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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순이 세대, 빈한한 가족에게 바친다 … 미안함이 창작의 힘





[사람 속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임흥순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임흥순(46). 2002년부터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했고, 2012년 내놓은 첫 장편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그러나 이 같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미술계에서도 영화계에서도 생소했다. 적어도 지난 5월 베니스 비엔날레가 은사자상 수상자로 그를 호명하기 전까진 말이다. 수상작 ‘위로공단(Factory Complex)’이 다음달 13일 개봉한다. 이제 임흥순이라는 이름은 마이너리티의 희망이다.





 ◆기다림은 내 장기=서울 도봉구 덕릉로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그가 올 한 해 지내는 작업실이다. 이전 4년간 그는 구로공단에서 지냈다. 서울시에서 예술가들에게 개방한 ‘금천예술공장’에서다. 2010∼2014년 이곳 주부들과 ‘금천미세스’를 결성했다. 이들은 삶의 공간인 구로공단의 과거와 현재, 동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 짤막한 영화를 만들었다. 소시민 기혼 여성들은 ‘언니 세대’에 대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거기에 담았다. ‘위로공단’의 밑거름이 된 정서다.



금천에서 창동으로 임씨의 ‘떠돌이 생활’ 역사는 제법 길다. 국공립 기관이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하는 레지던시 공모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 훨씬 전부터 그는 지역에 들어가 주민들과 예술 프로젝트를 벌였다. ‘성남 프로젝트’(1998∼99), ‘믹스라이스’(2002∼2005), 다시 ‘성남 프로젝트’(2006∼2007), 성산동·등촌동의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꾸린 ‘보통미술 잇다’(2007∼2010) 등이다. 한 문장으로 압축했지만 그가 벌인 커뮤니티 아트의 10여 년 궤적은 기다림 자체였다. 제안하고 기다리고 현장을 꾸리고 주민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또 기다리고, 그들이 자기 목소리로 영화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도록 지켜보고, 지원 기간이 차면 다 두고 나오는 과정이었다. “내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사람들이 직접 자기 얘기를 하도록 했다. 활동이나 복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일들이다. 이런 것도 미술에 들어간다고 본다. 인물을 대상화하거나 소재화하기는 조심스럽다. 이분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어떻게 마음속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림·조각처럼 전시·판매 가능한 자기 작품이 남는 것도 아닌데, 이런 과정이 허망하지는 않았을까.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가 나온 뒤 그 공간이 문을 닫는다면 실패라기보다는 그게 그곳의 몫일 거다. 더 활성화된다면 그 또한 주민들의 몫이다.”



‘위로공단’은 1970년대 구로공단부터 지금의 베트남·캄보디아 일대 봉제공장, 첨단 산업이나 서비스업으로 이어지는 노동 현장의 애환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직종의 여성 노동자 65명을 인터뷰해 만들었다. 여기에도 기다림의 과정이 있었다. 제작기간 3년, 그중 한 인터뷰 대상자의 경우 반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건 내가 작품을 대하고 삶을 대하는 자세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서두르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대하는 믿음·존중·신뢰일 거다.”



◆미안함은 나의 힘=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방과 후 답십리 산동네를 누비며 놀았다. 해가 저물면 반딧불이가 나는 동네였다. 부모의 경험은 곧 도시 빈민의 역사였다. 청계천 철공소에서 일하다 손을 잘린 아버지는 이후 노동판을 전전했다. 충북 괴산에서 열여덟에 상경한 어머니는 40년 넘게 미싱사의 시다(보조)로 일했다. “점점 가난해지면서 두 분은 집을 팔고 산동네로 올라가셨다. 아래쪽이 개발되면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산이 개발되면서 밑으로, 지하로 내려갔다.” 그 같은 공간 속 가족에 대한 시선이 첫 영상작업 ‘이천 가는 길’(1998)에 녹아 있다. 답십리의 부모가 성남에 집을 마련한 임씨와 경기도 이천에 사는 형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과정을 촬영했다. “부모님의 개인사는 도시 빈민, 서민의 역사로 이어지고 60, 70년대 주거 이야기는 임대아파트에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내 부모님의 이야기는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이웃 국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가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은 그걸 애정이라고 부른다.”



-‘위로공단’에서도 가족 얘기가 깔려 있음에도, 거기서 거리를 두고 보편적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우유부단의 극대화랄까. 들어가지도 못하고, 너무 떨어지지도 못하는 내 성격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린 듯하다. 미안한 감정이 내 작업을 이끄는 힘이다. 미안한 마음을 갚아 나가는 느낌이랄까. 억지로 겸손을 만들거나 ‘나 잘났어’ 하는 자의식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중시한다.”



-뭐가 그리 미안한가.



“취직하고, 결혼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그 라인을 안 탄 점이 가족에게 크게 미안하다. 하나 내가 좋아서 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어느 정도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돌고 돌아 지금 그는 영화사 ‘반달’의 공동대표다. 온달이 아니고 반달이다. 꽉 찬 게 아니라 함께하며 빈 곳을 채워 나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민경(39) PD가 공동대표이자 인생의 반려자다.



 ◆쓸모없는 시간은 없었다=한 번에 된 일이 없었다. 대학은 해병대 제대 후인 스물다섯에 들어갔고, 해병대도 한 차례 낙방했다. 늦깎이 미대생,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한 고집의 대가는 스스로 학비를 벌며 치렀다. 짜장면 배달, 가락시장의 배추 배달은 물론, 성남의 실내 경마장을 주말마다 지키며 청소하기를 2년간 했다. 해병대도, 경마장 경험도 헛되지 않았다. 2004년 부산 비엔날레 때 ‘이런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베트남 참전 용사 기록 프로젝트를 했다. 해병대 경험으로 공감대를 찾은 사내들이 한마디씩 더 거들어줬다는 게 성과랄까. ‘금천미세스’들과의 활동이 ‘위로공단’의 밑거름이 됐다면 ‘이런 전쟁’은 ‘환생’의 토대가 됐다. ‘환생’은 올 초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비엔날레와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상영됐다.



-에둘러 온 듯하지만 돌이켜보면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실패도 실수도 많았다. 우리 사회는 수상 같은 가시적 결과가 나와야 인정해 준다.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 경우는 한 번에 만들어진 게 거의 없다. 하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실패가 실패가 아니더라. 실패도 하나의 과정이더라.”



-미술이 힘이 세다고 믿나.



“할 줄 아는 것,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모두가 그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다.”





[S BOX] 잘못 찍은 스틸 장면도 살려 새로운 영상 보여줘



시작은 그림이었다. 가천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 조교로 일할 때 학교에 있던 소형 캠코더로 홈비디오를 찍어본 것이 오늘의 임 감독을 만들었다. “찍고 보니 눈으로는 못 보던 장면이 펼쳐지더라. 동네 풍경, 부모님의 표정과 주름 등이 다시 보이더라. 영상의 매력이랄까. 이걸 붓 대신 써야겠다. 붓보다 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천 가는 길’(1998) 얘기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비념’(2012)은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든 첫 영화다. 늦깎이 신인인지라 영화제 출품 전까지 투자자를 만나지 못했다. 이 같은 그의 영화는 ‘못 배워서’ 새롭다. “‘비념’에서는 영상 카메라가 돌아가는 줄로 잘못 알고 찍은 스틸 장면을 살린 부분이 있다. 정지 장면만 잔뜩 찍혔는데, 이걸로 할머니가 묘지를 찾아가는 장면을 컷과 컷으로 나눠 기억이 단절되는 느낌을 자아냈다.” 오랜 커뮤니티 아트 기획자로서의 내공일까, 독재자이길 포기하고 배려하며 기다린 것이 기존의 영화 문법과는 다른 새로움을 낳았다. “나는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상황과 장소에 있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계획했던 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상황을 만드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위로공단’에서도 인터뷰와 기록사진 같은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함께 여성 노동자들의 꿈과 소망을 판타지처럼 보여주는 영상을 버무렸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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