수함, 공중급유기, 조기경보기 등 그럴듯한 군 장비나 기술을 가진 것이 없지 않느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럴 즈음 미국과 영국 학자가 쓴 논문들에서 단서를 잡았다. 미국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일본 기업이 생산한 반도체칩이 없으면 만들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논문의 참고문헌에는 공통으로 일본에서 발행하는 ‘일간공업신문’이 명기돼 있었다. 그는 도쿄 시내에 있는 일간공업신문사를 찾아 축쇄본 30년치를 뒤졌다. 거기에는 ‘F-15 전투기 엔진기술 80% 자립’ 등 기업 곳곳에 숨어 있는 군사기술 자료가 담겨 있었다.

 방위연구소 객원연구원 시절, 그렇게 찾아낸 자료 등을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일본이 일어선다』 (1995·고려원), 『다시 부활하는 군사대국 일본』(1996·日本德間書房)이라는 저서를 펴냈다. 일본의 전투기 기술, 구축함 기술, 로켓 기술, 핵무기 개발 잠재력, 세계 최고의 디젤잠수함 기술, 헬리콥터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군사력을 파헤친 역작이자 한국에 경종을 울린 연구결과이기도 했다. 그는 또 1994년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초청을 받아 ‘일본과 독일의 전후 보상 비교연구’를 했다. 이 연구에서 그는 “일본이 과거 침탈사를 직시하고 독일처럼 솔직히 반성하지 않으면 동북아의 평화는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도 일본 신문을 빠짐없이 읽는다. 또 일본 잠수함과 군함, 원전 등의 관련 서적을 탐독한다. 그가 직접 썼거나 번역한 책으로 『김경민 교수 북핵 일본핵을 말한다』 『원자력과 환경』 『일본과 중국의 우주개발』 『한국의 우주항공 개발』 등 12권이나 된다.

청소년 대상 전국 순회강연 준비
그는 일본 방위연구소 객원연구원 이후 줄곧 군사기술과 거대 과학기술 분야와 국제정치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사회와의 소통에 매진해 왔다. KBS 객원 해설위원을 12년 동안 해오고 있으며, 신문 등에 수백 편의 시론 등 기고문을 실었다.

 나로호 발사가 실패를 거듭하던 때였다. 그는 일본의 ‘로켓 대부’이자 순국산 우주발사체 H-2 개발책임자였던 고다이 도미후미 박사를 한국에 초청해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방향에 조언을 하고 국민과 대화하는 방법 등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기도 했다. 나로호 발사 실패 때 그는 미디어를 통해 ‘절반의 성공’으로 실패를 해설함으로써 국민의 성원이 지속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실 로켓 발사가 실패면 실패고, 성공이면 성공이지 ‘절반의 성공’이란 것은 없다.

 김 교수는 ‘가교’ 역할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 와중에도 ‘동북아 평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저술 활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국 순회 강연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 세대가 동북아 평화를 이룩하는 주역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이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한국의 청소년이 동북아 평화의 주역이 된다고 하면 웃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럴 날이 올 것으로 믿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방주 교수=중앙일보에서 20여 년간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09~2012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가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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