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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새로 쓰는 동물의 왕국

이훈범
논설위원
맞는 말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배신이 없다. 힘에 의한 서열이 뚜렷하게 신분을 가른다. 그렇다면 그 우두머리는 마음 편하게 권력을 누릴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동물세계의 권력자는 빛 좋은 개살구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의 저명한 동물학자 비투스 드뢰셔의 관찰에 따르면 그렇다.



 콩고의 원시림 속 흰코원숭이 무리의 수컷 우두머리는 10여 마리의 암컷들을 거느리고 산다. 1년 내내 경쟁자도 없다. 그렇다고 하렘의 술탄 같은 삶을 생각하면 안 된다. 암컷들을 위해 먹이를 찾고 자식들을 보호하느라 늘 바쁘다. 사랑의 기쁨도 많지 않다. 그 많은 암컷들과 사랑을 나누는 날은 1년에 단 하루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어디선가 낯선 수컷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암컷들을 유혹한다. 우두머리는 불량 수컷들을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움을 계속하지만 중과부적이다. 한두 놈들과 결투를 벌이는 동안 다른 놈들은 암컷들과 재미를 본다. 불쌍한 우두머리는 ‘무임승차자들’과 싸우기만 하다가 결국 기진맥진해 짝짓기 한번 제대로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보다는 낫지만 스코틀랜드 북부 노스로나 섬에 사는 바다표범도 마찬가지다. 이들 무리는 예닐곱 마리에서 때론 수십 마리의 암컷들이 수컷 우두머리를 왕처럼 모시고 산다. 이 왕은 암컷들의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는 폭군이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 결과 한 해에 태어난 아기 바다표범의 3분의 1은 수컷 우두머리의 생물학적 자식이 아니었다. 왕은 속고 있었다. 폭군이 잠든 사이 슬그머니 나타나 밀회를 즐기고 사라지는 ‘연인’들이 있었던 거다.



 동물의 세계에선 힘센 우두머리 수컷이 암컷들을 독차지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암컷들 역시 강한 자식을 얻으려는 생식본능에 수컷의 독점을 받아들인다는 거였다. 동물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그래서 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동물이라고 번식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이다.



 실제로 바다표범의 영역에서 암컷들이 선호하는 자리는 서식환경이 좋은 수컷 옆이 아니었다. 폭군의 횡포에서 벗어나고 은밀한 로맨스까지 기대할 수 있는 가장자리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한 암컷이 몇 해에 걸쳐 낳은 여러 새끼들의 아비가 동일한 수컷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렘의 술탄은 거의 매년 바뀌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수년씩이나 사랑과 정절을 지켜낸 것이다.



 그렇다고 동물의 세계에 배신이 없다는 게 거짓명제가 되지는 않는다. 본능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 뿐이다. 하렘은 수컷의 로망일 뿐이고, 암컷은 할 수 없이 복종하며, 끌리는 상대와의 사랑을 항상 꿈꾼다. 그것이 동물의 본능이라고 드뢰셔는 결론짓는다.



  본능적으로 암컷을 끄는 힘은 권력이 아니라 따뜻함이었다. 슬며시 다가온 약한 수컷의 살가움에 암컷이 마음을 연 것이다. 흰코원숭이의 암컷들이 호감을 느낀 것도 ‘낯선 남자’들의 다정함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두머리는 자기 것을 지킨답시고 폭력을 휘두르며 날뛴 것이다. 재미나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생물학자들은 원격센서로 원숭이들의 심박수를 측정해봤다. 그랬더니 서열이 높을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결투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랬다. 약한 자들이 편히 잘 때 강한 자들은 이것저것 스트레스를 받아 혈압이 올라간 것이다. 강자독식이 본능이었다면 그럴 리 없지 않겠나.



 동물의 세계를 인간사에 직접 대입하는 건 무리다. 인간은 본능에만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의범절이 있는가 하면 권모술수도 있다. 하지만 참고할 수는 있겠다. 특히 리더일수록 배울 게 있다. 실속은 강제가 아닌 대화를 통해 얻는다는 것이다.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권위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공연히 스트레스만 받고 건강만 잃은 채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많은 수컷 우두머리가 그런 것처럼. 지금까지 새로 쓰는 동물의 왕국이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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